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창틀이 오려낸 네모난 하늘이 빨래줄 위에 펼쳐지던 구월이었다. 때 이른 낙엽 하나가 대숲을 훑고 나온 바람에 얹혀 뫼비우스 띠를 그리며 섬돌위에 살며시 내려앉던 가을의 첫날이었다. 액자 속 그림 보듯 창밖의 풍경들을 감상하던 나는 남천가절(藍天佳節)이로구나. 단 한마디를 신음처럼 내뱉으며 일어나 무언가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벽장으로 골방으로 다시 다락으로 여기저기 틈 있는 곳마다 끼워 넣은 LP판 무더기 속에서 오래된 음반 한 장을 찾아내 먼지를 닦아내고 턴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지직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지는 소리 꽃잎이 피는 소리 노래는 몇 소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아려왔다. 눈시울은 빨개지고 온몸이 촛농처럼 녹아 내렸다. 턴테이블이 돌아갈수록 음반에 새겨진 지난 한 해 세월, 고난의 삼백예순날 하루하루가 전축바늘 끝에서 되살아났다. ▲ 패티김 구월의 노래가 수록된 음반 집안이 몰락하였다는 기별을 듣고 끝내 못다 털어낸 번뇌 조각들을 책갈피에 주섬주섬 끼워 넣은 채 산문을 나서던 날, 범종 소리는 왜 그리도 골짜기를 오래 맴돌던지. 저자거리로 돌아와 뒤늦게나마 가장의 책무를 다해 보겠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고추잠자리가 늦여름 하늘가에 표산(飄散) 하던 날 헌릉 근처 호젓한 사행(蛇行)길을 빨간 승용차 한 대가 물방개 헤엄치듯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차 안에는 친구사이인 청년 둘이 타고 있었고 때마침 서쪽하늘에 걸린 새털노을은 두 사람의 얼굴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음은 시(詩)를 닮고 시심은 가을로 향하고 바람은 이미 여름을 떠나가고 둘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맞이를 하다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동원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명함만 하게 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모 여성지에 실린 시 한편이었다.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 내려가던 차종태(딕 훼밀리 보컬) 눈에는 어느새 붉은 노을이 녹아 뺨을 타고 흘렀다. 이동원은 대모산 기슭의 어느 허름한 대폿집에 차를 세웠다. 양은주전자를 사이에 놓고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엔 또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들이 다가올 갈색 세상에 대하여 소곤거리는 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몇 사발로 목을 축인 차종태가 먼저 침묵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동원아, 이 시는 네 노래다. (최)종혁이 형에게 곡을 맡기자. 편곡은? (신)병하 형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앵두 알 만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악수를 마친 교육대장이 한 발짝 옮겨서라는 손짓을 보냈는데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힘든 일주일이었다. 차라리 논산에서 한 달 더 훈련받는 게 낫지 수경사 보충교육은 정말 못 받겠다고 아우성들 쳤지만, 막상 퇴소식을 마치고 나니 그간의 고생은 간데없고 우리 모두의 흰 눈자위는 빨갛게 봉숭아 물감이 들어 있었다. 퇴소 후 우리 동기들은 각 예하부대로 뿔뿔이 흩어지고 서너 명만이 나와 동행했다. 우리가 당도한 곳은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사령부였다. 나는 그 곳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 근무할 처부가 정해지고 겨우 부대 내 건물의 위치를 알아갈 즈음 내가 DJ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처부에서 처부로 번져 나갔다. 나를 예쁜 아가씨라 생각하고 한 번 읊어봐. 이 하느님께서 졸리시는데 잠 쫓는 멘트를 시작한다. 실시! 말년 병장들은 훈련과 근무에서 열외 되어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아주 좋은 소일거리였다. 너 연애편지도 잘 쓰지? 일과 끝나고 나를 알현한다. 알겠나? 나는 대장보다도 높다는 자칭 오성장군의 명을 받들어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국토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었다고 떠들썩할 때니까 1970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식구는 서울 변두리 어느 달동네에 살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에서 올라간 빈농가정이 수도 서울에 발붙일 곳은 그런 판자촌밖엔 없었다. 전력사정이 나빠 걸핏하면 정전이 되어 자주 남포등을 켜야 하는 동네였다. 상수도 혜택은 더욱 알량하여 물지게로 산 아래 동네에 있는 공동수도에서 길어 와야만 했다. 