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1938년 3월, 일제의 ‘처녀공출’에 걸려 중국으로 끌려간 박영심은 어떻게 임신한 상태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1941년, 병원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얘기에 속아 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간 김소란(가명)은 감시와 폭행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위안부’ 피해를 증언할 수 있었을까? 서울시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지난해 12월 31일 발간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위안부’ 이야기(이하 「‘위안부’ 이야기」)》 사례집과 관련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첫 강연회를 오는 2월 22일(수) 한다. ‘위안부’ 이야기는 시가 작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 가운데 하나로 ‘위안부’ 피해자 10인의 생생한 증언은 물론 미국, 태국 현지조사를 통해 새롭게 발굴한 역사적 입증자료까지 망라해 교차분석한 첫 사례집이다. 그동안 ‘위안부’ 연구에 있어 일본 정부・군 공문서를 활용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상황에서 이번에 발견한 미국 및 연합국 생산자료는 ‘위안부’ 실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역사 사료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번 「‘위안부’ 이야기」 강연회는 그동안
[우리문화신문= 일본 사이타마 김영조 기자] "식민지 시대의 창씨개명, 한글금지, 독립운동가 고문 등 우리 선조들의 만행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사죄의 길을 찾고 싶습니다." "일본 내의 민족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민족학교차별을 하는 일본 정부와 투쟁중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키운 민족교육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실감나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한국의 여성들이 이러한 난관을 극복한 점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이러한 강연을 일본 전역에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사이타마 시민들이 이윤옥 시인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 강의를 듣고 쓴 소감문들이다. 어제(15일) 오후 6시부터 2시간 여 동안진행된 사이타마현 우라와(浦和)커뮤니센터 제7회의실에서 가진 이윤옥 시인의 여성독립운동가 강연은 전날인 14일 고려박물관에서의 강연에 이은 2회째 였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목숨을 건 꽃들의 이야기-조선독립운동에 앞장선 여성독립운동가들-" 이라는 부제로 강연을 한 제7회의실에는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에 관심이 있는 각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여 이윤옥 시인의 열띤 강연을 들었다
[우리문화신문= 일본 사이타마 이윤옥 기자]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신사(神社) 경영이 어려워 아버지는 교사 직업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게 1975년 무렵입니다. 이후 아버지는 교직을 사직하고 궁사(司宮, 구우지) 일에만 전념하게 되지요. 여러분이 고마역(高麗驛, 고구려를 고마라고 발음)에 내렸을 때 광장에 빨간 장승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거기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것은 아버지의 글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쓴 글씨는 아닐 겁니다. 병환 중에 쓰신 글씨였거든요." 고마신사(高麗神社, 고마진자)의 제60대 궁사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는 대담을 위해 찾아간 기자 일행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장승에 새겨진 글씨가 아버님의 글씨라고요? 아이고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보고 올 것을 그랬네요" 일행은 고마역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그 글씨가 누구의 글씨인지 몰랐다. 15일(일) 오전 11시, 사이타마현 히다카시(埼玉県日高市)에 자리한 고마신사의 접견실에서는 기자를 포함한 한국인 4명과 일본 고려박물관 운영위원인 도다 미쓰코(戶田光子) 씨 등 일본이 3명이 1시간 가까이 궁사(宮司)와 환담 시간을 가졌다. 고마신사를
