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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의 후궁 숙용심씨 묘비석 고향으로 귀환

[맛있는 일본이야기 564]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숙용심씨(淑容沈氏)”, 우연한 기회에 숙용심씨를 알게 되었다. 여기서 숙용(淑容)은 조선시대 임금이 후궁에게 내린 작호(爵號)로 종2품이 숙의(淑儀)이고 종3품이 숙용(淑容)이다. 숙용심씨(1465 ~ 1515)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8번째 후궁이다. 여기서 후궁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숙용심씨가 죽고 그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던 묘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숙용심씨 묘비는 높이 150센티, 폭 43센티의 무거운 돌비석으로 이 비석이 일본땅에 있었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가마쿠라 뒷골목 작은 미술관이나 까페 앞에 서 있던 조선의 문인석과 망주석이 떠올랐다. 누군가 조선인 무덤 앞을 지키던 석물(石物)을 일본땅에 가지고 가서 함부로 장식품으로 쓰고 있는 것을 수없이 목격할 때마다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면 숙용심씨 묘비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 언제였을까? 왜 숙용심씨 묘비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조사해보는 과정에서 일본 도쿄도 미나토쿠 아카사카 7정목 3번 39호(東京都港区赤坂七丁目3番39号)에 있는 타카하시고레쿄옹 기념공원(高橋是清翁記念公園, 이하 다카하시 공원)에 있는 숙용심씨 묘비터 라고 적힌 표지석을 발견하였다.

 

숙용심씨 묘비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출병했던 시마즈한(島津籓)이 퇴각 때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하시 공원에는 숙용심씨 묘비 말고도 조선의 석물(石物)로 석인상, 석등, 석탑을 포함하여 10여 기가 있다고 한다. 한편, 도쿄의 공원 말고도 교토국립박물관 정원의 석인상(石人像) 13기를 비롯하여 석물 30기도 조선에서 건너간 것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건 모른다. 고려불화의 경우 90%가 일본에 가 있다는 게 일본 고려물관의 조사 결과인 것을 보면 일본 땅에 건너간 석물(石物)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란 생각이다.

 

 

숙용심씨 묘비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미나토구 다카하시 공원에 있던 묘비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1999년 부산일보 도쿄 특파원이었던 최성규 씨였다. 이후 숙용심씨 후손들은 ’숙용심씨묘비환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묘비 반환을 서둘렀다. 후손들은 2000년 4월 18일 일본정부에 묘비 반환을 정식 요청하였다. 하지만 묘비를 반환해달라고 해서 바로 반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협의와 난관 끝에 드디어 2000년 6월 16일, 숙용심씨 묘비 반환 허가가 났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시간이 흘러 2000년 7월 3일, 숙용심씨 묘비는 400여 년 만에 그리운 고국땅으로 돌아왔다. 묘비는 현재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산 39번지에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는 숙용심씨의 작은 아들인 영산군 무덤이 있다. 비록 어머니의 묘비석이긴 해도 400여년 만에 귀향한 묘비석을 가까이에 둔 아드님의 마음도 이제야 편안해졌을 것이다.

 

 

숙용심씨 묘비석은 귀환하여 유리케이스에 초라하게 보관되어 왔으나 그동안 후손들이 서울시에 문화재로서 품격을 지키기 위한 정비작업을 요청하여 2020년 8월 현재는 번듯한 보호각을 세워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