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원래 사진 촬영은 금지입니다만 한국에서 오신 기자를 위해 특별히 허용합니다. 하지만 유리문 밖에서 보셔야합니다." 어제 5일(목) 찾은 관세음신앙의 명소인 연화원 홍명사 (蓮華院弘明寺, 렌게인구묘지)의 미마츠간다이(美宋寬大) 부주지 스님은 기자를 본당(대웅전) 안쪽 깊숙이에 모셔져 있는 11면관세음보살상(줄여서 관세음상) 앞으로 안내했다. 높은 천정의 조명은 흐리지만 관세음상 앞에 켜둔 여러 개의 촛불이 서로 관세음상을 비추려는 듯 흔들거리며 밝기를 조절해주는 듯했다. 아! 이 불상이 1,300여 년 전 백제계 행기스님이 직접 만든 불상이라니 기자는 합장하여 예배했다. "행기스님이 만든 이 불상은 1도삼례(一刀三禮)로 만든 것입니다. 곧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고,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는 방식이지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 간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홍명사의 관음상은 관동지역에서도 그 형식이 아름답기로 으뜸입니다." 부주지 스님은 관음상을 우러러 보고 있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역시 한국 최초 공개 불상이다.(기자는 군마현의 미즈사와절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 상을 최초로 공개한바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로 가기 위해 도쿄에서 특급으로 한 시간여 달려가 내린 자마역(座間驛)은 한적한 소도시 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길을 묻고자해도 지나는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에 성곡사는 자리했다. 판동33소관음순례 제8번(坂東33所觀音巡禮第八番) 도량인 성곡사는 일본 최초로 대승정의 칭호를 받은 백제계 출신 행기(行基, 668~742)스님이 개산(開山)한 절이다. 행기스님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에는 행기스님을 백제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 행기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奈良 藥師寺)에서 신라승 혜기(慧基)와 백제계 의연(義淵)스님에게서 불도를 닦았으며 스물네 살에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덴표 17년(745)에 대승정 자리에 오른 일본의 고승이다. (초대승정은 고구려 혜관스님이고 행기스님은 이후 대승정으로 활약). 이후 민중 속에서 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다 81살의 나이로 스가와라지(菅原寺)에서 입적한다. 나라시대 뛰어난 고승들이 많았지만 행기스님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승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은 2017년 1월 3일부터 서울역사 누리집 서비스 시작한다고 밝혔다. 서울역사편찬원은 그간 서울시 문화포털을 통해 서울에 대한 역사 정보와 강좌정보를 제공해왔지만, 단순하게 몇 개의 게시판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역사를 누리고 서울역사편찬원의 강좌와 답사 등을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늘 있어 왔다. 또한 기존에 서울육백년사를 쉽게 보기 위해 1999년에 개설된 서울육백년사 누리집은 그동안 새로운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서울역사편찬원은 2015년 하반기 예산타당성 심사를 거쳐, 2016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업체 선정을 하였다. 이후 누리집 콘텐츠를 개발한 뒤에 서울시 서버에 이관하였고, 시작심의과정을 거쳐 드디어 2017년 1월에 대시민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었다. 먼저 서울역사돌아보기 메뉴를 통해 서울 역사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알아 볼 수 있다. 한 번의 키워드 검색과 서울2천년 연표 검색을 통하여 2천 년 전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사 깊이읽기 차림은 말 그대로 서울 역사를 깊게 이해하는 차림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의 발간물들을 전자책 형태로 쉽게 열람할 수