[우리문화신문= 도쿄 김영조 기자] "강연을 듣고 나서 관람객들이 그림을 대하는 모습이 더욱 진지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실감나듯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시된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아쉬운 것은 이번 특별강연 날짜를 전시 막바지에 갖게 된 점입니다. 좀 더 일찍 강연날짜를 잡았더라면 더욱 좋았을 텐데..." 이는 어제(14일) 오후 2시,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열린 "침략에 저항한 불굴의 조선여성들(侵略に抗う不屈の朝鮮女性たち)"에 관한 이윤옥 시인의 특강이 있은 뒤 주최 측인 고려박물관 회원들과의 뒤풀이 자리에서 나온 말이었다. 정말 통쾌한 강연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여성들의 불굴의 의지를 유창한 일본어로유감없이 낱낱이 밝힌 이날 강연은 고려박물관 7층 전시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과 2시부터5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중간 휴식 없이 진행되었다. 다소 긴 3시간이었지만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거침없는 이윤옥 시인의 열띤 강연에 청중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숨을 죽이며 경청했다.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한 청중들은 자연스레 일제침략의 역사를 새삼 상기한 듯 질의응답 시간에는 20여 명이 다투어"일제침략기에 대한"
[우리문화신문= 이바라키현 이윤옥 기자] "아니 이 돌비석에 고구려 혜관스님의 이야기가 써있단 말입니까?" 어렵사리 찾은 이바라키현 근본사의 가미하라(上原) 주지스님 (일본에서는 주직(住職, 쥬쇼쿠))은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되레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또 한다는 말이, "본당(대웅전)이 원래 이 자리가 아니었는데 본당을 세우면서 이리로 옮긴 것입니다. 그때 이 돌비석의 유래를 몰라 그냥 버리려다 이곳에 옮겨 온 것이지요." 아뿔사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던가! 주지스님한테 절의 유래를 들으러 갔다가 되레 기자가 주지스님에게 절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럴려고 멀고먼 한국에서 이바라키현 가시마시(茨城県 鹿嶋市)까지 낯선 길을 물어물어 찾아왔나 싶어 다소 실망감이 느껴졌다. 어제 10일(화), 기자는 근본사(根本寺, 곤뽄지) 를 찾아가기 위해 이른 아침 도쿄역에서 고속버스를 탔다. 근본사가 자리한 가시마(鹿嶋 또는 鹿島)까지는 고속버스로 두어 시간 걸렸다. 가시마진궁역이 종점인 곳에 내려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시골길을 걸어 간신히 근본사에 도착한 기자는 인기척 없는 경내를 살피다가 본당 앞에 이끼 낀 돌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문화신문=일본 도쿄이윤옥 기자]고려박물관으로 향하는 신오쿠보 거리에 겨울비가 추적거리고 내리고 있었다. 한글 간판이 즐비하게 나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며 기자는 하라다 이사장을 떠 올렸다. "벌써 10여 년 전일이지만 정년을 하고 무작정 한국으로 달려갔지요. 음성 꽃동네서 2년간 선조들이 저지른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는 뜻에서 봉사를 자청했습니다." 고려박물관의 하라다 쿄코(原田京子) 이사장은 오로지 '조선 침략을 반성' 하는 뜻에서 한국말을 배웠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생의 후반부를 일제국주의가 빚은 '침략역사를 알리는 고려박물관'에서 봉사의 길을 걷고 있다. 떡볶이집과 김밥집을 지나 7층 고려박물관에 들어서자 반가운 얼굴들이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에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100% 자원봉사로 꾸려가고 있는 고려박물관 전시실에는 지난해 11월 2일부터 올해 1월 29일까지 좀 색다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침략에 저항한 불굴의 조선여성들(侵略に抗う不屈の朝鮮女性たち) -시와 그림으로 엮는 독립운동의 여성들(2)(詩と畵でづづる獨立運動の女性たち(2)" 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전시회가 그것이다. 기자가 쓴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우리문화신문=도쿄 이윤옥 기자] "안쪽으로 들어가시죠. 원래 사진 촬영은 금지입니다만 한국에서 오신 기자를 위해 특별히 허용합니다. 하지만 유리문 밖에서 보셔야합니다." 어제 5일(목) 찾은 관세음신앙의 명소인 연화원 홍명사 (蓮華院弘明寺, 렌게인구묘지)의 미마츠간다이(美宋寬大) 부주지 스님은 기자를 본당(대웅전) 안쪽 깊숙이에 모셔져 있는 11면관세음보살상(줄여서 관세음상) 앞으로 안내했다. 높은 천정의 조명은 흐리지만 관세음상 앞에 켜둔 여러 개의 촛불이 서로 관세음상을 비추려는 듯 흔들거리며 밝기를 조절해주는 듯했다. 아! 이 불상이 1,300여 년 전 백제계 행기스님이 직접 만든 불상이라니 기자는 합장하여 예배했다. "행기스님이 만든 이 불상은 1도삼례(一刀三禮)로 만든 것입니다. 곧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고, 칼집 한 번 내고 세 번 절하는 방식이지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 간 것으로 보시면 됩니다. 홍명사의 관음상은 관동지역에서도 그 형식이 아름답기로 으뜸입니다." 부주지 스님은 관음상을 우러러 보고 있는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역시 한국 최초 공개 불상이다.(기자는 군마현의 미즈사와절에 있는 고구려 혜관스님 상을 최초로 공개한바
