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중국에 양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하게 성장하였으나 배우기를 좋아하여 ‘관서 땅의 공자’라는 별칭을 얻은 사람이기도 하지요. 양진은 승진을 거듭하여 형주자사가 됩니다. 그는 부임 중에 창읍을 지나게 되는데 양진이 전에 천거했던 왕밀이 창읍의 수령으로 있었습니다. 왕밀은 밤에 몰래 황금 열 근을 가지고 와서 양진에게 건넵니다. 양진이 말하지요. "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나를 모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청렴을 몰라주는 왕밀..) "밤이 저물어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가?" 여기서 사지(四知)라는 고사가 나옵니다. 天知地知子知我知(천지지지자지아지)가 그것이지요. 왕밀은 부끄러워하며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바르고 옳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기도 하지요. 오죽하면 다음과 같은 속담이 있습니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다." "높은 산 정상에는 나무가 없다." "흙이 너무 깨끗하면 초목이 자라지 않는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으면 세상에 부합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자동차는 이동의 수단이므로 일단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멈추는 것입니다. 멈추기를 못하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산에 다니면서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먹을 수 있는 것에만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식물도 먹을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모르는 나물이라면 아예 채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산나물과 일생을 살아온 농부도 독초를 먹고 사망하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대부분 예쁘게 생긴 것이 독초인 경우가 많습니다. 꼭 뜯고 싶은데 약초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다음과 같이 감별합니다. 식물을 뜯으면 절단면에 액이 나오는데 그것을 연한 피부에 바르고 잠시 있으면 독초면 두드러기가 생기거나 가렵거나 통증이 느껴집니다. 살갗에 반응이 없을 때는 혀끝에 조금 묻혀보되 절대 삼켜서는 안 됩니다. 아린 맛이나 화끈거리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이는 독초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몸에 가시가 많이 나 있는 식물은 독초가 아닙니다. 가시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독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서기 120년 정도에 종이가 발명되었지만 실제로 널리 사용된 것은 훨씬 후대의 300년 이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거북이 등껍질, 짐승의 뼈, 금속, 돌 등에 글자를 써왔지요. 시간이 흘러서는 대쪽이나 나무, 비단에 글을 기록했습니다. 죽간은 무겁고 휴대하기가 불편했으며 비단은 가격이 비싸 널리 사용되기 어려웠지요. 따라서 학문은 상류의 특정한 계층에게만 국한되었으며, 기록을 남기는 데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비되었으니 논어의 시작인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가 왜 그러한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요. *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 배우고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글을 쓰려면 지필묵이 필수입니다. 종이와 펜, 그리고 먹이 있어야 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류입니다. 그것이 후대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 기능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논어는 모두 20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왕필의 주석이나 주자의 주석을 뺀 원문만 추리면 정말 작은 분량임에도 그 책은 20권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책을 의미하는 권(卷)의 아래 모양은 두루마리 죽간이 말려져 있는 모습입니다. 중국 역사의 요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는 92%가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런데 한자는 불편하게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씁니다. 궁궐이나 대문, 전각이나 절의 현판의 대부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서삼경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고 병풍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지요. 우리의 눈은 가로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안구는 가로운동이 세로운동보다 편할뿐더러 시야각도 넓습니다. 그럼에도 한자는 가로쓰기하지 않고 세로쓰기를 합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 왜 우린 그런 문화를 인내하며 살았을까요? 그 까닭은 종이가 없었던 시절 죽간(竹簡)을 사용했던 데에 있습니다. 죽간은 세로로 길어서 ‘세로쓰기’를 해야 했고 왼손으로는 돌돌 말린 죽간을 펼치면서 써야 했기에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이 된 것이지요. 버릇(습관)의 힘이 무섭습니다. 우린 매일 키보드를 앞에 놓고 삽니다. 공업진흥청에서는 두벌식을 표준으로 정하고 키보드에도 두벌식이 프린트되어 있습니다. 더 빠른 타자가 가능한 세벌식이 있는데도 사용자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영문은 더 심하지요. 영문 키보드를 왼쪽 위로부터 차례로 쓰면 Qwerty가 됩니다. 그것을 쿼티 자판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최근 모 회사 입사 시험에 "올챙이알은 어디에 낳나?"라는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올챙이는 알을 낳지 못하는데…. 문제가 좀 이상하네요. 개구리알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개구리알을 기른 적이 있습니다. 봄에 연못이나 물을 댄 논을 보면 어김없이 개구리알이 한 덩어리씩 뭉쳐있곤 했습니다. 몇 개를 떠서 수조에 넣어 놓는 것만으로 부화 준비는 끝이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투명한 알 속에 올챙이가 커 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올챙이는 한꺼번에 부화하여 수조 여기저기에 노닐고 빈 껍질만 남은 알을 봅니다. 올챙이는 물속 작은 벌레를 먹고 크지만 수조의 환경은 그러지 못해서 물고기 밥을 넣어주니 잘 먹고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날이 가면서 몸집이 커가는 모습, 뒷다리가 나오고 앞다리가 나오는 모습. 그 변태의 과정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개구리가 앞다리가 나오면 수조 안에 큰 돌을 넣어주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개구리로 탈바꿈했는데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올챙이 때와 숨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임승수 작가가 쓴 책 가운데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가 있습니다. 