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모레 일요일은 중복(中伏)입니다. 다행히 요즘에는 장맛비가 자주와 뉴스에 불볕더위 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불볕더위가 오는 중복 때 우리 겨레는 ‘더위사냥’을 했는데 그 ‘더위사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이야 선풍기는 물론 에어컨까지 동원해서 비교적 시원한 환경 속에서 살지만, 예전 사람들은 더위가 심해지면 ‘이열치열’로 ‘더위사냥’을 했습니다. 이열치열에는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과 일을 함으로써 다스리는 이열치열이 있지요. 먼저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은 뜨거운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용봉탕(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쓰고 봉황 대신 묶은 닭을 써서 만든 탕) 따위로 몸을 데워주어 여름 타는 증세를 예방해 줍니다. 그리고 일로 하는 이열치열은 양반도 팔을 걷어붙이고 김매기를 도왔다고 하지요. 그 밖에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 없었던 선비들은 냇가에 앉아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을 위안으로 삼았고, 백사장에서 모래찜질도 했지요. 그러나 여기 철학적인 더위사냥도 있습니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는 제자가 더위를 피할 방법을 묻자 “너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어려움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대문형무소에 잡혀들어간 독립운동가들의 ‘수형자카드’를 작성했던 일본인 순사(경찰관)들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나는 서대문형무소 ‘수형자카드’를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이 점을 숙제처럼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순사들의 수준을 의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한 장의 수형자카드 때문이었다. 핼쑥한 모습의 ‘유고두’ 지사는 충남 공주군 정안면 운궁리 출신으로 1898년 9월 4일생이다. 기미년 3월 만세 운동 때 유고두 지사는 21살이었고 직업은 농사꾼이었다.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공주군에서도 4월 1일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때 유고두 지사는 공주 만세시위에 참여하다 일경에 잡혀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잡혀들어온 조선인은 누구나 예외 없이 수형자카드에 신상을 기록하게 되어있는데 카드 앞면은 사진과 함께 씨명(이름), 연령, 키, 특징을 적는 칸이 있고 뒷면에는 본적, 출생지, 주소, 신분, 직업, 죄명, 형기(刑期), 언도년월일, 언도재판소, 집행감옥, 출옥년월일 등을 적게 되어있다. 문제는 유고두 지사의 한자 이름이다. 순사들은 수감자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이름이며, 이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춤사위가 비교적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무용학원의 원장겸 사범으로 더욱 춤 공부에 매진한 최윤희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이어서 1985년도에는 진주 <개천예술제>의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한국무용제>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개천예술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통예술제로 알려진 축제다. 다양한 행사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무용제>는 대통령상이 걸려 있는 수준 높은 대회여서 누구누구,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전국의 유명 춤꾼들이 해마다 대거 진주로 몰려들었던 권위있는 대회였다. 여러 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연습해 온 최윤희도 여기에 <도살풀이춤>으로 도전장을 냈으나, 워낙 내로라하는 무용계 선, 후배들이 경쟁하는 무대여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온 지난 시간을 믿을 수밖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오늘은 복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입니다. 삼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데 하지 뒤 셋째 경일을 초복, 넷째 경일을 중복, 입추 뒤 첫 경일을 말복이라 하여, 이를 삼경일 또는 삼복이라 합니다. 