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기자] 해마다 8월이면 일본이 한국을 유독 분노케하는 일이 있다. 어디 그게 8월 뿐의 일이겠느냐 싶지만 특히 8월을 꼬집어 말하는 것은 이때가 바로 일본의 패전일이 들어 있는 달로 전쟁범죄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노골화하고 있는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모습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도쿄 한복판 치요다쿠(千代田区)에 있는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는 일본인들의 주장대로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호국 영령을 모신 신사(神社)’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메이지유신 이래 근대 이후 일본이 관여한 전쟁에서 활약한 전쟁범죄자들을 미화하고 숭상하는 시설이다. 일본군이 한국인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면 모를까, 한국을 침략하고 그것도 모자라 침략국의 선량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 죽게한 일본을, 그 책임을 묻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지금 야스쿠니에 강제 합사(合祀) 되어 있는 니이야마만수(新山滿秀, 한국이름 박만수)도 그런 젊은이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곳에 합사된 박만수 씨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일본 구(舊) 해군 군속신상조사표에 따르면 남양군도에 강제 징용되어 1945년 4월 11일 ‘전사처리’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백두산하 삼천단부 한데 모여 한배님이 건국하신 우리나라 만세 높고 둥근 백두산은 우리 민족 기상이며 맑고 깊은 천지물은 우리겨레 정신일세 우랄산부터 대마도까지 수륙 수만리 우리 선조 즐기시던 보금자리 이 기상과 이 정신을 모두 합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화려한 금수강산 배달민족 배달나라 길이 보전하세“ 이 노래는 독립운동가인 희산(希山) 김승학(1881∼1964) 선생이 소장했던 새로운 애국가 전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14일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이 부른 것으로 추정되는 ‘애국가(愛國歌)’를 발굴했다며 선생이 소장했던 가사 기록지를 공개했다. A4용지 절반 크기의 갱지에 적힌 이 애국가는 지금의 애국가처럼 4절에 후렴구로 돼있는데 “삼천단부(단군 자손의 무리)”, “한배(단군을 높여 부르는 말)” 같은 대종교에서 쓰던 낱말과 희산의 독립운동 경력으로 미뤄 대종교 계열 독립군들이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또 가사 3절이 “우랄산부터 대마도까지 수륙 수만리 우리 선조 즐기시던 보금자리”라고 된 것을 보면 고조선의 넓은 강역에 대한 인식이 뚜렷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기록지는 희산의 후손인 김병기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광복 71돌이 되었다. 근세 개화기에 정신차리지 못하고 지도자들이 국가와 민족보다는 자신들의 사리 사욕에 혈안이 되어 결국 일본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긴 후 35년을 살아오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올해로 그 71년째에 이른다. 그런데, 한민족의 나라가 없어질 뻔한 것은 최근세 100년 뿐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424년 전 일본은 일본 열도 내에서 패권을 잡기 위해 수백년 내전상태를 정리한 후,통일에 앞장섰던 장군들에 대한 보상으로 주기 위한 각종 잇권의 대상으로 조선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늘 글과 말로 싸우면서 논쟁만을 일삼는 조선 정부야 말로 너무 쉬운 싸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일으킨 임진왜란은 이곳 부산 동래에서 처음 교전이 이루어 졌다. 동래성 전투에서 동래부사 송상현과 정발장군은 훈련도 되지 못한 관군들과 동래 주민들을 모아 이곳 동래성에서 싸우다 무참히 전사하였다. 그 때 왜장은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비키라고 말하자 송상현은 싸워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비켜주기는 어렵다고 답하고 중과부적인 상황에서도 싸우다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무너진 동래성은 임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오는 8월 14일은 4차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이다.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공개 증언을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를 고발한 날을 기억하고 그 용기와 투쟁을 기리기 위한 날로, 2012년 제11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각국이 함께 결의하여 매년 세계연대행동의 날로 진행해 왔다. 광복 70돌이었던 지난해 막바지, 2015년 12월 28일 합의 이후 8개월이 지나는 동안 이 합의가 실패한 것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민 여론은 물론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도 이 합의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재고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기어코 이 합의를 밀어붙이고 있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 번 상처만 줄 뿐인 화해치유재단 설립을 강행하였다. “진정한 사죄와 그에 따른 배상이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한낱 정부 간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킨 졸속적 12.28 합의는 무효화되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합의 무효와 공식 사죄, 법적 배상을 외치며 함께 행동하고 있다.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인천개항박물관 광복 71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만주 아리랑-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삶과 기억]은 그동안 사진작가 류은규가 모은 중국 조선족의 역사와 생활사 자료 중, 만주 지역의 민족해방운동과 함께 그 기반이 되어준 우리 이주민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기획되었다. 1층은 이주와 항일운동에 관한 사진 자료를 정리하고, 조선족의 생활유물도 선보인다. 그간의 사진수집에 관해 류은규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념사진은 그 한 장으로는 별로 큰 의미를 가지지 않지만, 모아놓고 보면 시대를 비추는 역사자료가 된다. 지금 남은 사진도 언제 어떻게 소멸할지 모른다. 나는 사진가로서 본능으로 사진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모은 사진이 5만 여장이 되었다.” 고 말한다. 2층은 류은규 작가가 중국 동북 일대를 돌면서 항일지사 후손들을 찍은 인물사진전이다. 