[우리문화신문=도쿄이윤옥 기자] 새해 이틀째 도쿄 코리아타운 신오쿠보 거리는 활기찼다. 오후 5시 기자가 찾은 신오쿠보 거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에서 내려 걷다보면 한국 간판들이 즐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속에 낯익은 한국어도 꽤 들려온다. "헤이트스피치(혐한시위자)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이곳 코리아타운의 명성도 점차 사그러든 느낌입니다. 하지만 어떻게해서든지 이곳의 경기를 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한국인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 지난해 여름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을 찾았을 때 이사장 하라다쿄코 씨는 기자에게 이곳 상권이 살아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 고려박물관이 세들어 사는 건물 1층의 한국인 가게도 문을 닫았다는 이야길 듣고 내심 마음이 아팠다. 한류 붐이 일고 경기가 좋을 때는 이곳 신오쿠보 거리를 지나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데 어제 둘러본 신오쿠보 거리는 뭔가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마다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어딘지 모를 생기가 돌았다. 올 한해는 더욱 활기찬 코리아타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문화신문=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 이윤옥기자] “1월 1일 오후 3시에 오시면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일본 군마현 치요다쵸에 자리한 광은사(光恩寺, 고온지) 주지스님은 서울에서 누리편지(메일)를 보낸 기자에게 시간까지 정해주면서 찾아오라고 했다. 1월 1일은 일본 절에서 새해맞이(初詣, 하츠모우데) 로 한해 가운데가장 바쁜 때로 외부 손님과의 대담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님은 흔쾌히 기자와의 약속을 해주었다. 광은사는 고구려 혜관스님이 개산(開山, 산문을 연다는 뜻으로 창건을 뜻함)한 절로 이카호의 수택사(미즈사와데라, 水澤寺), 이바라기현의 근본사(根本寺, 곤본지)와 함께 관동 지역의 3대 고찰 가운데 하나인천년 고찰이다.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주지스님을 찾아뵙겠다고 한 것이 죄송스런 일이긴 하지만 기자 역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 이때뿐인지라 용기를 내어 편지를 보낸 것이 가상했는지 광은사의 주지스님은 약속대로 3시에 기자를 맞았다. 팔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모습의 주지스님은 검은 옷에 흰 목도리를 두르고 기자를 만나자 마자 명함을 건네주었는데 광은사주직(光恩寺住職) 나가라쿄코(長柄行光)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실례지만 연세는? 이라고
[우리문화신문=일본 군마 다카사키 이윤옥 기자] " 아! 이곳에 고구려 혜관스님 동상이? 스님 사진을 찍어도 됩니까? " " 물론이죠. 얼마든지 찍으십시오" 주지스님은 친절히 대답했다. 본당(한국의 대웅전)안은 약간 컴컴했으나 고구려 혜관스님 동상 앞에 켜놓은 두 자루의 촛불이 이내 주위를 밝혀주었다. 자세히 보니 혜관스님의 동상은 목상(木像)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1,300여 년 전 멸망한 고구려의 스님을 수택사(水澤寺, 미즈사와데라) 본당에서 마주하다니 기자는 잠시 감격에 겨워 울컥 목이 메었다. "고구려 혜관스님을 찾아 우리 절에 온 한국인은 이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우리 절에 관한 자료는 선대로부터 내려온 이 자료가 전부입니다만 혹시 이 선생님께서 다른 자료를 찾게 되면 알려주십시오." 주지스님은 젊은 분으로 몹시 친절했다. 기자가 찾은 12월 31일 오전 10시는일본절에서는 한국의 석가탄신일에 버금가는 중요한 날로 새해를 절에서 맞이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날이기에 주지스님을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좀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주지스님은 한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기자를 위해 따끈한 차 한 잔을 내어주며 흔쾌히 시간을 내주었다.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과 고려인문화센터(회장: 김 니꼴라이)는 2016년 12월 18일(월)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연해주 고려인의 역사와 삶을 주제로 150여 점의 실물・사진 자료와 10여 점의 동영상 등을 소개하는 고려인역사관을 재개관하고 개막식을 하였다. 이날 개막식에는 우수리스크시 부시장 옥산나 블라디미로브나 말리셰바, 전 러시아 고려인연합회장 조 바실리, 중국 조선족협회 전규상 회장, 한국 조선족협회 김성학 회장 등 나라안팎 한인동포, 이석배 주 블라디보스톡 대한민국총영사, 최동준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 황광석 동북아평화연대 이사 겸 고려인사업회장, 전북대 윤상원 교수 등 300여 명이 참석하였다. 