돈 많이 버는 일을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저자의 이야기지요. 돈이 목적이 되어서 내 시간을 갖다 바치는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돈에서 멀어지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행복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이 가짐을 기준으로 보면 저자는 불량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성공과 행복이 기준이 꼭 물질이 아니라면 저자는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요. 「2021 세계 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2020년 행복 지수는 50위입니다. 해당 국가의 국민총생산(GDP),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자유, 부정부패, 관용이라는 6개 항목에 근거하여 행복 지수를 산출한 결과이지요. 경제로 10위권을 달리는 나라가 자살률이 1위이고 노인 빈곤율이 높은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아니라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원전 400년을 살다간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5가지로 꼽았습니다. "첫째는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나갑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컴퓨터를 만든 혁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그는 돈이 없어 사과밭 옆 창고를 빌려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명이 애플이고 먹다 만 사과로 로고를 쓰게 된 것이며 매킨토시라는 것도 사과 품종 이름의 하나랍니다. 최고 경영자의 길을 걷던 그는 매킨토시가 성능은 최고지만 비싼 값 때문에 매출이 실망스러웠고 그것을 빌미로 애플사에서 쫓겨납니다. 그 후 넥스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애니메이션에 주력합니다. 토이스토리는 그를 백만장자의 대열에 올려놓았지요. 그 후 애플사로 복귀한 그는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승승장구합니다. 그가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결국 그는 2011년 그의 꿈이었던 애플 신사옥의 착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뜹니다. 그가 남긴 참 많은 말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오직 사랑으로 점철된 추억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부(富)이며 그것은 우리를 따라오고, 동행하며, 우리가 나아갈 힘과 빛을 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가 네 그루 있습니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수령 600년) 구례 화엄사 길상전 앞의 백매(수령 450년) 순천 선암사 선암매(수령 600년)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수령 350년)가 그러합니다. 매화마다 독특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세 그루는 유명한 절을 끼고 있으며, 한 그루는 신사임당과 율곡의 얼이 깃들어 있지요. (지금은 고사 중 1/10 정도만 살아있다고 하네요.) 아직 춘천은 매화가 이르지만, 광양은 절정기를 지났습니다. 매화를 다른 이름으로 ‘일지춘(一枝春)’이라고 하고 그 향기를 ‘군자향(君子香)’이라 불렀습니다. 예로부터 매란국죽(梅蘭菊竹)을 사군자로 불렀으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겼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눈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에 고난을 이겨낸 어려움을 극복한 장한 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일지춘(一枝春)은 한 가지만 있어도 봄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이니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올리는 부지런한 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 열매는 매실로 식용과 약용으로 두루 사용되니 꽃부터 열매까지 버릴 것이 없는 꽃이기도 합니다. 매실나무는 줄기 중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저의 유년 시절에는 변변한 장난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산과 들에서 구한 재료로 장난감이나 놀이도구를 만들어 썼지요. 겨우내 얼음판에서 지내던 시절 봄은 색다른 추억으로 다가왔습니다. 봄은 소리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풋풋함으로 개울물이 불어나 돌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로 우리 곁에 다가오기도 하고 길어진 햇살만큼이나 뒷동산에 짝을 찾는 비둘기 울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이제 막 부화한 노란 병아리의 삐악거림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개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버들강아지도 겨울 눈 고깔을 벗고 고운 모습으로 기지개를 켜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빨간색으로 탱탱하게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상처가 나지 않도록 비틀어 대궁을 쏙 빼면 거짓말같이 나무와 껍질이 분리됩니다. 양 끝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한쪽에 칼로 살짝 깎아내고 불면 봄을 재촉하는 멋진 버들피리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는 봄에만 즐길 수 있는 향연이었는데 버들강아지의 꽃말이 '포근한 사랑'이라고 하니 어쩌면 풋풋한 봄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풀피리, 파피리, 보리피리 등등 소리 낼 수 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산과 들에는 풀과 나무가 스스로 자랍니다. 먹을 수 있는 나물도 봄이 되면 지천으로 돋아납니다. 이런 푸성귀를 ‘푸새’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밭에 심어서 가꾼 채소들도 있지요. 무, 배추, 당근, 오이, 호박, 상추, 치커리, 천경채..... 이런 채소를 ‘남새’라고 부릅니다. 초정 김상옥님의 시조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오.“ 멧남새는 다소 거친 나물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푸새와 남새의 중간 정도라고 말 할 수 있겠네요. 일전에 화천으로 냉이를 캐러 갔습니다. 막 얼음이 녹은 대지에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냉이를 캐어 정갈하게 다듬어 놓으니 봄 향기가 그리 좋을 수 없습니다. 냉이의 꽃말은 “당신께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입니다. 맨몸으로 추운 겨울을 인내하고 맞이한 봄인데 송두리째 뽑혀서 식탁에 오른 냉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봄에는 산과 들, 밭이나 화단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여린 싹이 자라는 것이 쉽게 보이지 않을뿐더러 어릴 때 밟히면 그 자람을 장담할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