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하진상 기자] 전라북도(도지사 송하진)는 남원시(시장 이환주)와 함께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에 분포하고 있는 가야 제철유적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결과, 운봉고원 일대에서 30여소의 대규모 제철유적이 집중 분포된 것을 확인하였다고 밝혔다. 금년 4월부터 군산대학교박물관(관장 곽장근)에서 진행 중인 이번 조사는 백두대간 만복대에서 바래봉까지 뻗은 산줄기 양쪽에 20여개소와 지리산 달궁계곡 일원에 10여개소의 제철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서, 운봉고원이 장수 대적골 일대의 제철유적과 함께 대규모 가야제철유적의 분포지라 할 수 있어 주목된다. 특히, 바래봉 북쪽 옥계동(현 운봉읍 화수리 일대) 제철유적은 천혜의 자연분지에 슬래그(광물 제련 찌꺼기)의 분포 범위가 500m에 달하고 제철유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현지조사 때 기벽이 상당한 두꺼운 회청색 경질토기편이 수습되어 제철유적이 삼국시대까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리산 달궁계곡에 소재한 마한 왕 달궁터 부근의 하점골(현 산내면 덕동리) 제철유적은 운봉읍 공안리, 수철리 제철유적과 함께 유적의 범위가 넓고 유구의 보존상태가 매우 양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었지만 25일 들린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는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초만원 상태였다. 도쿄를 대표하는 사진으로 자주 등장하는 센소지 가미나리몽(浅草寺 雷門) 앞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도쿄에서 센소지를 보지 않았다면, 서울에서 인사동을 안보고 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만큼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는 일본 관동지역에 몇 안 되는 고찰인데다가 절보다도 절 입구에 들어서 있는 기념품가게(나카미세)가 관광객들에게는 매력 만점으로 꼽히는 곳이다. 더욱 주목하고 싶은 것은 센소지가 고대 한국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 절은 백제계 어부 형제인 히노구마 하마나리, 다케나리가 서기 628년 스미다가와(隅田川)에서 고기를 잡다가 건져 올린 작은 금불상이 인연이 되어 창건한 절로 《신찬성씨록》에 “히노구마(檜前) 씨는 백제계의 고조(高祖)” 라고 나와 있다. 센소지에 대해서는 백제계 어부형제 뿐만이 아니라 백제계 하지(土師中知) 스님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아사쿠사신사(浅草神社)에 있는 고구려개(고마이누, 高麗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곳은 절
[우리문화신문=조판형기자] 한국관광협동조합(이사장 이정환 ) 주관 행사에 조합원 40여명과 함께 지난 25~26일 1박 2일 일정으로 일본 대마도를 다녀왔다. 25일 새벽 2시 서울 시청 앞을 출발, 부산 국제선 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돼지국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곤 대마도를 오가는 오션플라워호를 타고 두어 시간 남짓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은 대마도의 맨 아래쪽에 자리 잡은 이즈하라항(港)에 도착하여 대마도답사를 시작하였다. 부산에서 쾌속선을 타고 약 1시간이면 닿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일본 대마도(對馬島)는 이름처럼 말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의 섬이다. 일본말로는 '쓰시마'라고 부르지만 우리에겐 대마도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하다. 대마도는 행정구역상 일본 나가사키현에 소속되어 있는데 거리상으로는 부산까지 49.5km, 후쿠오카까지 142km로 한국에 훨씬 가깝다. 대마도에 간 우리는 맨 먼저 최익현(崔益鉉, 1833 ~ 1906) 선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로 강제 이송 당한 뒤 그곳에서 순국한 최익현 선생을 기리는 순국비가 우리를 기다린다. 대마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강화 고려궁터에는 두 가지 역사가 묘하게 겹치는 곳이다. 고려궁터니까 말 그대로 고려시대 궁궐이 있던 자리여야 하는 데 실제 가 보면 휑한 궁궐터엔 조선시대 외규장각 건물과 강화유수부 동헌이 턱하니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가 겹치는 것이란 바로 이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찌된 사연인가? ▲ 고려궁터에 자리잡은 외규장각 ▲ 외규장각 안에 있던 수많은 조선의 문헌들이 프랑스의 약탈로 강탈당했다. 