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6월 어느날 궁녀들이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살금살금 깨금발을 한 채 복도를 걷고 있다. 장지문 앞에서 발을 멈춘다. 숨을 죽인 채 창호문에 구멍을 뜷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 안에서는 고종 임금이 미군함 트렌턴호Trenton의 함장을 비롯한 사관생들을 접견하고 있다. 트렌턴호가 최초의 방미 사절인 민영익, 서광범, 변수를 뉴욕항에서 태운 후 6개월 동안의 항행 끝에 제물포항에 들어온 것은 1884년 5월 31일이었다. 그 배에는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라는 이름의 해군 소위가 동승했다. 당시 한국말을 구사하는 미국인이 천지에 오직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조지 포크였다. 그도 그날 트렌호의 사관들과 함께 조선의 임금을 알현하고 있다. 그날의 일을 그는 7월 22일자 부모님전 상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저희가 임금을 알현할 때 궁녀들이 창호문 뒤에서 우리를 엿보려고 안달하던 광경이 재미있었답니다. 알현했던 방은 사방이 창호 문이었답니다. 일분 정도마다 '푹!' 하고 창호지가 뚫리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구멍을 내어 엿보려는 것이지요. 머리가 영리한 여자들은 손에 침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금부터 꼭 30년 전인 1994년 11월 29일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경내의 한 광장에서는 정도(定都) 600돌을 맞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일상을 길이 후손에 전해주자는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가 열렸다. 앞으로 400년 뒤 서울을 수도로 정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에 공개하자며 1994년 당시 서울의 삶을 전해줄 수 있는 기념품과 기념물 등을 축소하거나 실물 그대로 높이 2미터, 지름 1,4미터 크기의 보신각종 모양의 캡슐에 밀봉해 공원 한가운데에 묻은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은 서울 천년타임캡슐광장이 되었다. 서울시 주도로 묻은 이 타임캡슐에는 벼ㆍ보리 등의 씨앗을 비롯해, 서울시 항공사진필름 2천 장, 우황청심환, 초중고 교과서, 숟가락, 버스 토큰, 1회용 라이터 등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1면으로 장식된 신문의 마이크로필름 등 30년 전 당시의 우리 생활상을 나타냈던 문물들이 실물, 영상기록, 마이크로필름, 축소모형의 형태로 타임캡슐 안을 장식하고 있다. 실물로는 기저귀, 담배, 팬티스타킹, 남녀 수영복, 현미효소 등 건강식품, 신용카드, 부동산 매매 계약서, 주요 작물 씨앗, 피임기구, 인공심장, 상품권, 공무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류(韓流). 우리 문화가 파도처럼 흘러가 세계를 매료시키는 현상이다. 드라마에서 음악, 그리고 이제는 소설까지, 전 세계로 퍼져나간 우리 문화는 현지에서 변주를 거듭하며 문화 다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이 옛날에도 있었을까? 물론이다. 그것도 상당히 먼 옛날에 말이다. 바로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파한 아직기와 왕인이 그 처음이다. 이들 덕분에 아직도 일본에는 백제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일찍이 왜는 백제와 가까이 지내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백제 근초고왕은 왜왕에게 ‘칠지도’라는 칼을 내려주기도 했다. 이런 교류의 연장선에서 백제에서 학문으로 이름 높던 박사였던 아직기는 임금의 명으로 왜로 파견되었다. 아직기를 왜로 보낸 임금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근초고왕이나 근수구왕, 아신왕 가운데 아신왕이 가장 유력한 설로 인정받고 있다. 아신왕 때 왜와 교류가 무척 활발했기 때문이다. 아직기는 말 두 필과 칼, 거울을 가지고 왜로 건너갔다. 왜왕에게 말 타는 법과 기르는 법을, 토도치랑자 왕자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왕인은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건너가 토도치랑자 왕자와 왜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장수왕 피라미드 상큼한 옛 숨결 고운 옛 살결(빛) 석양에 붉게 물든 저 금자탑(돌) 돌도 삭아서 무너지는 세월(달) 오늘도 우뚝 선 강건함이여!(심) ... 24.11.10. 불한시사합작시 • 불한시사(弗寒詩社) 손말틀 합작시(合作詩) `불한시사(弗寒詩社)'는 문경 ‘불한티산방’에 모이는 벗들 가운데서 시를 쓰는 벗으로 함께 한 시모임이다. 이들은 여러 해 전부터 손말틀(휴대폰)로 서로 합작시(合作詩)를 써 왔다. 시형식은 손말틀 화면에 맞게 1행 10~11자씩 4행시로 쓰고 있다. 일종의 새로운 정형시운동이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왔습니다. 숲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농지로 만들기 위한 개간을 진행하며 강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산을 뚫어 길을 내고, 땅을 파서 광물을 채굴하고 동식물을 사냥합니다. 최근 들어 자연은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행동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자연재해,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연은 협상하지 않는다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기후 변화, 자연재해,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자연의 분노는 인간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고,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은 놀라운 기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는 여전히 무기력합니다. 강력한 태풍, 불볕더위, 큰물(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는 인간의 삶과 재산에 막대한 손해를 입힙니다. 또한, 인간 활동으로 인한 환경 파괴는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고,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킵니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우리는 지난번에 ‘이유인의 말로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한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제 오로지 한가한 사람을 위하여 한가한 이야기로 한가한 의문을 풀어보고자 한다. 일제 앞잡이 일진회(一進會)가 창립될 즈음 그에 대립하는 단체가 1904년 창립되었으니 이름하여 ‘공진회(共進會)’. 나중에 ‘열사’라고 불리게 될 이준이 회장이었고 총무는 윤효정이었다. 윤효정은 1898년 일본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 관련자 우범선을 처단하고 귀국했다. 그는 1906년 이준이 세운 헌정연구회를 기반으로 대한자강회를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힘썼다.