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는 한국의 어린이날이었다. 일본도 이날은 ‘어린이날(고도모노히 , 子供の日)’이다. 일본의 어린이날을 ‘탄고노셋쿠 (端午の節句 )’라고 하는데 원래 이날은 남자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비손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이날은 형형색색의 모형 잉어를 띄우는데 이를 “고이노보리 (こいのぼり)”라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 아이가 있는 집안에서는 긴 장대에 모형잉어를 매달아 놓았지만 아파트 생활을 하는 현대는 아파트 베란다에 모형잉어를 장식하기도 한다. 왜 모형 잉어인가? 중국 《후한서 (後漢書)》에 보면 황하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 용 (龍)이라 불리는 폭포가 있었는데 이 폭포를 향해 수많은 물고기가 뛰어오르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잉어란 놈만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잉어를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전해지는데 일본에서도 잉어는 입신출세와 건강의 상징으로 믿어왔다. 일본의 단오풍습은 에도시대 (江戶時代.1603-1868)에 무사집안에서 시작되었으며 당시 입신출세란 ‘덕천가강 (도쿠가와이에야스)’ 같은 씩씩한 장수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이면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갑옷과 투구 등을 현관에 장식으로 걸어두고 아이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춘천(春川)지역에서 30여 년 이상, 전통 민요를 발굴하고, 보존ㆍ보급해 온 이유라 명창의 이야기를 하였다. 춘천의 민속 소리제(制)는 일부 경(京)토리가 가미된 메나리조 중심이며, 대표적인 민속가로는 <노동요> <상엿소리> <아리랑> 류를 꼽는다는 점, 1960년대에는 <춘천국악회>를 비롯해 <한국국악협회 강원지부> <강원국악연구원> 등이 설립되어, 강습활동이 전개되었으나 민요창은 강사 확보가 늦어지고 있다가 고 안비취 명창에 의해 이유라가 춘천과 인연을 맺고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유라 감독은 <춘천국악원>, <강원소리진흥회> 등을 설립, 강원도 소리의 발굴, 채록, 연구 등을 계속해 오면서 소리극에 관심을 갖고 이를 새롭게 무대에 올리며 국악의 확산운동을 펼쳐왔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 4월 15일, 인천 무형문화재 회관에서 있었던 젊은 판소리꾼 이경아의 <동초제 심청가> 완창(完唱) 공연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완창이란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창자가 심청가나 춘향가와 같은 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여러분들의 깊은 신앙심에 힘입어 약사사에서는 지난 12년 동안 수리 작업을 해온 국보 동탑(国宝 東塔) 대수리를 끝내고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낙경법요(落慶法要)를 엄수합니다. 동탑의 일반공개는 2023년 4월 28일부터 2024년 1월 15일까지입니다.” 이는 일본 천년고찰 나라(奈良)의 약사사(야쿠시지, 薬師寺) 누리집의 ‘알림문’이다. 낙경법요(落慶法要, 이하 낙경법회)란 ‘사원에서 건물의 신축이나 수리 등의 끝냄을 축하하는 법회’를 말한다. 약사사의 국보 동탑(国宝 東塔)은 현저한 손상으로 2009년에 전면 해체 공사에 들어가 각 분야의 장인들이 동원되어 12년 만에 수리를 마치고 2021년 2월 준공되었으나 코로나19로 지난 4월 21일에서야 낙경법회를 열게 되었다. 이번에 수리된 동탑의 1층에는 4개의 상(像)이 안치되어 있는데 모두 높이 약 3미터, 폭 4·7미터, 깊이 1·5미터의 크기로 그 모습은 어머니의 태내에 깃든 '입태'(북), 탄생을 뜻하는 '수생'(동), 왕자로 지내는 '수락'(남), 수행생활을 하는 '고행'(서)을 나타낸다. 이는 부처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 초기 불교의 중요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유라 명창이 강원의 소리를 발굴하고 이를 채록, 연구해 왔다고 이야기하였다. 지역민들의 삶을 그려내기 위한 전통적 소리는 무엇보다도 노랫말이나 가락 구성이 강원도라고 하는 지역의 특징을 제대로 표출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이유라 명창은 종래 창극단이나 소리극단에서 무대에 올려오던 창극(唱劇), 또는 소리극에 관심을 갖고 이를 ‘국악 뮤지컬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무대에 올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0년에 선보인 <절기(絶技), 전계심>이라든가 <아, 김유정>과 같은 작품이다. 