갈수기엔 그나마도 공급이 끊겨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절(寺)이나 계곡으로 물을 찾아 헤매야 하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버텨야만 하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비록 봉지쌀을 사다먹고 새끼줄에 꿴 낱장연탄을 사다 땔지언정 이웃 간의 인정만큼은 넘쳐흘렀다. 굶고 있는 집이 있으면 부족하나마 나누어 먹었고 이웃의 아픔도 내 것 인양 여기며 살았다. 나는 거기서 나를 평생 음악인으로 살게 해줄 한 사람을 만난다. 그는 나보다 대엿 살 위인 동네에서 하나 있는 대학생 이었다. 반딧불이 같은 별들이 하나 둘 하늘가에 날아들 때면 그는 늘 노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황금성교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교회마당에서 내려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가마솥처럼 달아오른 대지는 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먼지 냄새가 풍겨왔다. 벌써 보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뜨거운 코피가 인중을 타고 흐르듯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역사 천장에 매달린 바람개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정도면 사람들과 눈빛 마주치는 것조차도 짜증이 나겠지만 그날 용산역에서 경포대행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짜증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활기차게 떠들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지난 열흘간 바캉스비용 마련을 위해 막노동판에서 땀방울 깨나 흘린 우리 삼총사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우리를 태운 완행열차는 영주를 돌아서 하오가 돼서야 경포대역에 도착하였다. 망상과 정동진, 안인진으로 이어지는 해안철도도 절경이지만 솔밭으로 둘러싸인 경포대역은 그 가운데 백미 중의 백미요 압권이었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렸을 때 경포백사장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때마침 미스터 경포선발대회 결선이 진행되고 있어 그 열기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우린 번잡함을 피해 순개울이라는 한적한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밤늦게까지 기타를 치며 한여름 밤의 낭만을 만끽하다 잠이 들었다. 한참
▲ 김정호 지난 겨울엔 음반 표지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 칼럼리스트] 전설인줄 알았다. 픽션 같기도 하고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으로 오버랩 되기도 했다. 그날의 하늘은 예리한 칼날에 베여 벌어진 쌀부대처럼 이팝꽃 송이가 마구 쏟아져 내렸다. 태엽이 조여졌다. 시간도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모든 게 앞당겨졌다. 택시부 광장엔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인적이 끊겼다. 조금 전 아베크 한 쌍이 말똥가리가 되어 이팝꽃덩이를 굴리다 뽀르르 사라진 게 인간이 남긴 마지막 잔영이었다. 해일처럼 내리붓는 이팝꽃은 금방 발등을 덮고 무릎을 넘더니 축시를 지나자 빨간 우체통마저 절반이나 묻어 버렸다. 세상이 두꺼운 이팝꽃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들 때 나는 고적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허름한 이층 카페에 홀로 남아 있었다. 턴테이블 위에는 여전히 김정호가 살아있었고, 마른멸치 몇 마리를 안주삼아 나의 소망대로 이팝꽃 더미에 묻혀갔다. 까가각 ! 강물 얼 때 얼음 갈라지는 소리처럼 쩡쩡한 까치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부비니, 아침햇살이 퇴락의 공간을 환등기처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수돗물 한사발로 사포 같은 혓바닥을 축이며 내다본 창밖 풍경은 양화점 지붕이며 약국 옥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그냥 내버려 두라는 뜻의 불어 레세 페르(laissez faire)는, 18세기 후반 중상주의(重商主義)에 반기를 든 중농주의(重農主義)자들이 각종 규제 철폐를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그 뒤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경제이론에 인용하면서 자유방임주의 라는 개념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스미스는 그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에서 정부가 시장에 관여하지 않으면 생산과 교환, 분배가 원활한 조절기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론이 고도로 복잡다양화 된 현대사회에서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지만, 시장경제뿐 아니라 법률과 제도가 단순한 사회일수록 살기 좋은 세상임에는 동서고금의 구별이 없는 것 같다. 