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이 <해금>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혜강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연주했다고 하는 해금은 어떤 악기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현재까지도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악기, 해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에 들어 온 이래,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전반, 그리고 근래에는 창작곡 연주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악기라는 점, 일정한 음자리가 없고, 연주자의 음감(音感)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음정 관계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과, 연주법에 있어서는 줄을 당겨 연주하면서 다양한 농현(弄絃)이 일품이란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궁중음악 해금 연주자로서 유명했던 것과 겸해서 아쟁과 양금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아니 음악보다는 오히려 궁중정재(呈才)의 명인으로 더 많은 업적을 낸 김천흥 명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선생의 아호는 심소(心韶)였다. 심(心)이란 곧 마음이고, 소(韶)는 바로 요순시절의 음악을 뜻하는 말이니, 선생의 성품이나 음악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아호일 것이다. 심소 선생(아래 심소)은 1909년에 태어나 2007년에 영면하였으니 99살을 일기로 평생을 궁중음악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731부대에 앞에 서서 - 이윤옥 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산자의 가죽을 벗긴다 옷을 벗겨 산채로 영하의 추위 속에 냉동시킨다 몸부림치는 젋은이의 팔을 낚아채 부푼 혈관에 세균을 집어넣던 일제국주의 인간 말종들이 활개치던 731부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평방 7만 3천평 대지에 139개의 생체실험실을 만들어 날마다 밤마다 세균들이 춤을 추게 만들던 곳 2005년 8월 2일 생체실험 대상자 1,463명 드러난 날 한성진, 김성서, 고창률 등 한국인들 무주구천에 떠돌며 나 여기 있다 외치는 소리 나 여기 있다 외치는 소리 조국이여 기억하라 나라 안팎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뛰다 숨져간 조선인들의 절규를! 피맺힌 원혼의 울부짖음을! <731부대에 대하여> 일제는 1936년 만주 침공 시 세균전을 고려하여 비밀연구소를 만들게 되는데 당시 이곳은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하였다가 1941년 만주 731부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0년 이후 해마다 600여 명의 수용자들이 생체실험에 동원되어 최소한 3,000여 명의 한국인ㆍ중국인ㆍ러시아인ㆍ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47년 미 육군 조사관이 도쿄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19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하였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데,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에도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통소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으나 현재는 민간의 시나위나 산조, 탈놀음의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다. 통소는 취구(吹口, 나팔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어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음색이 일품이란 점과 단소보다는 굵은 대나무로 만들어 다소 거칠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어떤 인물이며, 또한 그가 연주했다는 해금(奚琴)은 어떤 악기인가? 혜강은 중국 진나라 사람이다. 중국의 위와 진나라의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의 부패가 극심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경주 남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친 다양한 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남산에 본격적으로 불상이 조성된 것은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이후입니다. 이 가운데에서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이른 시기인 삼국시대에 조성된 불상입니다. 1924년 남산 북쪽, 장창곡 가까이 있는 석실(石室)에서 불상 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불상 양쪽에 나란히 있었던 두 보살상은 이미 산 아래 민가로 옮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불상과 두 보살상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 신라미술관 불교조각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불상에 담긴 이야기 장창곡 삼존불상은 《삼국유사》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에 등장하는 생의사 미륵세존으로 추정됩니다. 644년(선덕여왕 13) 생의 스님이 꿈속에 찾아온 미륵을 남산 골짜기 땅속에서 찾은 뒤, 삼화령 위에 석조미륵상을 봉안하고 그 자리에 생의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미륵불상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에서 충담 스님이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공양했던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으로 여겨지기도 합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소안(笑顔, 웃는 얼굴), 화(和, 화목), 감사(感謝), 자(慈, 자비), 반(絆, 인연), 락(樂, 즐거움), 애(愛, 사랑)…. 이러한 말들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비교적 선한 마음, 좋은 마음을 나타내는 낱말 가운데 하나다. 아니, 누가 이르길 당신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단 하나의 낱말을 고르라면 대부분 이 가운데 있는 것 중에 하나를 고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 적힌 말들을 무덤의 묘비에서 가져온 말이라고 하면 뭐지? 싶어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묘비가 잘 정돈된 일본의 무덤을 찾아간 것은 지난 7월 27일(토)로, 이곳은 시즈오카현 나가이즈미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한 불교사원이 관리하는 공원묘지였다. 