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봄비가 추적거리고 내리는 어제 (14일, 토) 오후 2시, 기자는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인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이신 오희옥 애국지사(92살)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재활병동 3층에 입원 중인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은 기자의 방문에 맞춰 어머님(오희옥 지사)을 휠체어에 모시고 병실 옆 작은 휴게실에서 기다렸다. 지난달 3월 17일 갑작스럽게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여 병실로 옮기신지 2주째로 일반인의 면회를 받을 정도로 많이 회복되어 기자는 오희옥 지사님의 손을 꼭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코에 연결된 호스로 미음을 식사대신 들고 계셔서 영양 상태가 안좋아서인지전 보다 여의셨지만 의식만큼은 많이 회복되어 기뻤다. 그러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한 상태로 의료진들과 가족들의 정성스런 간호가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 치료비는 국가유공자이기에 100% 국가가 부담하고 있지만, 24시간 전문 간병인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간병비 자부담이 다소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음은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께서 기자에게 보내온 그간의 ‘병실일지’이다. 원문 그대로를 싣는다. "어머님(오희옥 지사)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9년 오늘(4월 11일)은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어난 날입니다. 1919년 3ㆍ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나라안팎 애국지사들 사이에선 독립운동을 확대하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임시정부(漢城臨時政府), 노령임시정부(露領臨時政府)는 수립 과정과 주체가 명확히 알려진 대표적인 임시정부들이었지요. 그 가운데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을 구성하고 각도 대의원 30명이 모여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하였으며, 이후 한성임시정부와 노령임시정부를 통합하여 명실상부하게 우리 겨레의 임시정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날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李東寧),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 내무총장 안창호(安昌浩), 외무총장 김규식(金奎植), 법무총장 이시영(李始榮),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 군무총장 이동휘(李東輝), 교통총장 문창범(文昌範) 등이 임명되었지요. 현재 한국 정부는 4월 13일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하고 있으나, 광복회에서는 4월 13일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을 알리는 공문을 뿌린 날이고, 실제 결성일은 4월 11일이라며 임정 수립일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윤현진(尹顯振, 1892. 9.16.~1921. 9.17.) 선생을 2018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1892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만성재(晩惺齋)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15세가 되던 1907년 구포의 구명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1909년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탐방한 뒤 깊이 있는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된다. 선생은 22세가 되던 1914년 메이지(明治)대학을 입학한 이후 조선유학생학우회와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목적으로 결성된 신아동맹당 당원으로서 반일운동에 앞장섰다. 1916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약 3년 동안 대동청년단, 백산무역주식회사, 의춘상행(宜春商行), 기미육영회 등과 관계를 맺고서 비밀결사운동, 경제적 자립운동, 교육운동을 주도하였다. 3ㆍ1독립운동 직후인 1919년 3월 21일 상하이로 망명한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위원과 경상도위원, 국내 항일세력과 연락을 위한 의용단 조직, 독립신문 발기인 등을 맡으면서 임시정부의 중심인물로 부상하였다. 1921년 2월 임시정부의 중책인 재무차장에 취임하
[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터졌구나 터졌구나 / 독립성이 터졌구나 15년을 참고참다 / 이제서야 터졌구나 피도 대한 뼈도 대한 / 살아 대한 죽어 대한 잊지마라 잊지마라 (2절 줄임) –탄운 이정근 의사 지음 ‘3.1독립가’ - 경기 화성 발안 3·1 독립만세 항쟁의 선구자인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 순국 99주기 추모제가 어제(31일) 낮 11시, 향남읍 소재 탄운 선생 창의탑 (향남읍 삼천병마로 283-6번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어제 추모제에는 광복회 경기도지회 안소헌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유지, 탄운장학금 수여자와 학부모 등 150여명이 모여 탄운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제는 탄운 선생에게 올리는 추모제례로 초헌례(유족대표 이호원), 아헌례(광복회지회장 안소헌), 종헌례(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회장 김겸)의 예를 갖춘 제례를 중심으로 이어졌으며 이어 헌화, 분향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날을 기해 1천여 명의 시위 군중을 이끌다 현장에서 일헌병에 총검에 의해 순국의 길을 걸은 탄운 이정근 의사의 거사는 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지난 3월 17일(토), 급성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92살)는 발병 후 곧바로 수원 성빈센트병원으로 모셨다가 지난 22일(금)부터 서울중앙보훈병원 (강동구 진황도로 61길 53) 외과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중이다 서울중앙보훈병원 외과 중환자실에서 8일째 입원 중인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께서조금씩 회복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아드님인 김흥태(55살) 씨가 기자에게 알려왔다. 어제(30일, 낮 2시) 현재 오희옥 지사의 상태를 김흥태 씨가 전해온 소식 그대로 싣는다. “어머님은 MRI촬영차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빨리 쾌차하시길 기원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드리니 고개를 끄덕 거리셨습니다. 식사를 환자식으로 하니 기력이 지속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지만 의식은 지속적으로 많이 돌아오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종이와 펜을 드리니 어머니 성함, 3월 30일, 이윤옥 교수님 등의 이름을 쓰셨고 힘이 부친 듯 금새 눈을 감으셨습니다. 의식은 있지만 몸은 많이 여의셨고, 가래로 약간 고생 중이시지만 전보다 좋아지신 것 같고, 목을살짝 움직이는 정도도 가능하십니다. 