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라는 재미있는 책을 지었는데 여기 이야기는 그 속에 들어 있다. 잡배들의 국정 농단이 갈수록 심해지자, 공진회는 비분강개했다. 공진회는 정부에 60명의 잡배 명단을 보내면서 처벌을 요구했다. 일주일 뒤에 답장이 왔다. “60명의 명단 가운데 잡배는 하나도 없으니 그리 헤아려주기 바라노라.” 공진회 회원들이 격분했다. 깊은 밤 비밀리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죄가 가장 무거운 이유인 전 법무대신을 우선 잡아들이기로 했다. 이유인을 찾아가 “공진회에서 각하에게 상의드릴 일이 있으니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동안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의 글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배연국 소확행 아카데미 원장이 이번에 《내 삶이 보물이 되는 순간》이란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배원장이 지난 10년 동안 날마다 아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배달한 행복 편지들 가운데서 고른 글을 모은 것입니다. 저도 배 원장님의 행복 편지를 받는 애독자이지만, 배 원장님은 이렇게 매일 아침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배달해 줍니다. 배 원장님의 행복편지는 그동안 구독자들의 넘치는 사랑으로 천만 뷰를 넘어섰다네요. 축하드립니다. 배 원장님! 그래서 배 원장님은 그 사랑에 응답하기 위해 그 가운데서 99개 행복편지를 골라 이번에 인디언 달력에 실어 우리에게 보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99가지 이야기를 1월부터 12월에 나누어 배치하고, 각 달마다 그 달을 특징짓는 열쇠말과 인디언의 경구를 싣습니다. 이를테면, 1월은 ‘꿈’의 달이고, 여기에는 인디언 테와 푸에블로족의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이라는 표제를 붙입니다. 왜 인디언의 경구로 매 달을 열었을까요? 배 원장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디언들은 원래 영혼이 넉넉한 삶을 살았다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그의 삶에는 유난히 숫자 4가 많이 등장한다. 1904년 4월 4일생이고 세상을 떠난 해는 1944년이다.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그가 젊을 때 갇힌 감옥의 죄수 번호도 264번이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의 본명이 이원록이지만 이육사가 그를 대신하는 필명(筆名)이 되었다. 25살 때인 1929년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한 뒤 요양을 위해 집안 어른인 이영우의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머물면서 이영우에게 죽인다는 뜻의 육(戮)자를 골라서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곧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라는 의미였다. 이에 이영우는 "혁명적인 의미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니, '戮'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陸'을 권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육사(陸史)'로 바꿔 썼다고 전해진다. 육(陸)이란 글자는 땅이란 뜻의 명사이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사람이나 재물을 강제로 빼앗고 죽인다(戮)는 뜻을 가지고 있기에 기왕이면 온건한 표현을 선택한 것이다. 육사는 1927년 가을 대구에서 일어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의 피의자로 몰렸다가 2년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관계란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라는 뜻을 가진다. 혹은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다.’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도 한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부터 관계를 맺는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들리는 세상의 소리를 들으며 태아는 세상에 반응하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태아는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며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인간은 사회 안에서 자아의 정체성을 이루어가며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답게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한 범죄자들에게 자유롭게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장소로 사회와 단절시키는 듯하다. 정이와 댄스프로젝트의 대표이자 안무가인 정이와 교수는 지난 11월 1일~2일 포스트극장에서 발표한 ‘관계성(Relationscapes)’은 ‘관계(relation)’와 ‘풍경(scapes)’을 붙인 단어로 사용한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고 형성하는 방식을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관점에서 탐구한다는 의도로 사용했다. 그래서 ‘관계성’, ‘움직임’이라는 열쇠말을 가지고 몸, 사물, 자연, 시간과 공간 등이 상호 작용하고 공동 창조하는 모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곰은 쓸개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코끼리는 상아 때문에 밀렵이 됩니다. 사슴은 녹용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악어는 가죽 때문에 사냥을 당합니다. 상어는 지느러미 때문에, 새는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죽임을 당합니다. 대부분 아름다움을 뽐내거나 몸을 치장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들이 인간의 욕심 탓에 잔혹하게 사냥당합니다. 이득 앞에 돈을 아버지라 부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바늘을 꽃아 생 담즙을 채취하기도 하고 오리나 거위에게 강제로 먹이를 먹여 간을 비대하게 만들어 푸아그라라는 음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지느러미를 얻기 위해 상어를 포획하여 지느러미(샥스핀)만 잘라내고 버리는 '핀닝' 행위도 종종 일어나고 야생동물을 가두고 배설물로 곰팡이 농사를 지으며 동물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닭은 평균 25년을 사는데 육계로 기르는 것은 길어야 60일 정도 살다 도축되고 소는 30년 정도를 살 수 있지만 고기소(육우)는 3년 이상을 기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육질을 좋게 한다는 까닭으로 거세하고 좁은 축사에서 살만 찌웁니다. 알을 많이 낳게 만들기 위하여 인공조명으로 닭을 재우지도 않고 서로 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