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상옥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어려서부터 지역의 농요라든가, 상여소리, 일반 민요창 등을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바탕위에 벽파 이창배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경기소리를 배워 남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소리꾼이라는 이야기, 그가 불러주는 소리 속에는 힘이나 음색, 강약의 조절이 자연스럽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곧 여기에 들어있는 소리와 춤, 놀이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경복궁 지경다지기>라는 말에서 경복궁(景福宮)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의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란 경복궁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던 노래와 동작이나 춤 등을 가리키는것이다. 이것을 보존하고 있는 박상옥 명창은 제자들과 함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나 춤, 놀이 과정 등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였는데,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라면 뒷산타령은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로 슬픈 느낌과 염불조의 느낌이 있다는 점, 뒷산타령의 도입부를 독창자가 낮은 음으로 내면, 제창자들은 7도 위로 받는 점이 특이하다는 점, 뒷산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인데, 받는 후렴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잦은산타령은 만(慢)-중(中)-삭(數) 중에서 삭에 해당되는 노래라는 뜻, 사설 내용도 다양한 편이어서 명산의 경개와 함께 춘향가나 심청가, 공명가나 초한가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쓰고 있다는 점, 산타령은 정가(正歌)나 무악(巫樂), 잡가(雜歌)나 민요가락과도 또 다른 독창적인 창법으로 대중들이 즐기는 소리란 점, 특히, 높고 시원한 목청과 다양한 발림, 그리고 장단형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독특한 소리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에 무계원 특별 공연에 초대되어 박상옥 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동 종목의 전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 앞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산타령의 <앞>이 뜻하는 의미는 서울의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노래한다는 의미, 또는 순서상 앞에 부르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시작은 모갑이의 선창으로 자유롭게 시작하고 여럿이 받는 형식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메기는 소리는 가장 높은 음으로 질러내며 독창자의 다양한 목구성과 다양한 기교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 본절 1의 <과천 관악산>으로 시작할 때, <과>를 생략하고 <천>을 관에 붙여 <천관> 그리고 <악산>으로 불러 그 의미가 통하지 않게 부르는데, 성악곡이란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기에 노랫말의 전달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에 이어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를 하겠다. 뒷산타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그 뒤편에 있는 산을 부른다고 해서 또는 앞산타령을 먼저 부르고 난 뒤, 이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인 것에 비해 뒷산은 글자마다 주무르듯 가락을 넣거나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가운데 대표적인 <놀량>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선소리는 놀량이 대표적인 소리인데, 그 뜻은 놀 작정, 놀 생각, 놀 의향 등으로 풀기도 한다는 점, 놀량의 노랫말에는 의미 없는 가사의 입타령이 많은 편이며 뜻을 알 수 있는 사설은 후반에 나오고 있다는 점, 장단도 일정한 빠르기나 형태로 반복되지 않고, 소리에 따라서 2박, 3박, 4박 등 다양하다는 점을 말했다. 또 놀량의 선율 형태에는 솔-라-도의 상하형 선율과 높은 음역에서는 미-솔-라-도의 상행, 또는 도-라-솔-미의 하행선율이 활기차게 나타난다는 점, 서도의 놀량은 가사의 의미가 분명하고 서도식의 요성(搖聲)창법과 비교적 빠른 박자로 진행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 이야기로 이어간다. 첫 곡 놀량에 이어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이름이 앞산타령이고, 세 번째 악곡이 뒷산타령이다. 앞산타령이란 이름에서 <앞>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벽파는 《가창대계》에서 서울을 두고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부르고 있어서 <앞산타령>, 그 뒤에 둘러있는 여러 산을 부른 것이 <뒷산타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야기 한 답교놀이는 다리[脚]로 다리[橋]를 건너는 놀이, 곧 사람이 물 위에 놓인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 한 해 다리 병(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성행했던 놀이였다. 이 놀이에는 인근의 소리패들이 모두 모여 함께 산타령을 불렀는데, 이제 그 전문적인 소리패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다행이 왕십리 소리패들의 가락이 벽파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는데, 그 특징은 활달한 창법이나 다양한 장단감, 건전한 사설의 내용 등이며 산타령의 전승과 활성화 문제를 국악계가 고민해야 한다는 점과 관리감독청인 ‘문화재청’에서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놀량>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한다. 경기지방에서 불리어 온 산타령의 구성은 제1곡이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산타령>의 4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다. 여기에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개구리타령>이나 <방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과 같은 비인기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보존회원들에게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는 점과 뚝섬패의 모갑이, 이동운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동운은 어려서부터 산타령을 잘 불렀고, 어느 날 고종 황제 앞에서 부르게 되었는데, 고종이 감탄하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뚝섬벌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와 그의 형을 가르친 선생이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이종대, 이종대의 선생이 이의택으로 산타령의 계보가 정리되고 있는 점에서 늦어도 1800년대 초기에는 산타령이 불려 졌으리라는 이야기, 그리고 산타령을 부른 초기의 소리꾼들은 사당패, 예인집단, 또는 세속 음악인들이 그 앞 시대로부터 전해오고 있는 소리형태를 고치고 다듬어 전승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실제로 <앞산타령>이라든가 <뒷산타령>과 같은 산타령의 악곡 이름이 문헌에 보이는 것은 1910년~1920년대에 등장하는 각종 잡가집(雜歌集)들이어서 이미 이 시대에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처럼 1920년대 전후, 산타령이 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산타령 정례발표회를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에서 열고 있는 배경도 왕십리패가 부르던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의 고향이 성동구라는 점, 이와 함께 무형문화재 종목은 개인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연례적인 공개발표회를 통해서 전승 의지나 실태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 발표자들을 따라 산타령을 함께 제창하는 청중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제 산타령은 대중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등을 앞에서 이야기 하였다. 문화원 대극장에서 산타령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사회자(방영기 전수조교)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 산타령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즉석 도움말을 하게 되었다. 평소 경기소리나 산타령에 관한 생각의 일단을 가감 없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이 비인기 종목을 붙들고,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여러분과 우리 사회가 보내는 진정어린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범한 직업인들이라는 점과,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여건을 뒤로 하고, 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성동구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열린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소개와 함께 선소리와 앉은소리, 곧 입창과 좌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을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라는 점, 노래를 서서 부르거나 또는 앉아서 부르는 연행 형태는 해당 음악의 특징적 표출 방법이 다르다는 점, 좌창은 대부분이 감정을 절제하는 형태이나 입창은 상대적으로 손이나 발, 또는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는 점, 입창의 형태로 부를 것인가, 좌창의 형태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라, 음악적 성격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산타령은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한 단체 종목이다. 1969년에 지정되었으니 벌써 50년이 흘렀다. 최초에는 김태봉, 유개동,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 5인이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었는데, 이처럼 한 종목에 5인의 예능보유자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여 향후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대했던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 도령과 이별하고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서로 거울과 옥지환을 이별의 정표로 나누었지만, 정작 이별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며 주저앉는다는 이야기, 떠나가는 이 도령의 모습이 이만큼으로 시작해서-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현상을 그림처럼 그리는 대목도 재미있다는 이야기,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이제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춘향의 서글픈 심경은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나뭇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비가 내려도 임의 생각, 밥 못먹고,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임 그리운 탓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던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와 함께 연창의 형태를 의미하는 입창과 좌창의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이 난에 소개한 바도 있거니와, <산타령>은 선소리, 곧 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