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봉황정에 앉아 고구마를 먹으면서 시인마뇽이 한마디 했다. “어떤 신부님이 말하기를,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맞는 말이다. 멀리서 가는 길을 혼자 간다는 것은 매우 외롭고 지루할 것이다. 멀리 가려면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인원이 많을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둘이나 넷보다는 세 명이 가장 적당한 인원수다. 산행도 마찬가지이지만 단체로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여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택해야 하는데, 다수결로 결정해야 할 때가 생긴다. 이때 짝수로 의견이 갈리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홀수이면 간단히 해결된다. 오늘은 4명이 걷지만, 다행하게도 다수결이 필요한 갈등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간식을 먹고서 봉황교를 건너 지방도로로 다시 돌아오자 봉화마을을 가리키는 커다란 봉황새 모양의 간판이 눈에 띈다. 봉황새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길 동쪽에는 잘 지은 2층 건물인 ‘개수2리 다목적체험관’이 자리 잡고 있다. 체험관 뒤쪽으로 ‘개수리 보건소’가 보인다. 돌로 만든 봉황대 표시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평창강은 삼거리에 있는 유포교 아래로 흘러 도로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유포교 중간 지점이 봉평면과 대화면의 경계가 된다. 유포교를 지나면 대화면 개수리다. 나중에 개수리의 어원을 《평창군 지명지》에서 찾아보았다. 마을에 둘레 약 2.6m의 큰 소나무가 외따로 떨어져 서 있는데, 이 소나무를 외솔배기 또는 독송정이라고도 부른다. 그 옆을 흐르는 큰 갯가에 소(沼)가 있어 개소라고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개수리(介水里)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물 사이에 끼어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끼일 개(介)자를 써서 개수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유포교를 지나 오른쪽을 바라보니 강가에 무리 지어 서 있는 갯버들에 물이 오른 모양이다. 버들강아지를 피우려고 준비하는지 가지 끝부분에서 옅은 초록색이 뚜렷하게 보인다. 개울가에서 잘 자라는 갯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는데, 키가 2~3m 정도로서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다.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데, 기다란 꽃이삭을 흔히 버들강아지라고 부른다. 조금 지나면 이곳 평창강가에도 사방에서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화려한 봄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3월 11일 (목) 오후 1:45~5:45 <참가자> 이상훈, 이규석, 우명길, 원영환 <답사기 작성 날자> 2021년 3월 21일 평창강 제1구간을 걸은 것이 작년 11월이었는데, 해가 바뀌어 2021년 3월 11일에 제2구간을 걷게 되었다. 무려 4달이나 답사를 중단한 것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모임을 자제하라는 방역당국의 당부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창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아무래도 걷기가 꺼려졌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였다. 4달의 동면을 끝내고 평창강 따라 걷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 해가 가기 전에 평창강 답사를 끝내려면 이제부터는 한 달에 두 번은 걸어야 한다. 석주(원영환)는 전날 봉평 우리집에 와서 잤고, 시인마뇽(우명길)은 당일에 군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장평터미날에 12시 10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답사 전날 나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평창군 방림면에 사는 이규석(호가 ‘은곡-隱谷’이므로 이하 그렇게 호칭함)이라는 분이 제2구간을 함께 걷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그분은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나 점심을 같이 먹은 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금당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면서 흙길이 나타난다.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의 왼쪽에는 조림한 것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숲이 보인다.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얗고 갈라져서 종이처럼 벗겨지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흙길은 포장된 도로에 견주어 딱딱하지 않고 탄력이 있어서 걷기에 편하다. 길 양쪽으로는 이미 추수가 끝난 밭이 텅 비어있어 허허롭기만 하다. 흙길은 곧게 1km쯤 계속되었다. 흙길이 끝나자 오른쪽에 금당교 다리가 나타난다. 금당교 건너편에는 등매초교 폐교가 있다. 금당교 건너편 왼쪽에 보이는 다리는 등매교인데 그 아래로 면온천이 흘러 평창강에 합류한다. 그러니까 면온천은 평창강의 제1 지류가 된다. 금당계곡에서는 여름에 급류타기(래프팅)를 하는데, 나는 4~5년 전에 면온천 합류 지점에서 출발하는 급류타기를 난생처음으로 해본 경험이 있다. 약간 오르막인 금당길을 계속 걸어가니 거문ㆍ금당산 등산안내도가 나온다. 금당산 등산로는 모두 3개가 그려져 있는데, 2개는 금당산 서쪽에 있는 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는 그동안 삼형제라는 이름이 세 사람의 형제를 나타내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2020년 5월 16일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양승국 변호사님 일행을 안내하여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나중에 양변호사님이 쓴 답사기를 읽어보니 장군 이름이 ‘삼형제(森炯濟)’이었다. 아이고,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당연하다고 믿던 지식이 잘못될 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매우 적절한 예라고 생각된다. 비석이 서 있는 시점에서 속사천 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기와지붕을 한 단정한 성황당이 보인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 성황당의 지나온 유래는 약 백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마을에 수호신으로 성황제는 정월과 칠월로 일년에 두 번씩 부락 주민들의 생기(生氣)에 맞추어 유사를 정하여 성황제를 올리며 마을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사람들의 상호간의 화합을 다졌고 그동안 풍수해로 수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여의치 않이하여 새마을사업 당시 함석지붕으로 개량하였고 2002년 마을동회에서 성황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평창강 따라 걷기 – 제1구간] <답사 날자> 2020년 11월 11일 (수), 오전 10:10~ 오후 4:00 <참가자> 이상훈, 우명길, 원영환 <답사기 작성 날자> 2020년 12월 5일 2015년 8월에 25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에 작은 집을 짓고 귀촌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꿈도 많고 가슴이 뜨거웠던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대머리 양쪽에 하얀 서리가 내린 칠십 노인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에 견줘 힘든 일을 안 하고 잘 먹고, 또 건강 관리도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주민증 나이로는 70이라고 해도 남이 나더러 노인이라고 부르면 때때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나 착각하기도 한다. 내 나이를 말하면서 고희(古稀: 人生七十古來稀를 줄인 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인구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2018년 기준으로 80세라고 하니, 남만큼만 산다고 해도 아직은 10년이라는 세월이 남았다. 내가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내 벗 가운데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