군주의 최고덕목은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내 먹으니 임금의 은혜가 무엇이던고?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널리 불리었다는 격양가다. 백성들은 임금의 은혜조차 잊을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간소한 법제도 덕택이었다. 나라는 그동안 법률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를 양산하여 경제활동을 통제해 왔다. 지금이야말로 아담 스미스의 이론에 한 번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한때는 전통 차의 반격으로 주춤하던 커피의 인기가, 요즈음 시가지를 걷다보면 두 집 건너 커피점문점이 들어설 정도로 재 반격에 성공한 느낌이다. 아니 이젠 커피가 도심을 점령한 꼴이다. 6세기경부터 이슬람수도승들의 음료로 애용되던 커피가 이젠 전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기호식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가 언제부터 우리의 입맛을 그렇게 사로잡았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커피역사는 매우 일천하다. 1895년 아관파천당시 아라사공사관에 피신한 고종황제가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커피 맛을 보았다한다. 그 후 고종은 경운궁에다 아예 정관헌(靜觀軒)이란 다과공간을 짓고 그 곳에서 커피를 즐기며 음악 감상을 하였다. 그 즈음 생겨나기 시작한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도 당연히 커피를 판매 하였겠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이거나 고관대작을 대상으로 한 것 일뿐 아직 일반대중들은 언감생심이었다. 커피가 대중의 품으로 들어온 건 1920년대 들어서이다. 후다미라는 곳을 효시로 다방 붐이 일기 시작하였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다방을 하나쯤 여는 걸 커다란 자랑으로 여길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우리 국토의 면적은 99,720㎢로 이웃 중국(9,596,961㎢)이나 미국(9,826,675㎢)에 견주면 약 100분의 1 정도이고, 일본(377,915㎢)과 비교해도 3분의1 정도밖엔 안 된다. 똑같이 나눈다면 국민 한 사람당 약 666평쯤 가질 수 있다. 면적으로만 따진다면 세계 109위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다. 그 좁은 나라에 태어나 반백이 되도록 살면서, 아직 우리나라도 못 가본 곳이 더 많은 필자이기에 세상의 태양은 다 똑같은 줄 알았다.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태양과 정열의 나라라 불리는 스페인을 여행하며 태양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햇볕이 얼마나 강렬한지 마치 주삿바늘에 찔리는 듯 따끔거렸다. 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돌아 다녔는데 그쪽은 남부에 자리 잡아 더 뜨거웠다. 선글라스 없인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자외선 차단크림도 무용지물이었다. 대리석을 깔아놓은 인도는 복사열로 인해 숯불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골목골목 구석구석 배어 있는 역사의 숨결이 모든 육체적 고통을 씻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스페인은 각 지방마다 독특한 지역 색을 지니고 있는데 안달
[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김상아 음악칼럼리스트]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학년이 바뀌고 처음 맞는 조회시간 이었다. 교장선생님은 방학 동안에 학생들이 얼마나 국민교육헌장을 잘 외웠는지 알아보기 위해 무작위로 몇 명을 지목하여 교단으로 불러올리셨다. 두 번째 학생이 막 외우기 시작 할 무렵 갑자기 머릿속에서 윙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내가 지구의 자전을 따라가지 못 했는지 아니면 역회전을 하였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잠깐의 우주유영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였을 땐 나는 급우들에 의해 나무 밑으로 옮겨져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내게 물을 먹이고 계셨다. 조회가 끝나자 담임께서는 내 손을 잡고 교무실로 데리고 가서 얼음처럼 차가운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기도 좀 먹고 과일도 먹어야 할 텐데 오늘은 일찍 집에 가서 쉬어.하며 조퇴를 하라고 하셨다. 3월 초라고는 하지만 봄이 일찍 찾아와 벌써 개나리가 노란 물감을 입안에 머금었고 아스팔트엔 아지랑이가 하늘거렸다. 어지럼증 여파로 가로수에 기대어 있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버스에 오른 나는 눈이 얼음판에 자빠진 소 눈만큼 휘둥그레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