전자는 춘천 기생, 전계심의 삶을 민요와 판소리, 창작음악, 춤, 연기, 등으로 극화(劇化)한 공연물로 대단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의 또 따른 능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또한 <아, 김유정>은 춘천 출신의 작가, 김유정의 삶과 작품을 전통의 소리와 춤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유정은 춘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를 잃고 서울재동초등학교-휘문고등보통학교-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문맹 퇴치운동을 벌이기도 한 엘리트였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약사불(藥師佛)’은 과거 아직 부처가 되지 않은 보살이었을 때 12가지의 소원을 세웠습니다. 아픈 자의 질병을 치유하고 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안락하게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랐고, 반드시 그 바람을 이루리라 맹세했습니다. 약사불은 오랜 시간 쌓은 공덕으로 부처가 되었고, 간절했던 서원(誓願)으로 인해 병든 자들을 구원하는 부처로 오랜 시간 신앙이 되었습니다. 금동불, 석불, 마애불(암벽에 새긴 불상), 목조불 등 다양한 재료와 형태로 꾸준히 조성되었으며, 그의 모습은 보물(옛 지정번호 보물 제2012호)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처럼 불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보물 〈‘회암사’명 약사여래삼존도〉는 약사불과 그의 두 협시보살을 그린 조선시대 불화입니다. 높이 6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적갈색 화면 위에 부처와 두 보살의 찬란한 모습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금니(금박 가루를 아교풀에 갠 것)로 그려져 있습니다. 보상화(寶相華)와 연꽃무늬로 장식된 높은 수미단 위에 금니로 섬세히 그려진 연꽃이 활짝 피었고, 그 위로 약사불이 앉았습니다. 바탕재가 훼손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다리 위에 올린 왼손에는 약사불의 상징인 약합(藥盒)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5년의 노력 끝에 펴낸 류리수 박사가 며칠 전 글을 보내왔다. 류리수 박사는 최근 일본 외상의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뻔뻔스러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예전에 한국문학지에 번역해서 소개했던 시 몇편과 해설이 실린 글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글의 내용을 읽고 보니 필자 혼자 보기 아까워 5회의 연재로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빈다. (연재 글은 류리수 박사가 미츠다 이쿠오 교수의 글을 정리한 것임) - 기자의 말- " 1958년 2월 홋카이도 산속 땅굴에서 한 사람이 발견되었다. 미츠다 이쿠오(満田郁夫) 메이지가쿠인대학(明治学院大学) 교수는 땅굴에서 14년 동안 숨어 살다가 발견된 중국인에 대한 시를 《群》(통권14호 2003.10)에 발표했다. (《문학과 현실》(2010년 봄호)에 번역 소개됨) 미츠다 교수의 시는 다음과 같으며 내용이 조금 길다. 류리엔렌(劉連仁)이 죽었다 - 미츠다 이쿠오 산동성(山東省) 쯔아오포(草泊)촌의 1944년9월 어느 아침 마을 서쪽 변두리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갓 올린 잎새를 달고 별 바라보던 가지 끝에 곡우(穀雨) 나리시면..... 겨우내 할퀴던 바람이 첫사랑의 숨결처럼 달콤하고 별빛 부서지던 잎새, 촉촉한 입술을 반긴다. 곡우 발길 아래서 부정한 사람은 악귀를 몰아내고 볍씨를 담그는 농부의 손은 조심스럽다.” 홍순천 시인의 시 ‘곡우(穀雨)’ 일부입니다. 내일은 24절기의 여섯째로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지요 “곡우(穀雨)는 봄비(春雨)가 내려 백곡(百穀)을 기름지게 한다.”라고 하여 붙여진 말인데 곡우 무렵이면 못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농사철로 접어듭니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와 같은 농사와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전합니다. 시골에서는 못자리할 볍씨 담그기 따위로 바쁠 때인데 볍씨 담그기 전날은 부정 탈까 봐 부부가 잠자리도 하지 않습니다. 