우리 조상은 해(년), 달(월), 날(일)에 모두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을 조합하여 갑자ㆍ을축ㆍ병인 등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경일'이란 천간의 '경' 자가 들어간 날을 가리키지요.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오기 때문에 초복과 말복까지는 20일이 걸리는데 해에 따라서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하며, 이를 월복이라고 합니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이수광이 펴낸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에 보면 복날을 '양기에 눌려 음기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날'이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있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오행설'에 따르면 여름철은 '화'의 기운, 가을철은 '금'의 기운인데 가을의 '금' 기운이 땅으로 나오려다가 아직 '화'의 기운이 강렬하므로 일어서지 못하고, 엎드려 복종하는 때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엎드릴 '복(伏)'자를 써서 '초복, 중복, 말복'이라고 합니다. 또, 최남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강원도 홍천 수타사(壽陁寺)로 이르는 길목에는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나란히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으로 들어선 사람은 이내 몇 발자국 안 가서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자라는 소나무>라는 안내판과 마주친다. 홍천군에서 만든 안내판에는 “일제강점기 말 자원이 부족한 일본은 송탄유(松炭油)를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인을 강제 동원하여 송진을 채취하고 남은 모양이 V자로 깊게 파인 당시의 상처는 지금까지 아물지 않은 수탈의 흔적”이라고 쓰여 있다. 순간 움푹 팬 소나무 상흔이 가엾은 생각마저 든다. 여기서 말하는 송탄유(松炭油)란 송유(松油) 또는 송근유(松根油)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쇼콘유(松根油)라고 한다. 전쟁의 광풍 속에서 일제는 1940년대 말 극심한 석유 부족 사태를 만나게 되는데 이때 석유 대용품으로 쓰고자 고안한 것이 송진에서 추출한 송탄유다. 송탄유는 비누나 도료 등 생필품 원료는 물론, 군용기 기름으로도 유용한 전쟁 물자였다. 따라서 조선총독부는 지역별로 할당량을 정해주고 조선인들을 송진 채취에 동원했다. 홍천 수타사의 소나무도 이때 칼질을 당했다. 해인사, 안면도 등등에도 현재 홍천 수타사와 같은 ‘송진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2대에 걸친 안동권씨 집안의 삼년상 일지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박물관 소장유물 《신추록》 1‧2권을 국역한 ‘전통생활문화 자료집’ 6호를 펴냈다. 이번 자료집은 조선 후기 안동권씨 추밀공파 권일형(權一衡, 1700~1759) 일가의 상장례 과정을 기록한 책인 《신추록》 1‧2권을 번역한 결과물이다. 신추록은 부모의 제례를 뜻하는 ‘신종(愼終)’과 조상의 제사를 의미하는 ‘추원(追遠)’의 앞글자를 딴 신추, 곧 상장례를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이다. 《신추록》에는 권일형 손자 권복(權馥, 1769~1836)의 상장례와 부인 함양여씨의 합장, 그리고 권복의 아들인 권직(權溭, 1792~1859)과 부인 동래정씨의 상장례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권복의 장례 때는 먼저 작고한 부인 함양여씨와 합장하기 위해 여주에 있던 함양여씨의 묘소를 수로와 육로를 이용하여 양주로 옮기는 면례(緬禮, 이장)의 과정도 나타난다. 부조금뿐만 아니라 음식ㆍ땔감ㆍ인력까지 현물로 부조 《신추록》은 초상(初喪)부터 장례의 마지막인 길제(吉祭)까지의 절차를 비롯하여 제물 진설도와 축문, 각 절차에 필요한 도구와 비용, 조문객 명단과 부조(扶助) 내역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도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던 김숙자의 수제자, 최윤희(본명, 최영순)는 현재 대전시 무형문화재 ‘입춤’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춤을 좋아했고, 흥이 많았던 소녀로 유홍란을 통해 김숙자 문하에 들어가 선생 댁에 기거하면서 5년여 전통춤의 기본 동작과 춤사위, 발 디딤새, 호흡, 등을 착실하게 배웠다. 최윤희가 스승 밑에서 열심히 배운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말이다. 이 춤은 예인무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원래 흉살(凶殺)과 재난(災難)을 소멸시켜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기원과, 나아가 행복을 맞이한다는 종교적 소원에서 비롯된 춤이다. 