[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 국왕은 모두 나라를 경영하는 경영자였다. 그리고 정조는 썩 훌륭한 최고경영자(CEO)였다. 조선 임금들 가운데서도 나라를 잘 경영했다고 상당히 높게 평가받는 군주다. 물론 어느 임금이나 그렇듯 정조 치세도 명(明)과 암(暗)이 있지만, 그가 조금 더 살아서 조선을 지탱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 책, 《CEO, 정조에게 경영을 묻다》는 정조의 국가경영 방식에서 시사점을 도출해 오늘날 경영자들에게도 많은 지혜를 주는 책이다. 경영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만큼, 정조의 경영방식 가운데는 오늘날에도 취할 것들이 꽤 많다. 그의 경영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그는 기본적으로 적을 강하게 키워 적도 승리하고 나도 승리하는 상생경영을 펼쳤다. 조선시대 많은 당쟁의 역사에서 보듯 ‘나 살고 너 죽자’ 식으로 반대편의 씨를 말리는 그런 섬멸전법을 구사하지 않았다. ‘호적수’를 만났다 싶으면 오히려 그 사람을 크게 키워 견제세력으로 활용했다. 이는 어찌 보면 적이 강해도 내가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사에 자신의 의견에 순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시인 연산군! 흔히 ‘폭군의 대명사’로 알려진 연산군에게, 시인이라는 표현은 좀 낯설다. 조선에서 글을 배운 선비라면 누구나 필수 교양으로 시를 짓곤 했지만, 임금은 좀 달랐다. 이성적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군주에게 감성적인 시 짓기는 그다지 권장되는 덕목이 아니었다. 그래서 임금이 어제시(御製詩)를 지을 때마다 신하들은 삼갈 것을 권하곤 했다. 그러나 연산군은 달랐다. 그는 보위에 오른 뒤에도 80여 편에 달하는 어제시를 지을 만큼 시를 좋아했다. 그 내용은 대체로 감상적이고 즉흥적이며 자기애가 충만한 것들이었으나, 때로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살벌한 시도 있다. 연산군은 자신이 지은 시를 비서실 격인 승정원에 내리고, 승지들에게 답시를 지어 올리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책, 《조선국왕 연산군》은 ‘88편의 시로 살피는 미친 사랑의 노래’라는 부제에 걸맞게 연산군이 남긴 88편의 시로 그의 내면에 흐르는 광기와 고독,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다. 소설과 해설을 절묘하게 섞어 쓰는 작가의 필력 덕분인지 재밌게 술술 읽힌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어제시가 연산군의 심리 상태와 광기를 잘 드러낸다. 연산군은 잘 알려진 것처럼 조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국도로학회에서 《도로 이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도로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지요. 그러니 한 사람이 다 쓸 수는 없고 도로학회 회원들이 분담하여 썼습니다. 그 가운데는 같은 공군 장교 출신이라 저와 인연을 맺은 손원표 박사도 필진으로 참가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도 이 책을 보게 되었데, 다양한 이야기 가운데는 아무래도 제가 역사를 좋아하니 도로의 역사 부분에 눈길이 갑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지요? 로마의 첫 포장도로는 기원전 312년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에쿠스 지휘하에 만들어졌네요. ‘아피아 가도’라는 말이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이 길을 통하여 병력과 물자만 오간 것이 아닙니다. 이 길을 통하여 로마 문명이 전파되고, 로마제국 이후에도 로마 가도를 따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 유럽 문명의 정체성이 유지된 것입니다. 한편 서양은 거리를 나타낼 때 ‘마일’을 쓰지 않습니까? 이게 로마의 도로에서 유래된 것이네요. 로마에서는 가까운 도시부터의 거리를 표시하기 위하여 로마 성인의 1,000 걸음 (약 1,480m)에 해당하는 지점마다 돌기둥을 세웠는데, 여기서 ‘마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김란사! 언뜻 듣기에도 몹시 이국적인 이 이름은, ‘낸시(Nancy)’라는 세례명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김란사는 구한말 태어나 1919년 숨을 거둘 때까지, 조선 여성 교육과 독립운동에 아낌없이 헌신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화학당의 교사로 많은 여성을 깨우치고, 또 고종의 비밀문서를 갖고 파리강화회의로 향했던 중요한 업적에 견줘 오늘날 거의 아는 이가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아마 파리강화회의로 향하던 중 베이징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아까운 삶을 일찍 마쳤기 때문이리라. 이 책, 《김란사, 왕의 비밀문서를 전하라!》의 지은이 황동진은 서울교육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활동하는 그림작가다. 2017년 김란사 특별전을 기획하고, 전시가 끝나서도 김란사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펴냈다. 김란사는 1872년, 평양의 한 유복한 상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청나라에 오가며 무역한 덕분에 남부러운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혼인을 10대 시절에 일찍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물한 살에 경무청에서 일하던 하상기와 혼인했다. 여느 여성들과 다르게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일을 적극적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훈맹정음’. 척 보아도 그 뜻이 짐작이 간다. 바로 맹인을 위한 한글점자다. 눈이 보이는 이는 일상적으로 읽는 한글도 맹인에겐 큰 산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존재는 세상을 밝히는 등대요, 촛불이다. 1926년, 이렇게 소중한 ‘훈맹정음’을 만드는 큰일을 해낸 이가 있으니, 바로 박두성이다. 지은이 최지혜는 박두성이 나고 자란 강화도 어느 산자락에서 바람숲그림책도서관을 운영하며 그림책 《훈맹정음 할아버지 박두성》을 썼다. 박두성은 강화도보다 더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섬, ‘교동도’에서 1888년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였던 박두성의 집안은 교동교회에 봉사하며 신실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어릴 때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지만, 여덟 살부터는 강화도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하고 나서는 얼마간 농사를 짓다가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엔 일반 초등학교에서 보통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스물다섯 살이었던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에 속한 맹아학교 선생님이 되어 처음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임금이 승하한 뒤, 첫째 아들인 왕세자가 즉위한다.’ 얼핏 보아 당연한 듯 보이는 이 명제는 실현되지 못한 적이 훨씬 많았다. 