어머님은 많은 시간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백년편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글 형식의 글입니다.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 접수를 받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문의 : 02 -733-5027】 서랍을 엽니다. 침대 옆 작은 거울 장 첫 번째 서랍, 안쪽 왼편 구석에 놓인 아버지의 검은 가죽 손지갑. 작은 비닐봉지로 말린 목도장 하나, 2015년도 서울시가 발행한 독립유공자 진료카드, 독립유공자협회의 아버지 명함 한 장, 마켓의 포인트 카드 한 장과 천 원짜리 여섯 장. 아버지의 홀쭉한 지갑을 더듬는 제 손끝이 저려옵니다. 아직도 맞은편 아버지 침실 열려진 방문 사이로 "원표야!" 절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립니다. 잠이 들다가도 부르시는 소리에 소스라쳐 아버지 침실의 불을 켜면 누워계셨던 침대만 보입니다.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세월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밤, 부족했던 제가 용서되지 않습니다. 제 나이 만 예순일곱, 그 짧지 않은 오랜 시간을 저와 제 동생들을 기르시느라 염려하셨던 아버지, 어머니. 이 글을 올리는 이 시간에도 너무 그립습니다. 뵙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한국인인
[우리문화신문=김철관 기자] 지난 3ㆍ1절 99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해온 시인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소장이 여덟 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를 냈다. 그는 지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여성독립운동가의 처절한 삶을 시와 글로 조명해 왔다. 특히 시인이기도 한 이 소장은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한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 8>( 얼레빗, 2018년 2월 23일)를 펴내하자마자, 곧바로 나에게 우편으로 보내준 고마운 분이기도 하다. 받은 <서간도에 들꽃피다 8> 책 안에 메모가 한 장 있었다. “언제나 고마운 동지! 따끈따끈한 <8권>이 1시간 전에 나왔오. 가장 먼저 김 회장님에게 보내오, 명문장에, 마음까지 따스함 곁들인 ‘소개’에 깊이깊이 고개 수그리며. 2월 24일 이윤옥” 이윤옥 소장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를 8권 째 발행을 했다. 매권 20명씩 모두 160명의 여성독립열사들을 조명해 왔다. 그래서인지 8권은 3.1절 99주년을 맞춰 발행한 시집임을 단박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는 내년 3.1절 100주년을 맞아, 모두 20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시와 글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수원박물관은 23일 오후 3시 수원화성박물관 영상교육실에서 ‘경기도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 결과 보고회’를 연다. 수원박물관은 지난해 7월부터 경기도 지원사업으로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와 함께 수원시 독립운동가 인물을 발굴하고 관련 사적지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수원학연구센터 유현희 선임연구원, 성주현(청암대 교수) 연구원이 ‘경기도 독립운동 인물 발굴사업’ 결과를 발표한 뒤 박환 수원시 3.1운동ㆍ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조성운 동국대 강사,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이 참여하는 지정토론이 진행된다. 수원박물관과 수원학연구센터는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국가기록원 등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소장한 기관 자료와 증언 자료를 분석해 수원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활동한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밝혀냈다. 발굴한 독립유공자는 모두 113명이다. 이날 보고회에서는 미포상 독립운동가 중 새롭게 공적을 밝혀냈거나 추가 자료 발굴로 국가에 서훈 신청을 할 수 있는 ‘우선 대상자’ 32명의 자세한 공적을 발표한다. 대상 독립운동가는 의병으로 활동한 안춘경을 비롯해 3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고성군은 제99주년 3ㆍ1절을 맞아 19일 회화면 소재 3ㆍ1운동 창의탑 앞에서 '배둔 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를 열었다. 3ㆍ1운동 창의탑 보존위원회(위원장 최근호)에서 주최ㆍ주관한 이 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보훈ㆍ기관단체장, 학생, 군민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독립선언문 낭독, 살풀이 공연, 3ㆍ1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이날 기념식에서 지난 14일,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 백일장 장원에 선발된 조은경(고성중앙고1), 김슬지(회화중1), 이행복(구만초4), 박정후(고성초3) 학생에게 상장을 주었다. 최근호 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애국선열들의 희생으로 우리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았고 그 불굴의 용기는 늘 우리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며 "그 날의 값진 희생을 되새기면서 순국선열들의 영령 앞에 깊은 경의와 추모의 예를 올리자."고 했다. 이향래 고성군수권한대행은 축사를 통해 "배둔장터 독립만세운동은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우리 지역의 역사다."며 "앞으로도 자긍심을 가지고 이러한 역사를 보존 발굴해 군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경기도 화성시 발안 3.1독립만세 항쟁의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99주기 추모제’가 오는 3월 31일(토) 오전 11시, 화성시 향남읍 소재(삼천병마로 283-6) 탄운 이정근 의사 창의탑에서 열린다. 탄운 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주최, 광복회 화성시지회와, 향남읍사무소 후원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제에는 탄운 이정근 의사 추모제에 이어 향남고(3년) 양주은을 비롯한 제15기(2018년) 탄운 장학생 13명에게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할 예정이다. 탄운 이정근(李正根, 1863 ~ 1919) 의사는 1919년 3월 31일, 화성군 향남면 발안(華城郡鄕南面發安)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정근 의사는 이 날 오후 발안 장터에서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이 휘두른 칼에 찔려 순국하였다. 이정근 의사는 17세에 사서오경을 섭렵할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33세 때는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으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지켜보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팔탄, 우정, 장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