또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르는 때인데 이때 사람들은 곡우물을 마십니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따위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인데 몸에 곡우물이 좋다고 해서 예전부터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춘천시립국악단》 이유라 예술감독은 어려서부터 무용을 배우다가 안비취 명창 문하에서 경서도 소리를 익혔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 것처럼, 이 감독도 그의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여 전국 각 대학에 진학시켰고, 젊은 명창들을 많이 배출해 냈다. 2000년에는 본격적으로 <춘천국악원>과 <강원소리진흥회>를 만들어 강원도의 소리를 발굴, 채록, 연구해 왔다는 이야기는 지난주에 한 바 있다. 이유라 감독이 꿈꾸는 강원소리의 본질은 강원도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거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서가 그들이 부르는 노랫말에 담겨 있어야 하며 그 노랫말들은 강원도의 환경이 그들에게 만들어 준 가장 강원도다운 메나리조에 얹힌 가락들로 그 땅에 살면서 오랫동안 함께 불러온 전래 민요가 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옛 소리가 불리고 있는 지역이 있다거나, 또는 이러한 소리를 흥얼거리는 주민이 거주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원근을 가리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갔다고 한다. 춘천 시내는 물론이고, 양구, 정선, 평창, 철원, 인제, 횡성, 홍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아버지가 번역한 일본어판 《백범일지》를 5년의 노력 끝에 펴낸 류리수 박사가 며칠 전 글을 보내왔다. 류리수 박사는 최근 일본 외상의 '조선인 강제징용을 부정'하는 뻔뻔스러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예전에 한국문학지에 번역해서 소개했던 시 몇편과 해설이 실린 글을 필자에게 보내왔다. 글의 내용을 읽고 보니 필자 혼자 보기 아까워 5회의 연재로 싣는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빈다. (연재 글은 류리수 박사가 미츠다 이쿠오 교수의 글을 정리한 것임) - 기자의 말- " 이번 글은 미츠다 이쿠오(満田郁夫)교수가 I 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I 씨는 미츠다 교수가 오랜 연구생활을 해오면서 깊은 교분을 맺어온 K출판사 사람이다. I 씨는 어린 시절 죠반(常磐)탄광 해저 갱도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상황을 목격한 상황을 미츠다 교수에게 들려주었고 미츠다 교수는 한국에 그 내용을 공개하였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K출판사의 I 씨는 우리가 계속 펴내 온 동인잡지를 언제나 응원해 주던 사람으로 잡지 간행을 하는 동안 아주 친해졌다. 1980년대 어느 날 I 씨는 죠반(常磐)선 열차를 타고 논밭이 펼쳐진 시골마을 고향집으로 나를 데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960년대부터 춘천의 국악회, 국악협회, 국악연구원, 등에서 악(樂), 가(歌), 무(舞)의 강습활동이 펼쳐졌으나, 민요창 분야는 전문 강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교장을 지낸 연구원장이 직접 서울의 안비취 명창을 찾아가 강사 추천을 요청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안 명창은“ 가르치는 것도 공부”라는 말로 이유라를 설득하였다고 한다. 춘천과 인연을 맺게 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 <춘천시립국악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이유라 명창은 어떻게 경서도 민요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유라의 소리 인생은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다. 부친의 권유로 무용학원을 다녔고, 춤을 추면서 춤사위의 속 가락에 매료되어 중학생 때에 안비취 명창 문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유라에게 경서도 소리를 지도해 준 안비취 명창은 일제강점기, 경서도소리의 거목으로 이름이 높았던 최정식(1886-1951)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최정식은 「금강산타령」이나, 「풍등가」 등을 작사 작곡하였고, 서도 잡가, 제전(祭奠)을 축소 개편하여 세련되게 변화시켰던 소리꾼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펴낸 1976년도 《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