이곳에 묻힌 분은 25년 지기인 이토 노리코 씨의 친정어머니로 노리코 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5월 21일, 95살로 삶을 마감하고 이곳에 묻혀있다. 평소 기자가 일본의 노리코 씨 집에 들를 때마다 딸처럼 여겨주던 자상한 분이다. "우리의 국적은 하늘에 있나이다. -빌립보서 3장 20절-" 노리코 어머니의 무덤 앞 묘비에는 일본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언제부터인지 일본 무덤의 묘비에는 감사(感謝), 자(慈,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사람이 과거의 자기에게서 벗어나 새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을 실록 속의 글을 통해 보면 몇 단계로 나누어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변화해 갈 수 있다는 전제로는 ‘사람의 본성은 같다’라는 것이다. 시작 단계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다음 단계는 자성과 각성 등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회개와 후회, 회오다. 그리고 다음 단계인 회생과 재생이다. 마지막 단계는 갱생의 단계다. 이때 ‘자신지리(自新之理)’의 원리에 따라 감오(感悟)에 이른다. 이런 전제에서 ‘자신지리’에 이르는 길을 찾아보자. 이 길의 전제에 ‘본성의 회복’이 있다. 병이지천(秉彝之天) : 사람은 진실로 각기 상도(常道)를 지키는 천성(天性)이 있다. (⟪세종실록⟫ 11/4/4) 천성 : (집현전에서 《삼강행실》을 펴내 서와 전문을 더불어 올리다) 삼대(三代)* 의 정치가 훌륭하였던 것은 다 인륜(人倫)을 밝혔기 때문이다. 후세에서는 교화가 점점 쇠퇴하여져, 백성들이 군신(君臣)ㆍ부자(父子)ㆍ부부(夫婦)의 큰 인륜에 친숙하지 아니하고, 거의 다 타고난 천성(天性)에 어두워서 항상 각박한 데에 빠졌다. 간혹 훌륭한 행실과 높은 절개가 있어도, 풍속ㆍ습관에 옮겨져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의 금(琴)과 슬(瑟)처럼, 한국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대표적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는 북방, 가야금은 남방의 가야국에서 연주되어 오던 악기라는 점,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사대부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는 점, 두 악기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나 줄의 수, 연주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 신라의 진흥왕이 신하들에게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 가야가 망했단 말인가!”라며 설득한 것은 훌륭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수궁풍류에 나오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는 장자방이 한(漢)나라의 유방을 도와 초(楚)나라를 칠 때의 이야기로,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내일은 24절기의 열셋째 입추(立秋)입니다.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합니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멈추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은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안 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며,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뿐만이 아니라 비를 섭섭하게 하는 모든 행위는 금지됩니다. 심지어 성교까지도 비를 섭섭하게 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날 밤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으며,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절대 금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입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며, 입추가 지난 뒤의 더위를 남은 더위란 뜻의 잔서(殘暑)라고 하지만, 말복이 남아 있어 불볕더위는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하루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구촌 이상기온이 심상치 않다. 지난주 도쿄에 있을 때 간토(關東)의 날씨가 무려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국의 더위와 일본의 더위 차이는 바로 습도다. 한국의 더위는 그늘에 가면 그래도 참을만하지만, 일본의 무더위는 싸우나에 들어가 있는 정도로 숨쉬기조차 힘들다. 그 무덥던 날, 와세다대학 도서관에 자료를 찾으러 숙소인 오오츠카에서 전차(일본에서는 전철이라 부르지 않고 전차라 부름)를 탔다. 도쿄의 명물로 알려진 땡땡전차 (일본말로 친친덴샤 ‘ちんちん電車’)다. ‘친친’이란 전차운전사가 땡땡(친친)하고 벨을 울려 붙은 이름이다. 오오츠카역은 도쿄 도심 순환선인 야마노테센(山手線) 오오츠카역(大冢駅)이 있지만 이 차를 이용하려면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에서 내려서 10여분 걷거나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한다. 하지만 친친덴샤를 타면 곧바로 오오츠카역에서 170엔으로 와세다대학까지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제는 퇴역해도 좋을 만한 1량짜리 이 전차는 뜻밖에 이용객이 많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도심의 전철이 지나가지 않는 곳을 공략하고 있는 도쿄의 명물 친친덴샤는 달랑 1량짜리로 와세다대학에서 미노와바시까지 달리며 정식이름은 토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밤 8시 55분, 숙소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사도광산’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오늘부터 한반도 출신자의 역사와 노동 상황에 관한 전시를 시작합니다. 이번 전시는 1940년부터 45년까지 한반도 출신자 1,500명이 사도광산에서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 위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내용은 판넬 자료 31점입니다.” 이는 지난 7월 28일, 일요일밤 8시 55분 NHK-TV에 방영된 사도광산 전시 개막 소식으로 전시내용을 소개한 사람은 사도시(佐渡市) 문화학예원 쇼코 하루카(庄子 遥) 씨다. 사도시가 운영하는 아이카와향토박물관(相川郷土博物館) 소속인 쇼코 하루카 씨는 이어 “사실을 사실로 전달함으로써 한일 간의 상호 이해가 진행되길 바란다.”라고 이번 전시 의미를 말했다. 사도광산 화면이 바뀌자마자 나는 숙소 1층 로비로 가서 28일자 <요미우리신문> 종이신문을 집어 들었다. 신문에는 1면에 “사도광산 세계유산 유네스코 결정 한국도 찬성”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의 사도광산(아래 사도광산, 일본에서는 사도광산<佐渡鑛山> 또는 사도금산<佐渡金山>으로 표기) 보도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