사진은 외규장각에 전시된 유물 개성에 있어야하는 고려궁궐이 강화로 옮겨오게 된 것은 고려 고종(19년, 1232)이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겨 온데서 유래한다. 이때 옮겨온 도읍터가 고려궁터로 원종 11년(1270) 개성으로 환도하기 까지 39년간 사용했던 궁궐이며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궁궐 뒷산도 송악이라 했다. ▲ 전상갑 문화해설사가 이곳을 찾은 관람객에게 고려궁궐터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고려궁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사슴이 뛰어 노는 나라(奈良) 흥복사(興福寺, 고후쿠지)에 들른 것은 지난 11일 왕인박사 신사(神社)를 들른 뒤오후 늦은 시각이었다. 저녁 해가 짧아 오중탑에 긴 그림자가 벌써 지기 시작했다. 나라공원(奈良公園)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은 그 유명한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사슴들이 뛰어놀아 고찰 못지않게 인기가 있지만 기자가 찾은 날은 사슴의 뿔을 자르는 시기인지 흥복사 안에는 겨우 한 녀석만 비실거리고 있었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일본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을 꼽으라면 으뜸인 곳이 나라 교토이다. 그 만큼 이곳은 과거 천년 고도답게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특히 불교를 국교로 하던 나라시대였던 만큼 명찰, 고찰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나라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기자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과는 남다른 감회로 다가오는곳이 나라지역이다. 속내란 다름 아닌 일본 고전을 전공하면서 만나게 된 각 유적지의 역사를 뜻한다. ▲ 천년고도 나라 흥복사, 오른쪽 오중탑은 국보 흥복사만 해도 그렇다.긴테츠(近鉄) 나라역(奈良駅)에서 기념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라(奈良) 반야사(般若寺, 한냐지)의 수선화는 한 겨울인데도 곱게 피어 있었다. 어제 9일(토) 오후 3시 찾아간 반야사는 주택가 언덕길을 막 벗어난 곳에 동백과 수선화를 품고 고즈넉하게자리하고 있었다. 반야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에는 사람들이 늘 바글거리지만 반야사를 찾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반야사에 머무는 동안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낡은 카메라를 든 노인들뿐이었다. 아마도 겨울 수선화를 찍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 같았다. ▲ 나라시에 있는 반야사 전경, 왼쪽이 본당이고 오른쪽 탑은 목탑이 주종을 이루는 일본에서는 보기드문 석탑으로 13세기에 만든 것이다. 나라산(奈良山) 아래 언덕 고즈넉한 곳에 자리한 반야사는 아스카시대에 고구려 스님 혜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수도가 나라로 천도함에 따라 덴표 7년(735년) 성무왕(聖武天皇)이 헤이죠쿄(平成京)의 귀문(鬼門)을 지키기 위해 대반야경을 기단에 넣어 탑을 세운 것이 인연이 되어 절 이름을 반야사라 부르게 되었다. 이후 헤이안시대에는 천여명의 학승들이 있을 정도로 번창했으므로 학문사(學問寺, 가쿠몬지)라
[한국문화신문 = 가람 기자] 남원을 대표하는 브랜드공연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이 올해도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에서 공연된다. 남원시는 지난 2013년부터 3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와 전라북도가 주최하는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국비 1억 3천만 원을 확보하여 치르게 된다. 그동안 춘향전은 춘향과 몽룡의 만남과 이별에서부터 신관사또부임, 어사출두 등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으나, 올해 선보이는 열녀 춘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반부의 만남과 이별을 과감히 생략하고 신관사또의 부임 대목부터 시작해서 춘향이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표현하여 춘향의 숭고한 사랑을 극대화한 것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이번 작품은 특히 절개를 지키려 하는 춘향과 부패한 권력자 변학도가 대립되는 구도를 강조하여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의식을 나타냈으며, 춘향을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민중들의 상징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농부가와 생일잔치 대목에서는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으며 공연 전 판소리 체험, 전통의복 체험 등을 진행해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
