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윤동주 시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71살) 씨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올해 나라안팎에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20여 년 넘게 윤동주 시인을 일본에 알리는 일을 해온 야나기하라 야스코 씨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해마다 2월 도쿄에서 윤동주 시인 추모회를 여는 등 윤동주 시인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야나기하라 야스코씨를 기자는 지난 8월 5일 오후 3시, 일본 도쿄의 최대 고서점가 진보쵸(神保町)의 한국 북까페 <책거리(CHEKCCORI)>에서 만났다. 야나기하라 씨는 1년에 한두 번씩 윤동주 시인 관련 일로 한국에 다녀갈 정도로 한국통이며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건넨 명함에는 아무런 직함도 없이 이름과 연락처만 적혀있다. 그것은 원래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조용한 성품에서 나온 자세로 사실 야나기 하라 씨의 직함은 ‘시인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의 대표다. 올해 71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야나기 하라 씨와의 대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스스로 잘난 체 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孤幕孤於自恃(고막고어자시)-” 안중근(1879~1910) 의사를 모신 국내 단 한 곳의 사당인 해동사(海東祠)안에는 안 의사의 심지 곧은 마음이 드러난 유품 몇 점 만이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국내 유일의 안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전라남도 장흥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6일(토), 서울에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간 기자는 안 의사의 유적지를 쫓아 거사 현장인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과 그곳에 들어선 안중근의사 기념관 그리고 거사 뒤 처음으로 잡혀갔던 일본영사관 건물과 자신이 죽으면 뼈를 묻어 달라던 하얼빈공원(현 조린공원)의 "청초당" 이란 돌비석을 세운 자리까지 찾아다녔지만 국내에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부끄러웠다. 출발에 앞서 길찾개(네비게이션)에서 해동사(海東祠)를 찾으니 뜨질 않았다. 간신히 알아낸 정보를 통해 죽산 안씨 사당인 만수사 (萬壽祠,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에 안 의사를 모신 해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극비스런(?) 정보를 준 사람은 장흥의 향토사학자 안명규 씨였다. 안중근 의사 사당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제의 한일합병 강제조약이 체결된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된 지 1년, 그동안 약 2천명의 시민들이 방문해 돌아가신 피해 할머니를 기리고 ‘위안부’에 대한 역사를 배웠다. 시민 참여 문화해설 프로그램이 주중, 주말 운영돼 그동안 3백여 명이 다녀갔으며, 이외에도 단체 방문, 개인 방문 등을 통해 약 2천 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진행되는 ‘문화해설 프로그램’은 위안부 제도에 대한 역사와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 그리고 기억의 터 주변 인권 탄압의 현장을 보여주며 인권과 역사교육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위원장 최영희)는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8월 26일(토) 17시,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에서 1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기억의 터는 초등학생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약 2만 명이 3억 5천만 원을 모금해, 2016년 8월 29일 조성되었다. 지난 1910년 8월 29일은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병조약을 공포,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이다. 이런 의미를 담아 경술국치(庚戌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처음으로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이쯤 되면 <아멘>하고 싶어진다. 이 시는 한국 최고의 시인이라는 미당 서정주(1915~2000) 의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처음으로의>'의 일부다. 이 시를 쓴 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훌륭한(?) 미당 시인의 시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정말 미당의 시가 맞나?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맞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미당 서정주의 시가 맞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잘 모른다. 37살 이후 세대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들을 위해 미당은 ‘전두환 대통령을 위한 찬양시’를 썼는가? 요즘 천만관객을 동원한 광주항쟁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 가가 막힐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유사이래 최고로 극찬한 대한민국 최고(?)의 시
[우리문화신문= 시즈오카 아라리 이윤옥 기자] 아라리항(安良里港)으로 가는 길은 마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듯 굽이굽이 굽은 산길을 달려야했다. 이즈반도(伊豆半島)의 시모다(下田)에서 아라리항까지는 승용차로 1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2차선의 좁은 길인데다가 산길이라 속력을 내지 못했다. 동행한 지인 이토 노리코(伊東典子, 62살)씨는 아라리항과 고대한국이 관련된 곳이라고 하자 한국의 ‘아리랑 노래’와 비슷한 땅이름이라고 하면서 아리랑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리코 씨는 과거 한국어를 배운적이 있는데 그때 아리랑 노래를 배웠다며 제법 가사를 외우고 있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즈에서 30년을 살고 있는 노리코 씨는 아라리항구 쪽에는 여러번 와봤지만 이곳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날 안내는 아라리항 가까이에 사는 야마모토 구미코(山本 久美子, 68살)씨가 해 주기로했다. 하필이면 날씨가 궂어 약간 굵은 빗줄기 속을 달려 구미코 씨와의 약속장소인 아라리항이 건너다 보이는 니시이즈쵸 중앙공민관(西伊豆町 中央公民館)에 도착한 시간은 8월 16일 오전 11시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구미코 씨는 이곳 공민관 2층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로 활동하는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수원평화나비는 14일 권선동 올림픽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를 열고,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와 반성, 법적 배상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에는 위안부 피해자인 안점순(89, 수원 세류동) 할머니를 비롯해 염태영 수원시장, 수원평화나비·수원청소년평화나비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2014년 설립된 수원평화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다. 