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기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옆길로 들어서서 오늘은 송서(誦書)율창(律唱)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해 보도록 하겠다. 2012년 9월 25(화) 13;00부터 서울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는 이름도 낯설은 “송서(誦書)율창(律唱)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전국학술대회가 열린다. 송서(誦書)란 무엇이고 율창(律唱)이란 무엇인가? 송서란 주로 고문(古文)이나 옛 소설과 같은 글을 읽을 때에 밋밋하게 읽는 것이 아니라, 높낮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구성지게 낭송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말엽까지도 글공부하던 선비들은 책을 읽을 때, 고저를 살려 노래하듯 책을 읽었기에 옆에서 듣던 사람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고, 본인도 글 읽는 것이 싫증나지 않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율창, 혹은 시창이란 말은 한시(漢詩)를 긴 가락에 올려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여기 율창의 율(律)은 음(音)이다. 곧 율려(律呂)이다. 율려는 음의 높고 낮은 고저를 구별하는 음이다. 서양음악의 12반음이 있듯이, 전통국악에도 황(黃), 태(太) 중(仲)등 12음이 쓰이는데, 이를 12율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시창이란 말은 시(詩)를 노래한다는 말이기에 일반
한국의 전통악기들 중에서 입으로 불어 소리 내는 악기를 흔히‘피리’또는‘퉁소’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부르는 것은 잘못 전해오는 명칭인 것이다.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중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마적(魔笛)을 우리말로는 요술피리라고 번역하고 있다. 적(笛)을 피리로 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휘파람을 구적(口笛), 입피리라는 말도 쓴다. 그러나 우리음악에서 말하는 적, 예를 들면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악기는 취악기이지만 종적(縱笛)이 아니라 횡적(橫笛),즉 가로 부는 취악기를 의미한다. 피리는 반드시 소리를 유발하는 혀(舌), 또는 서를 관에 꽂아서 세로로 부는 관악기를 뜻한다. 그러므로 입으로 부는 악기를 모두 피리요 퉁소라고 구분 없이 부르는 것은 마치 서양의 관악기를 금관악기든 목관악기든 모두 나팔이라 통칭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전통음악에서의 피리는 대나무 관대, 즉 죽관(竹管)에 8개의 구멍을 뚫고‘겹혀(double reed)’흔히‘서’라고 하는 리드를 꽂아 부는 악기를 말함이다. 피리처럼 겹혀를 쓰는 서양 관악기에는 오보에(ob
우리나라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국악기는 약 60여종에 달한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는 수많은 악기가운데는 음악 연주용이 아닌 의식에 필요한 의물(儀物)에 가까운 것도 있고, 사용법을 잃고 보관되어 있는 악기들도 포함되며,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과 같은 음악에 상징적으로 편성되는 악기들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악기들을 제외하면 약 20여종의 악기가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이 국악기를 분류하는 방법으로는 전통적으로 해 오던 계통에 따른 분류와 재료에 따른 분류가 있고 현대의 분류법에 따라 연주법(演奏法)에 의한 분류방법, 민족음악학적인 분류법 등 네 가지 방법에 의하여 구분하고 있다. 첫째의 분류방법은 음악의 계통에 따라 구분하는 분류이다. 음악의 계통이라 함은 과거 우리 음악의 갈래를 의미하는 말로 중국 고대의 아악(雅樂)인가, 중국의 속악인 당악(唐樂)인가, 한국땅에서 생성된 향악(鄕樂)인가 하는 분류에 따라 그 악기가 어느 계통의 음악에 편성되어 쓰였는가 하는 즉, 용도에 따른 분류방법이다. ≪악학궤범(樂學軌範)≫의 분류에서는 향부악기로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 대금, 향피리, 소관자, 풀피리 등 7종이 있고 당부악기에는 방
한국의 전통악기, 곧 국악기는 대나무나 명주실을 이용하여 만든 악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편경처럼 돌로 만들어진 악기도 있고 편종이나 방향처럼 쇠붙이를 재료로 하여 만든 것도 있으며 흙이나 가죽, 나무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여하튼 전통악기의 대부분은 자연산 재료를 그대로 활용하여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전통음악의 고저(高低), 즉 선율을 이끌고 있는 악기들은 관악기(woodwind instrument)와 현악기(stringed instrument)들이다. 관악기의 주재료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고, 현악기들은 거의가 명주실을 오동나무통 위에 얹어 소리를 내고 있다. 선율을 만들어 나가는 주된 악기들의 재료가 대나무나 명주실, 오동나무라는 점에서 이들의 음색은 벌써 식물성 재료를 활용한 부드럽고 친환경적인 자연의 소리라는 점이 특징적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서양 음악이 금속성 악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지성의 소리요 과학적인 음악이라면, 한국의 악기들은 식물성 소재에서 나오는 따스한 감성과 서정을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인 음악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국악기의 음색은 서양악기에 비해 어둡고, 탁하며