고려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담은 고려인역사관 연해주는 멀리 발해의 영토였으며 항일 투쟁의 근거지였고 수십만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열차에 오른 곳이며, 현재도 러시아 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려인이 사는 지역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 내 고려인역사관은 2009년 10월 동북아평화연대의 지원으로 개관되어 우스리스크 지역 고려인과 러시아인, 그리고 한국 방문객에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26년 오늘(12월 14일)은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에 뽑힌 날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임시정부 행정부 우두머리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919년 3ㆍ1만세운동 직후 일본통치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기관의 필요성을 느낀 애국지사들이 4월 11일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하고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입법기관)을 꾸렸습니다. 이때 임시정부의 행정부인 국무원(國務院)을 구성하고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李承晩)을 추대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활동하던 이승만이 한성임시정부 집정관총재를 ‘대통령(President)’으로 번역해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국 9월 1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지요. 하지만, 이때부터 임시정부는 크게 갈등에 휩싸이고, 미국의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이승만에 반대해 이동휘, 신채호 등이 임시정부를 떠납니다. 그리고 1925년 임시정부는 미국에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을 탄핵한 뒤 박은식(朴殷植)을 대통령에 선출했습니다. 이어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를 국무령제로 바꾸고 첫 국무령(행정부 우두머리)에 여러 계열로 갈린 독립운동계의 통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국회 탄핵은 이루어졌지만, 방심할 수 없다는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날씨도 추운 12월 중순임에도 국민들은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추운날, 혼자라면 더 추울 것이지만, 함께한 광장은 서로가 촛불을 켜들고서로를 껴안으니 작은 촛불이 훈훈한 날로가 되어 춥고 어두운 밤을 밝힐 수가 있었다. 국회 탄핵의결로 마무리 되기에는 아직도 험난한 고난의 길이 있음을 이제 국민들은 알고 있다. 자칫 추위에 촛불의 힘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또 다시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나설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 많은 국민들이 알아버린 것이다. 광화문 추운 돌바닥에 손에 손을 잡고 촛불로 불을 밝히는 모습은 한국민이 얼마나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전 세계인이 시위문화를 배우기 위하여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고 있다. 이 장엄한 국민들의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행동에 감동과 찬사가 쏟아지고 있으며,그 현장에서 취재하는 기자 또한 시대의 증인으로 참석하고 있음이 감개무량하였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하야 하야 하야 하야하여라 박근혜는 당장 하야하여라“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떼창으로 불려지는 하야가다. 200만 명이 부르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포하는 온 국민의 외침이다. 준엄한 명령이다. 이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한 건의 불상사도 없다. 이런 성숙한 국민 수준을 얕잡아 보는 정치권은 무엇이냐? 어느 정치인은 촛불은 꺼질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 촛불은 보란 듯이 더욱 많이 더욱 찬란하게 타오른다. 아니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남녀노소가 없다. 머리가 허연 어르신은 물론아빠의 목마를 탄 어린이까지 촛불집회장은 분노의 표출이자 잔치마당이었다. 정말 이 엄중한 꾸짖음을 보고 이제 어떤 정치권이 국민을 무시하고 꼼수를 부릴 것인가? 요 몇 년 사이 가장 큰 고통을 겼었던 아니 지금도 그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희생학생의 어머니가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오열하면서 조목조목 호소한다. 대통령의 7시간 어디서 뭘 했기에 우리 아이들이 선실에서 울부짖다가 죽어가도록 했는지 묻는다. 이를 듣고 있던 많은 이들이 훌쩍인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매주 교대로 출연하는 유명 가수들. 이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