[한국문화신문 = 가람 기자] 4월 26일 교룡산 선국사에서는 각계 인사와 금산사 주지 및 지역 각 사찰 스님과신도들의 참여속에 제1회 교룡산성 의승/의병 문화제가 열렸다. 금번 교룡산성 의승/의병문화제는 불교계의 호국의승의날 국가기념 제정을 추진하는 일환으로 시작된 교룡산성의 의승/의병을 추모하는 문화제이다. 교룡산성은 남원읍성(행정)의 외성(비상시)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으며, 특히 선국사(善國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며, 산성 내에 있다고 하여 산성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685년(신문왕 5)에 남원 소경(小京)이 설치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창건되었으며, 이곳에 용천(龍泉)이 있다고 하여 용천사(龍泉寺)라 하였다고 한다. 선국사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절이 교룡산성 내에서 국태민안과 전승을 기원하는 도량의 소임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사명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의 건물은 교룡산성을 지키는 군 본부로 사용되어 수성장과 별장(別將)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전성기에는 3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특히 동학란 때에는 동학군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일대 접전을 벌였는데, 이때 사찰의 당우 가운
남원요천수 옛 황포돗대, 삽다리 재현 요천수에 설치된삽다리 그리고 나룻배... 옛 요천수에는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삽다리가 설치되었다. 지금은 관광단지가 조성되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과 대부분 지역이 경작지였다. 지금의 산자락은 공동묘지였고, 광광단지 지역은 다락논과 구릉지 그리고 밭으로 이루어 졌었다. 1970년대 초의 사진 [한국문화신문 = 가람 기자] 옛 요천수에는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삽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요천수 부근에 지금은 관광단지가 조성되었지만, 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과 대부분 지역이 경작지였다. 지금의 산자락은 공동묘지였고, 광광단지 지역은 다락논과 구릉지 그리고 밭으로 이루어 졌었다. 그때 놓였던 삽다리는 양림과 쌍교동을 이어주어 주민들의 가교역할을 하였다. 그 삽다리를 다시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요천수를 건널 수 있게 삽다리를 재현했고, 동시에 요천수에는 황포돗대를 세운 소금나룻배를 띄웠다.
[한국문화신문 = 가람 기자] 남원시는 지리산권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인월시장을 볼거리 ․ 즐길거리가 가득한 토요장터를 구성해 관광명소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먼저,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개장했던 토요장터를 장날과 겹치는 토 ․ 일요일 월 1회만 개장하고, 문화 ․ 공연행사, 체험마당, 먹거리 ․ 농특산품 판매 코너 등 장터를 구성한다. 51명의 장옥 상인과 110여명의 노점상이 꾸리는 활기 넘치는 시골 5일장과 보고, 맛보고, 참여하는 즐거운 토요장터가 어우러져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또한, 지리산 고랭지에서 나온 토종 흑돼지 구이에 녹두전, 부꾸미, 장터국수와 찐빵 등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다양한 먹거리를 준비하여 어렸을 적 엄마 따라 장터에서 먹었던 그 맛, 그 추억을 자극한다. 유명 요리연구가들이 줄 지어 즐겨 찾을 만큼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가 4월 18일 첫 개장일에는 영호남 아마츄어 그룹사운드 공연과 신관사또부임행차 중 육방과 기생춤 퍼포먼스, 밸리댄스 등이 흥겹게 펼쳐진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청소년 트로트 가요제, 6월에는 가족요리 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