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담장과 담쟁이 - 이 승 룡 죽기 살기로 오르고 올라도 무슨 까닭으로 버티고 서서 담 너머 세상을 못 보게 했을까 줄기 뻗어 몸집을 불려 봐도 고개를 쳐들고 몸부림쳐 봐도 못 본 체 외면하는 줄 알았다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고마웠다 허벅지를 '탁' 치는 깨우침! 날 지켜주는 버팀목인 줄 알았다. ----------------------------------------------------------------------------------------------------------------------- 도종환 시인은 <담쟁이>라는 시에서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라고 노래한다. 또 이경임 시인은 “마침내 벽 하나를 몸속에 삼키고 온몸으로 벽을 갉아 먹고 있네 아, 지독한 사랑이네”라고 중얼거린다. 담쟁이에서 어떤 이는 도전, 어떤 이는 지독한 사랑을 본다. 하지만, 여기 이승룡 시인은 “지난밤 휘몰아친 비바람 속에 둘이 함께 서로를 의지하고 견뎌내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자 화 상 이 승 룡 지리산 법계사 부처님께 참배하고 보시함 앞에서 지갑을 열어보니 오만 원 한 장에다 천 원짜리 두 장 고민하다가 슬그머니 이천 원을 넣었다. 하산길 해우소에 볼일 보고 일어서다가 아차, 이걸 어쩌나요? 지갑을 똥통에 빠뜨린 속인(俗人) 한 명 저기 터덜터덜 걸어가네요. ------------------------------------------------------------------------------------------------------------------------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는 여러 사람의 자화상이 있는데 그 가운데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정말 특별한 자화상이다. 그 까닭은 자화상에 있어야 할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괴기한 모습이어서 그렇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적외선 투시 분석을 한 결과 윤두서의 자화상은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것은 물론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졌던 양쪽 귀 또한 작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윤두서 자화상은 두 귀, 목과 윗몸이 없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미의 계절을 보내며 이 승 룡 붉은 너의 입술에 한마디 말도 못 할 만큼 (반해버렸다) 붉은 너의 가시에 꼼짝달싹 못 하도록 (찔려버렸다) 붉은 그대 무덤 앞에 고개 숙여 있어도 (무지무지하게 보고 싶다) 이는 이승룡 시인이 지난 5월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에 쓴 시다. 때는 장미의 계절. 시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장미에 이입시킨다. 장미는 북반구의 한대, 아한대, 온대, 아열대에 걸쳐 자라며 약 200여 종에 이른다는데 꽃이 아름다운 대신 가시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하지만 가시에 무수히 찔려 만신창이가 되어도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유혹은 떨칠 수 없다. 그래서 시인도 붉은 장미 같은 그대 무덤 앞에서 보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백은 입속에서만 뱅뱅 돈다. 《삼국사기》 열전 〈설총〉 조에도 나오는 장미는 꽃말이 ‘행복한 사랑’, ‘애정’, ‘사랑의 사자’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장미 가운데 적은 빛으로도 잘 자라고 흰가루병에 강한 ‘엔틱컬’, 꽃이 일찍 피는 ‘옐로우썬’, 꽃이 크고 수량이 많은 ‘화이트뷰티’, 꽃 모양이 아름다운 ‘핑크뷰티’, 꽃잎 수가 많고 절화(자른 꽃) 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1950년대를 풍미하던 시인 김춘수는 꽃을 이렇게 얘기했다. 그 어떤 삶이든 내가 불러 주면 모두가 내게 와서 꽃이 된단다. 그런데 여기 이상현 시인은 그 어떤 이의 삶도 꽃이라고 노래한다. 내가 불러 주지 않아도 말이다. 그저 목련은 수줍음만으로도, 장미는 기쁨만으로도 꽃이란다. 작은 꽃 한 송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에 사람들이 위로를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 그냥 꽃 한 송이로도 아름답지만, 빨간꽃, 하얀꽃, 노란꽃 등 여럿이 함께하면 그 자체로도 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운 꽃천지가 되고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은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코스모스의 해맑음으로 울다 / 홀가분한 갈대로 다시 태어나 / 봄날 아지랑이 기다리며 /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라며,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꽃은 봄날을 기다리며, 눈꽃으로 새로 움튼다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문화평론가 김영조> 이상현(시인) 한국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는 간송미술관에서 신윤복의 그림 ‘주유청강(舟遊淸江)’ 곧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는 모습을 본다. 그림 속의 화제(畵題)에는 “젓대소리 늦바람으로 들을 수 없고, 백구만 물결 좇아 날아든다.(一笛晩風聽不得, 白鷗飛下浪花前)”라며 이날의 풍경을 전해준다. 녹음이 우거지고 산들바람이 일어나자 두서너 명의 양반들이 한강에 놀잇배를 띄우고 여가를 즐긴다. 호화스러운 배도 아니다. 꾸미지 않은 일엽편주(一葉片舟) 곧 한 척의 작은 배에 차일(遮日)을 드리우고 풍류를 즐기고 있다. 뱃전에 엎드려 스치는 물살에 손을 담가 보는 여인이나 턱을 고인 채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선비의 자태가 정겹다. 신록이 그늘진 절벽 밑을 감돌아 나가는 뱃전에서는 생황 소리와 젓대 소리가 어우러지고 잔물결은 뱃전을 두드리니 그야말로 선계(仙界)이리라. 하지만, 이런 선계도 그저 삿대질만 하는 뱃사공과 함께 묵묵히 흐르기만 하는 물결이 없으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저 한 척의 작은 배와 그 배에서 유유자적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우리의 이상현 시인은 “꽃이 돋보이려면 흙이 있어야 하고 유람선은 묵묵히 흐르는 물이 늘 생명을 불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2돌이다. 