조선 역사에서 임금이 승하한 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세자는 겨우 일곱 명에 불과했다. 조선왕조 스물일곱 명의 임금 가운데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만 적자이자 장자로 왕위를 계승했으며 그나마 요절하지 않고 꽤 오랜 기간 정사를 제대로 펼친 임금은 현종과 숙종뿐이었다. 웬만한 기업에서도 ‘가업 승계’와 ‘후계자 양성’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 봉건시대에 ‘왕세자 책봉’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자 출신 왕자들만 많거나, 서자 출신 왕자조차 거의 없거나, 적자 왕자는 있으나 군주가 지녀야 할 자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등 왕통을 잇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전문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걸은 지은이 이준호는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의 비극적인 인생을 한 권의 책, 《비운의 조선 프린스》에 담았다. 물론 임금이 되지 못한 왕세자 가운데서도 천수를 누리며 잘 살다 간 이가 더러 있지만, 겉으로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 국민이 책장에 한 권쯤 가지고 있을 법한 국민 베스트셀러다. 다들 주말에 시간은 많아졌으나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잘 모르던 시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답사’라는 새로운 즐길거리를 열어주었다. 다들 별 관심이 없던 문화유산에 새롭게 눈을 뜨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우리나라 곳곳에 참 보물 같은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책이 좀 두껍다. 아마 책장 한 편에 꽂아두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이는 드물 것 같다. 관심 가는 지역을 사 보았더라도 조금씩 발췌독하다 상당한 분량에 눌려 슬그머니 책을 놓았을 수도 있다. 만화로 보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더없이 반가운 까닭이다. 《만화 문화유산 답사기》는 그 제목처럼, 유홍준 원작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누구나 쉽게 만화로 접할 수 있도록 각색한 책이다. 물론 기존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진 못했다고 해도, 각 지역의 핵심 문화유산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데다 책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참신한 관점도 잘 담겨있어 일거양득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4편, ‘경주’에서도 그런 관점이 잘 녹아있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사람이 살던 집. 그곳엔 특별한 정취가 어린다. 때로는 집주인의 인품이, 때로는 집주인의 인생역정이, 때로는 집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물씬 배는 것이 옛집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은 떠났어도, 집은 그 자리에 남아 주인의 인생을 묵묵히 보여준다. 박광희가 쓴 책, 《옛 사람의 집》은 대원군, 기대승, 조식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선 최고 지식인과 권력자 11인의 삶과 영욕을 그들이 살았던 ‘집’을 통해 조명한 책이다. 다들 사극이나 역사책에서 한 번쯤 접했을 인물이지만, 그들이 살다 간 ‘집’이 주목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특별하다. 비록 지은이가 스스로 서문에 밝혔듯 백성보다 조금 더 가지고 누렸던 사회적 지배 계층의 공간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당대 최고 지성들의 삶과 생각을 집을 통해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에 소개된 집은 하나같이 쟁쟁하다. 덕혜옹주가 살다 간 창덕궁 낙선재, 흥선대원군의 운현궁, 추사 김정희의 추사고택, 정약용의 여유당과 다산초당, 기대승의 애일당, 이내번의 선교장, 양산보의 소쇄원, 남명 조식의 산천재, 명재 윤증 고택, 맹사성과 맹씨행단, 정여창 일두고택 등 11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10. 23.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고맙게도 KBS 강석훈 기자가 문상을 와주었습니다. 강기자는 자기가 쓴 책이 곧 나온다더니, 10. 31. 초판이 나오자마자 나에게도 책을 보내주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大기자 연암》이란 책입니다. 대(大)기자라니? 연암을 좋아하고 열하일기를 애독한 나로서는 순가 ‘대기자’에 혼란스러웠으나, 이내 강 기자가 연암을 ‘대기자’라고 부르는 것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머리말에서 강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열하일기는 대기자의 면모와 식견, 실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장정의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특정 주제나 지역 사회를 심층 취재한 기자가 취재 내용과 식견을 바탕으로 뉴스와 여러 에피소드, 논평 등을 종합적으로 완성한 기사이다.” ‘그래! 기자의 관점에서는 《열하일기》에서 연암의 대기자의 면목을 읽어낼 수 있겠구나!’ 그런데 강 기자는 연암이 능숙한 대기자의 필치로 《열하일기》를 썼을 뿐 아니라, 연암 스스로 《열하일기》에서 자신을 ‘기자’라고 했답니다. ‘으잉? 이건 무슨 말이야? 당시에는 ‘기자’라는 개념도 없을 때 아닌가?’ 1780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대한국 만세’를 뜻하는 ‘코레아 우라!’가 울려 퍼졌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외침이었다. 깊은 총상을 입은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는 힘없이 쓰러졌다. 하얼빈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토는 즉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총상이 워낙 깊어 30분 만에 숨을 거뒀다. 안중근은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어 러시아 헌병대 파출소로 끌려갔다. 이로써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세계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책, 《코레아 우라-안중근, 하얼빈 11일간의 기록》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거사가 있었던 10월 26일을 중심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11일간 벌어진 사건들을 숨 가쁘게 담아낸다. 그리고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에서 1910년 3월 26일 처형당할 때까지, 144일 동안의 이야기도 다룬다. 보통 역사책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사실만 나올 뿐, 그 전후의 이야기는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 의거의 자초지종을 누구나 알기 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