이에 대해 작가 류은규는 “역사의 증언자를 촬영하는 포트레이트 작업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작업이다. 특히 만주 지역의 항일운동가 유가족의 촬영은 90년대에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더는 찾지 못할 뻔 했다.”고 했다. 인천관동갤러리와 인천개항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어머니 품이여 드리워 베푼 사랑의 손길에 내 어엿이 자라 멍멍개 마루에서 낑낑 꿈꾸는 자정까지 일해도 고된줄 모르는 힘 그 따사로움 가슴에서 흘러나오다 - 조선족 시인 설인의 고향사람들 가운데 ‘나를 낳은 산천이여’ 일부- 그렇다. 조선족 시인은 입을 열면 고향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붓을 들면 그 고향산천이 먼저 종이에 내려앉는 정서를 태생적으로 지녔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조선족은 중국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자 좀 특별한 존재이다. 대부분의 소수민족은 그 지역의 토착민인데 견주어 조선족은 주로 19세기 말부터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어 정착한 사람들로 광복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인정을 받은 신참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이주가 주로 일제강점기에 이뤄졌고, 조국의 분단으로 인해 돌아갈 곳을 잃었다는 점에서 볼 때 조선족의 이주와 정착의 과정엔 수많은 고통과 비애, 눈물과 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인천관동갤러리(관장 도다 이쿠코)에서 열리는 조선족을 주제로 하는 사진전은 사진가 류은규가 한중수교 후 얼마 되지 않은 1993년부터 중국에 머물면서 중국 조선족을 촬영하고, 그들의 역사를 증명
[우리문화신문= 경북 상주 이윤옥 기자]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어리는 겨레라. 그러하므로 말은 겨레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겨레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겨레도 내리 나니라. 이러하므로 겨레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닦아지나니라” 이 말은 힌힌샘 주시경 선생의 보중 친목회보 창간호 1910년 6월호 ‘한겨레 말 ’가운데 일부이다. 오늘은 평생 겨레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신 주시경 선생의 102주기 날이다. 이 날을 맞아 경북 상주의 마음닦기 수련원인 푸른누리(대표 최한실)에서는 아침 8시 조촐한 추도식이 있었다. 오늘 모임은 겨레말 살리는 이들의 ‘배달 겨레말 여름 모임’을 위한 전국 모임이다. *주시경 (1876.12.22~1914.7.27) 선생은? 국어학자로서 우리말의 정리와 보급에 크게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조선왕조가 문을 닫고, 조선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어 중국에 대한주종관계를 청산하였다. 이는 다분히 일제가 중국의 간섭에서 벋어난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한 충동질도 있었지만, 어떻든 대한제국은 청나라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국으로 그것도 황제국으로 일신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라의 이름만 바꾼다고 기울어 노쇠하고 엄격한 신분제사회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마음껏 누리던 지배층이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면서 나라를 살리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나라를 팔아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고,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한제국의 많은 대신들은 백성도 속이고 황제도 속이면서 나라를 팔아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챙기는데 앞장섰다. 그렇게 하여 이들은 일본정부로부터 후작 백작 등의 작위를 받고, 또 나라를 팔아먹은 공로로 전국 곳곳에 토지를 할양받았다. 이들이 다름 아닌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장관 대신등 친일인사들이었다. 이들은 그렇게 받은 각종 작위와 관직 그리고 할양받은 토지들에서 나오는 재물로 자식들은 해외로 유학을 보내서 대를 이어 부와 명예와 권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항일독립 전쟁사(抗日獨立戰爭史)에 불멸의 공적을 남긴 오동진 장군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어찌 몇 줄의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오동진 장군님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혈맥으로 흐르던 서간도 일대, 무명 독립군들의 피와 땀이 서린 항일유적지에서 몇 마디 흠모의 외침만으로 선열들의 이름을 어찌 가벼이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굴종의 침묵 보다 더 부끄러운 망각으로 항일독립전쟁의 역사와 유적, 애국선열의 업적을 올바로 기리지 못한 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고, 아직도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오늘에 백절불굴의 항일명장(抗日名將) 오동진 장군님을 우러러 백년편지를 올립니다. “나는 조국의 독립과 세계평화(世界平和)를 완성하기 위하여 조선독립군(朝鮮獨立軍) 사령(司令)이 되었다.”1932년 3월 5일이었지요. 조선총독부 경찰에 의해 강제로 재판정에 서게 된 장군님이 왜놈 검사와 판사, 법정을 가득 메운 왜인 방청객들, 친일파들을 향해 일갈하신 말씀입니다. 교만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일제의 재판장을 압도한 장군님의 기개는 왜놈들의 간담을 송두리째 뭉개버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일제의 간계와 교활함으로 재판정에 서게 되신 장군님께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일본군위안부 기억의터 조성추진위원회(대표 최영희)는 6월 29일 오전 10시30분, 남산 통감관저터에서 일본군위안부 기억의 터 기공식을 할 예정이다. 기공식은 일본군위안부 기억의터 조성추진위원회 최영희 대표의 여는 인사와 김복동 할머니 인사말씀, 임옥상 화백의 기억의 터 조감도 발표와 작품해설, 강병인캘리그라피 작가 겸 서예가의 붓글씨 퍼포먼스와 함께 시삽식 그리고 공동 상징의식을 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보수진보를 떠나 여성계, 학계, 문화계, 정계, 독립운동가유족회 등이 함께 모여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추진위원회’(이하 ‘기억의 터 조성추진위’)를 결성하고 범국민 모금운동인 [디딤돌 쌓기]를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개인, 단체 등 19,500여명이 디딤돌 쌓기에 동참했다. (6월 24일 기준) 기억의 터는 세계적 인권이슈로 부각되었음에도 기념공원(메모리얼 파크) 하나 없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외치신 할머니들께 기억하겠다는 약속으로 시작한 일이다. 한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완성하고자 매진하고 있는 와중에 피해자 할머니 한분이 또 세상을 떠나셔서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