수원평화나비ㆍ수원청소년평화나비 회원들은 기림식에서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맞이 세계연대집회 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를 비롯한 전쟁 범죄 가해국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한 공식 사죄 및 법적 책임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각국 정부는 일본국성노예제와 같은 전시 성폭력 전쟁범죄 종식을 위한 구체적인 법·실천적 조치를 계획하고 이행하라”면서 “정의로운 해결을 통한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명예·인권 회복은 모든 전쟁과 전시 성폭력을 종식하는 시작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점순 할머니는 “여러분이 힘을 모아서 우리(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도와주셔서 감사드린다.”면서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어난, 동학교도들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들은 전봉준장군을 중심으로 오합지졸 같은 농민군을 재편하였다. 전봉준은 당시 특별한 군사교육을 받은 바도 없었지만, 타고난 지도력으로 다른 지도자들의 만장일치 추천으로 최고의 지휘관이 되었다. 동학혁명이 발생하기 전, 전봉준은 정읍(옛 고부군)이평면 장내리 현재 복원한 생가터에 소작농으로 살았다. 다른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아가면서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학문을 바탕으로 학동을 가르치는 훈장도 하면서 간단한 처방의 한약사도 했다. 그러나 그 삶은 궁색하기 그지 없었다. 일찍 병으로 아내를 보내고, 얼마 안있어 아버지 전창혁마져고부관아로 끌려가 태장(매맞는 형)을 맞은 것이 병이되어 결국 죽고 말아 한맺힌 삶을어린 아이들과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야 했다. 조선 후기 당시 농민들의 삶을 살필 수 있는 정읍전봉준 옛집은, 동학혁명의 실패로 폐가가 되어사라졌던 것을 최근 동학혁명이 재조명되면서전봉준장군의 옛집도 이렇게 복원되었으나, 그의 가옥을 복원한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10.26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이후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우리문화신문= 아오모리 이윤옥기자] 일본 도호쿠지방(東北地方)인 아오모리현의 네부타마츠리(8월1일~7일)를 참가하고 찾은 곳은 신라신사(新羅神社)였다. 엇? 도호쿠지방에 웬 신라신사? 라고 할지 모르나 이곳에는 4곳의 신라신사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3개의 신라신사와 1개의 합사(여러 신사를 하나로 모은 곳)가 있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하치노헤시 쵸우자산(八戸市 長者山)언덕에 자리한 신라신사요,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미노헤 난부지역(三戸郡南部町)의 신라신사와, 아름다운 호수 도와다코(十和田湖) 주변에 있는 신라신사로 창건 1,100여년에 이른다. 가장 규모가 큰 쵸우자산 신라신사는 《하치노헤번일기(八戸藩日記)》에 따르면 1678년 이 지역의 2대 번주인 난부나오사마(南部直政, 1661~1699 )가 이 지역사람들의 오곡풍요와 무병장수를 위해 5천평의 대지에 신라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난부씨(南部氏)가 세운 이 신라신사는 야마나시현(山梨県)의 신라신사와 시가현(滋賀県)의 미이데라 신라선신당(三井寺 新羅善神堂)과 연관이 있는 신사라고 전한다. 아오모리(青森)라는 곳은 땅이름이 말해주듯 ‘푸른 숲, 푸른 산’으로 이뤄진 도시답게 관동지방과 달리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수원시는 14일 낮 11시 권선동 올림픽공원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행사를 연다. 개회선언과 묵념으로 시작되는 기림일 행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ㆍ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수원평화나비’ 황의숙 상임대표의 인사말, ‘제5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선언문’ 낭독, 위안부 피해자인 안점순(수원 세류동)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 등으로 진행된다. 수원평화나비 설립 3주년 기념식도 열린다.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전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날이다. 2012년 대만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제정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1924~1997)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증언한 날이다.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 주장을 반박하며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은 위안부 생존자들의 피해 증언이 이어지고,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수원광교박물관이 울릉군 독도박물관과 함께 11일부터 11월 5일까지 광교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공동특별전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를 연다.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에는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분명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역사 자료와 유물 60여 점이 전시된다. 「삼국사기」, 「고려사」,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삼국접양지도’, ‘해좌전도’ 등 역사서와 고지도에 기록된 독도를 만날 수 있다. 17세기말 일본에 건너가 일본에도막부가 울릉도ㆍ독도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 ‘안용복’의 노력을 볼 수 있는 기록 「원록구(병자)년조선주착안일권지각서」, 「죽도도해금지령」, 「울릉도 검찰일기」 등도 전시된다. 두 박물관은 독도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바탕으로 관람객들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올바른 독도 역사를 인식하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전시를 공동기획한 광교박물관과 독도박물관의 인연은 수원 출신 서지학의 대가 고(故)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으로부터 시작됐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이종학 선생은 독도와 관련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