[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성곡사(星谷寺, 쇼코쿠지)로 가기 위해 도쿄에서 특급으로 한 시간여 달려가 내린 자마역(座間驛)은 한적한 소도시 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길을 묻고자해도 지나는 행인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곳에 성곡사는 자리했다. 판동33소관음순례 제8번(坂東33所觀音巡禮第八番) 도량인 성곡사는 일본 최초로 대승정의 칭호를 받은 백제계 출신 행기(行基, 668~742)스님이 개산(開山)한 절이다. 행기스님은 백제왕의 후손으로 《겐코샤쿠쇼(元亨釋書)》에는 행기스님을 백제국왕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釋行基世姓高志氏。泉大鳥郡人。百濟國王之胤也。) 행기스님은 열다섯 살에 출가하여 나라 야쿠시지(奈良 藥師寺)에서 신라승 혜기(慧基)와 백제계 의연(義淵)스님에게서 불도를 닦았으며 스물네 살에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구족계를 받고 덴표 17년(745)에 대승정 자리에 오른 일본의 고승이다. (초대승정은 고구려 혜관스님이고 행기스님은 이후 대승정으로 활약). 이후 민중 속에서 불교의 보살행을 실천하다 81살의 나이로 스가와라지(菅原寺)에서 입적한다. 나라시대 뛰어난 고승들이 많았지만 행기스님만큼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승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은 2017년 1월 3일부터 서울역사 누리집 서비스 시작한다고 밝혔다. 서울역사편찬원은 그간 서울시 문화포털을 통해 서울에 대한 역사 정보와 강좌정보를 제공해왔지만, 단순하게 몇 개의 게시판을 통해 시민들이 서울역사를 누리고 서울역사편찬원의 강좌와 답사 등을 참여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늘 있어 왔다. 또한 기존에 서울육백년사를 쉽게 보기 위해 1999년에 개설된 서울육백년사 누리집은 그동안 새로운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서울역사편찬원은 2015년 하반기 예산타당성 심사를 거쳐, 2016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업체 선정을 하였다. 이후 누리집 콘텐츠를 개발한 뒤에 서울시 서버에 이관하였고, 시작심의과정을 거쳐 드디어 2017년 1월에 대시민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었다. 먼저 서울역사돌아보기 메뉴를 통해 서울 역사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을 알아 볼 수 있다. 한 번의 키워드 검색과 서울2천년 연표 검색을 통하여 2천 년 전 서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사 깊이읽기 차림은 말 그대로 서울 역사를 깊게 이해하는 차림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의 발간물들을 전자책 형태로 쉽게 열람할 수
[우리문화신문=도쿄이윤옥 기자] 새해 이틀째 도쿄 코리아타운 신오쿠보 거리는 활기찼다. 오후 5시 기자가 찾은 신오쿠보 거리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꽤나 붐볐다. JR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에서 내려 걷다보면 한국 간판들이 즐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속에 낯익은 한국어도 꽤 들려온다. "헤이트스피치(혐한시위자)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이곳 코리아타운의 명성도 점차 사그러든 느낌입니다. 하지만 어떻게해서든지 이곳의 경기를 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한국인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 지난해 여름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을 찾았을 때 이사장 하라다쿄코 씨는 기자에게 이곳 상권이 살아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실제 고려박물관이 세들어 사는 건물 1층의 한국인 가게도 문을 닫았다는 이야길 듣고 내심 마음이 아팠다. 한류 붐이 일고 경기가 좋을 때는 이곳 신오쿠보 거리를 지나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데 어제 둘러본 신오쿠보 거리는 뭔가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환하게 불을 밝힌 가게마다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어딘지 모를 생기가 돌았다. 올 한해는 더욱 활기찬 코리아타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