이 춤은 춤사위가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삶의 깊은 뜻이 있는 춤이며, 특히 흰색의 긴 천을 들고 추는 것이 특징인데, 그 긴 천에 의한 공간상의 유선이 훨씬 다양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춤이다. 스승에게 배운 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날로 완전히 소화한 뒤, 일반 수강생들 앞에 조교의 역할을 다 하였다고 한다. 매매일을 춤 속에서 살았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열도에 집중호우가 내려 전국이 물난리로 야단이다. 큐슈 일대 일본 남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로 사망자는 ‘구마가와’마을(球磨村)의 노인요양원인 천수원(千寿園)에서 숨진 14명을 포함하여 ‘히도요시’시(人吉市) 17명 등 모두 49명이다. (7월 6일 밤 11시 현재) 이곳은 산사태 등으로 연락이 끊기거나 도로 등의 파손으로 피해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약 2,600세대 정도가 고립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로 122만 명이 시 당국으로부터 피난 지시를 받은 상태다. 아사히신문이 7일 아침, 헬기로 피해지역을 돌아본 영상에 따르면 후쿠오카 최남단 ‘오오무타’시(大牟田市)의 경우 도시 전체가 물바다로 지붕만 빼꼼히 드러나는 건물이 많았다. 물에 잠긴 주택은 물론이고 세워둔 자동차도 둥둥 떠다니는가 하면 사람들은 구명보트를 타고 안전지대로 피난하고 있는 모습 등으로 부산해 보였다. 그런가 하면 ‘구마모토’현(熊本県)은 구마가와강(球磨川)이 범람하여 큰 피해를 보았다. 구마가와강(球磨川)의 범람 문제로 구마모토일일신문(熊本日日新聞)에서는 가바시마이 이쿠오(蒲島 郁夫) 현지사(県知事)에게 댐건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제25회 한밭국악 전국대회>가 코로나 정국에서 <한밭국악회>와 <대전시>의 국악사랑으로 열렸으며 질서있게 진행되었다는 이야기, 시상식장에 대전지역의 시민과 유지들이 참여하여 대회를 빛내 주었다는 이야기, 젊은 노래 그룹을 초대하여 젊은이들에게 전통음악과 춤을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 특히 <한밭국악회>의 현 이사장과 함께 초대 최윤희 이사장의 노고가 밑받침되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최윤희 그는 누구인가? 이번 주에는 대전 <한밭국악회>의 초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처음 이 대회를 개최한 도살풀이의 춤꾼, 최윤희 명무(名舞)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전통무용인들은 ‘이매방의 살풀이’ 또는 ‘도살풀이의 김숙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매방이나 김숙자, 두 명인은 이미 타계하였지만, 생전의 두 명무는 각각 <살풀이춤>의 대가로 활동했다는 말이다. 특히 김숙자는 경기, 충청의 <도당살풀이굿>에서 유래한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였으며 최윤희는 이 춤으로 유명했던 김숙자 명인의 수제자이다. 우선 <살풀이춤>이란 어떤 춤인가? 그 이름에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집터 울밑 돌아가며 잡풀을 없게 하소 날 새면 호미 들고 긴긴 해 쉴 새 없이 땀 흘려 흙이 젖고 숨막혀 기진할 듯 때마침 점심밥이 반갑고 신기하다 정자나무 그늘 밑에 앉을 자리 정한 뒤에 점심 그릇 열어 놓고 보리단술(보리식혜) 먼저 먹세” 이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6월령 일부입니다. 오늘은 24절기의 열한째 “소서(小暑)”지요. 이 무렵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몰려오는데 이때는 장마철이라 습도가 높아지고, 비가 많이 옵니다. 하지 무렵에 모내기를 끝내고 모낸 20일 정도 지난 소서 무렵은 논매기, 피사리를 해주며,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장만해야 하는 일로 바쁠 때입니다. 조선시대 문신 신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만든 책인 《상촌집(象村集)》에 보면 소서 때 15일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초후에는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에는 귀뚜라미가 벽에서 울며, 말후에는 매가 먹이 잡는 연습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때는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보리와 밀도 먹게 됩니다. 특히 이때의 시절음식은 밀가루 음식인데 밀이 제맛이 나는 때라 국수나 수제비를 즐겨 해 먹었지요. 채소류로는 호박, 생선류로는 민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