지난해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국가기념일 행사를 열었고, 각지에서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었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그런데 학자들에 따르면 1차 동학농민혁명이 반봉건ㆍ반부패운동이었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은 척왜(斥倭)의 항일구국운동이었다. 어제 경향신문에는 《전봉준 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칼럼 “동학혁명 지도자 전봉준ㆍ김개남 ‘항일투쟁’ 서훈해야”가 실렸다. 칼럼에서 김삼웅 선생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르면,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로 인하여 순국한 자(순국선열)”는 독립유공자가 된다. 이 법률에 의거하여, 1895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명성황후 살해에 맞서 항거하다가 순국한 을미의병 참여자들은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하지만 2차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ㆍ김개남 등에 대해선 현재까지 독립유공 서훈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라도 국가보훈처는 전봉준ㆍ김개남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지도자들에게 독립유공 서훈을 하기를 바란다.”라고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버들강아지 시인 이 상 현 미처 여물지 못한 새벽별 흐르는 물속에서 솟아올라 들판의 가슴에 안길 때 대나무순 무성한 산기슭 첫새벽 찬 이슬 맞아 볼 발개진 버들강아지 개여울 물소리에 놀라 잠깬 보송보송한 버들강아지 컹컹 짖으며 솜털 미소 날려 보낸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곧 봄이 봄이 아니란다.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에서 유래했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듣고 왕소군의 미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있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 하여 왕소군의 미모를 떨어질 ‘낙(落)’ 기러기 ‘안(雁)’ 자를 써서 ‘낙안(落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미인 왕소군은 환하게 꽃이 핀 봄이 되어도 봄이 봄일 수가 없는 슬픈 사연을 지니고 살았다는데 그 사연까지야 굳이 되뇌고 싶지 않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소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더 젊으니까 시인 김 태 영 말 많기로 소문난 동네 여편네 반가우면 반갑다고 말을 할 것이지 어머, 왜 그리 늙어버렸냐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늙긴 지가 더 늙어가지고 진짜 미워 죽을 뻔했지만 참았다 내가 지보다 더 젊었으니까. * 지가: 자기가라는 말의 짧은 사투리 어떤 재벌가 여성은 병원에서 프로포폴을 주사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프로포폴을 맞는 것이야 젊어 보이려 함이 아니던가. 그래서 나이 먹어도 젊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대신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눈총을 받았다. 대리출석에 몸서리를 앓던 대학에서는 급기야 출석부에 사진을 붙였다. 그런데 사진을 붙인 뒤 출석을 부르던 교수는 한 학생을 빤히 쳐다보며 "이 사진이 네가 맞아?"라고 물었다. 교수는 의심으로 찜찜했고 학생은 억울함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현상은 물론 디지털 기기가 발달한 나머지 사진편집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곧 젊은이들 용어로 ‘뽀샵’이란 걸 한 결과다. 여기서 우리는 이탈리아 영화배우 안나 마니냐 얘기를 들출 필요가 있다. 그녀가 만년에 사진을 찍었는데 그녀는 찍기 전에 사진사에게 조용히 부탁했다. "사진사 양반, 절대 내 주름살을 수정하지 마세요."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빨간 구두 시인 김태영 두메산골 단발머리 소녀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뒷굽 높은 빨간 구두 세월이 먼저 가져가 버렸다. 얼마 전 KBS 1TV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에서는 가수 알리가 고 나애심 씨의 히트곡 “세월이 가면”을 불렀다. 고 나애심을 자신의 가슴 속에 이입시켜 불렀다가 자신만의 노래로 재해석하기도 해 관객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이 시를 쓴 박인환은 모더니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후 폐허의 공간을 술과 낭만으로 누볐다. ‘세월이 가면’은 전쟁으로 가족과 연인을 잃고, 살아가던 당시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다시 한번 울게 만들었던 시였다. 우리는 이 노래를 다시 들을 때면 옛 추억이 떠올라 울컥하기도 한다. 며칠 전은 6년 전 2014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침몰했던 날이었다. 하필 그 이름이 ‘세월호’였더란 말인가? 유가족들은 전남 진도군 동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무줄 시인 김태영 당기면 탄탄하고 놓으면 느슨한 너는 늘 내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이른바 ‘몸뻬’라는 것을 입는 걸 보았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때 국가총동원법(1938)과 비상시 국민생활개선기준(1939)을 강제로 만들어 허리와 발목 부분을 고무줄로 처리한 부인 표준복 몸뻬(もんぺ)를 입으라고 강요했다. 심지어 1944년엔 몸뻬를 입지 않으면 버스와 전차도 못 타게 하고, 관공서나 극장도 드나들지 못하게 했으며, 여학생 교복으로도 입게 했다. 그 몸뻬는 물론 우리가 속옷으로 입는 팬티에도 고무줄은 당겨졌다 놓았다 하면서 옷의 구실을 하게 한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돌림병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이 절절매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치료의 선진국으로 우뚝 서 있다. 이를 보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인의 칭송을 들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다른 나라와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지도 않았으면서, 나라 안으로는 철저한 진단과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절히 한 덕분이 아닐까? 시인의 표현대로 몸뻬에 사용한 고무줄처럼 당기면 탄탄하고 놓으면 느슨한 고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