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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뇌고(雷鼓)소리 절로 난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74]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김세종제의 <암행어사 출도대목>에서 유삼통 잃은 하인이 양금(洋琴)을 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양금에 관한 소개를 하였다. 양금의 명칭은 서양금(西洋琴)을 줄인 이름이며, 선교사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고,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후기, 영조무렵에 들어왔다는 점, 소규모 합주나 노래 반주에 쓰여 왔는데, 현재는 <현악 영산회상>이나, <가곡반주> 기타, 창작곡 연주 등에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암행어사 출도 대목의 뒷부분을 이어간다.

 

“밟히나니 음식이요, 깨지나니 화기(畵器)로다. 장구통은 요절하고, 북통은 차 구르며 뇌고소리 절로 난다. 저금줄 끊어지고, 젓대 밟혀 깨야지면, 기생은 비녀 잃고 화젓가락 찔렀으며, 취수는 나발 잃고 주먹 불고 흥앵 흥앵, 대포수 총을 잃고 입방아로 꿍, 이마가 서로 다쳐 코 터지고, 박 터지고 피 죽죽 흘리난 놈, 발등 밟혀 자빠져서 아이고 우는 놈, 아무 일 없는 놈도 우루루루루 달음박질. 허허 우리 골 큰일 났다! 서리 역졸 늘어서서 공방을 부르난 듸,” <아래 줄임>

 

다급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북, 장구(杖鼓), 등이 이리저리 뒹굴고, 취수가 나발 잃고 주먹으로 소리를 내며, 대포수가 총을 잃고 입방아로 꿍 소리를 내는 등, 어수선하다. 워낙 다급한 상황인지라 장단은 무척 빠르게 진행된다.

 

잔치상이 벌어진 다음에, 암행어사가 출도하였으니 잔치상이 넘어지면서 상위에 쌓였던 여러 음식이 쏟아져 발에 밟히고, 예쁜 그릇들이 깨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뿐만 아니라, 연회장 분위기를 돋워 주던 악기의 모습도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인데, 먼저 장구통이 요절(腰折)한다는 말, 곧 장고통이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났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장구는 원래 채로 치는 북이라는 뜻에서 장고(杖鼓)라고 쓰고, 읽는다. 또한, 허리가 가늘다는 뜻에서 세요고(細腰鼓)라는 이름도 있다. 이 악기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숙한 타악기일 것이다. 허리가 잘록한 통 양편에 오른쪽은 채편 가죽과 왼쪽은 북편가죽을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묶어 놓고, 장고채와 손바닥을 써서 소리내는 악기다. 농악이나 풍물놀이 등 야외음악에서는 오른편의 장고채, 왼편도 궁구리채를 사용하여 음량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장고가 우리 음악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2세기, 고려 예종임금 이후로 보인다. 이때 중국으로부터 많은 악기가 들어오는데, 그 가운데 장고도 포함된 점에서 순수한 향악기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민족과 함께해 오면서 가장 친근한 악기가 되었다.

 

지휘자가 따로 없는 대편성의 합주 음악에서는 장고채로 복판을 쳐서 박자를 유지해 나가는 지휘자 격의 주요한 악기이다. 그런가 하면 실내음악이나 소규모의 세악(細樂)합주, 독주악기의 반주, 또는 노래 반주를 할 때는 채편의 가장자리 부분, 곧 변죽을 쳐서 음량을 조절한다. 자세한 설명은 악기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룰 때, 보충하기로 하겠다.

 

그다음에 나오는 재미있는 표현이 또한 ‘뇌고(雷鼓)소리 절로 난다’라는 표현이다. 악사가 뇌고를 치지 않았음에도 북통끼리 서로 부딛쳐 소리가 저절로 난다는 말은 어지럽고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저절로 알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뇌고>와 <뇌도>라는 북은 하늘을 제사하는 천신제(天神祭)에 쓰였던 타악기이다. 땅을 제사하는 지신제(地神祭)에는 <영고>, <영도>가 쓰였고, 사람 제사할 때에는 <노고>와 <뇌도>였다. 뇌고는 6개의 북면을 둥글게 붙여 놓은 악기다. 뇌고나 뇌도가 6면인 것은 천신 제향의 강신악이 여섯 번 연주하는 것과 일치한다. 뇌고는 진고(晉鼓, 통이 긴 북으로, 나무틀 위에 놓고 치는 악기)를 따라 치고, 뇌도는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세 번 흔들어 소리를 낸다.

 

세종 때는 북 셋을 둥근 원철에 달아 놓았으나, 성종 이후에는 현재와 같이 북면 6개를 둥글게 달아 놓은 것으로 바뀌어 전해 온다.

 

그런데, 위 본문에 보이는 것처럼 지방의 사또 생일날, 하늘 제사에 쓰인 뇌고를 배치했다면 이것은 전후 사정이 잘 맞지 않는 편성이 될 것이다.

 

그다음 나오는 악기가 저금인데, 제금의 사투리로 보인다. 이 악기는 원래 우리나라 고유의 악기는 아니고, 중국의 악기 가운데 야자수 열매를 파서 울림통을 만들고 뱀의 껍질이나 오동나무 판으로 덮고, 말총으로 켜는 현악기로 우리나라 해금과 유사한 악기인데, 이것이 포함된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또 소개되고 있는 악기가 바로 젓대이다. 젓대는 저, 또는 대금으로 알려진 옆으로 부는 관악기이다. 그리고 취수(吹手)란 나발이나 태평소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지만, 사실 취수(吹手)라는 말은 잘 안 썼고, 일반적으로 취고수(吹鼓手)라는 말은 자주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