김옥숙 명창이 이끌고 있는《경상도소리 보존회》가 2012년 9월 12일, 제11회 정기발표회를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국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현대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전통의 소리를 부르고 전승해 가는 과정도 벅찬 일인데,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을 넘도록 지속적인 발표무대를 열어 오면서 전통소리의 고정 애호가를 확보해 왔다는 사실은 김옥숙 개인은 물론, 창원시의 자랑이오, 경남 예술계의 자랑이며, 나아가서는 한국 국악계의 자랑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쌍수를 들어 크게 격려하고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는 바이다. 얼핏 발표할 곡목들을 일별해 보니‘달거리’와 같은 좌창을 비롯하여 서울 경기지방과 경상도 지방의 민요가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불가의 노래인‘회심곡’도 부르고, 판굿이나 춤도 들어 있으며, 가야금병창이나 판소리와 같은 남도의 소리도 포함하고 있어서 다양한 장르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재미있고 다채로운 구성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무대를 준비한《경상도소리 보존회》의 김옥숙 회장은 경남 고성군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불러주는 전통의 소리를 생
-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Ⅴ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전화자 교수를 만나 연변예술대학이나 조선족 예술단, 연변의 음악인들에 관한 정보도 듣고 황득주 명인과 의기가 투합되어 연변땅을 직접 방문해 보기로 마음을 통하고 동행할 연주자들 20여명이 홍콩-북경을 경유하여 연변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을 이야기 했다. 북경에서 연변행 작은 비행기에 올랐다. 약 2시간 후에 몹시 흔들리던 비행기는 드디어 우리를 연변 공항에 내려 주었다. 늦은 밤이었다. 마중 나온 정준갑 일행을 따라 백산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말이 호텔이지 헌 수건 2장이 서로 모양이 다를 정도로 초라한 형태의 여관이었다. 아침에 일찍 찾아준 정준갑 교수를 따라 우리 일행은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미니버스에 올랐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원의 원로 교수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건물 앞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사람씩 내리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연변예술학원의 김삼진 원장, 무용, 미술, 서양음악과의 부원장, 민악과의 김진,
-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Ⅳ 지난 주 속풀이에서는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행사가 연변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전화자 교수가 어렵게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그를 통하여 연변대학과 연결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1990년 한ㆍ중 수교가 이뤄지지 않았던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민족의 전통소리를 배우고자 한국《국립국악원》으로 유학을 온 전 교수를 만나게 된 배경을 잠시 이야기 하였다. 거문고의 명인 고 황득주로부터 전 교수를 소개받고 우리 3인은 반포 삼거리 식당에 가서 불고기와 냉면으로 늦은 저녁을 함께 했다. 맥주도 한잔 곁들였다. 그 당시의 우리와 중국의 화폐가치를 기억나게 하는 일이 하나 생각난다. 3인이 식사를 끝내고 75.000원을 계산 했는데, 전교수가 영수증을 자꾸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영문인가 싶어 무심코 주었더니 그의 말이 “야, 내 3달 치 신봉을 한자리에서 먹어 치웠습네다”라고 놀래는 것이었다. 그 당시 고참 대학교수의 1개월 급여가 우리돈으로 25,000원이었음을 알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젊은 교수들은 2만원 미만이었을 것이고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전문 연주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들
지난주에는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를 준비하고 있는 연변예술대학 교수진들의 환영사를 소개하였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정례적인 우리의 만남이 우리 민족문화 유산을 후손들에게 전승하는 길에서 더욱 공고한 초석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더하여 이러한 교류의 장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는 점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 행사가 시작된 계기는 연변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가르치고 있는 전화자 교수가 어렵게 한국으로 유학을 왔고, 그를 만나면서 연변의 교수들을 소개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교류가 가능해 진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전화자 교수는 누구인가? 잠시 소개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1990년 당시, 《국립국악원》에서는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의 교포인 연변대학의 전화자 교수로부터 한국에 와서 민족성악인 경기민요나 서도민요를 배우겠다는 유학의 뜻을 전달받았다. 그의 내한 목적이 남쪽의 노래를 배워 그의 입신이나 더 큰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연변의 지역민들이나 대학의 제자들에게 남쪽의 소리들을 배워 전해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 Ⅱ 지난주에는 30여 명의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원들이 중국 연변예술대학을 방문하여 열네 번째 한-중 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 교류회를 했다는 이야기와 이 행사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중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포들이 지키고 있는 음악을 상호 이해하고 서로 교류하는 행사라는 점을 소개하면서 올해의 발표내용과 발표자들을 소개하였다. 이 행사를 준비한 중국의 연변예술대학에서는 강광훈 학장, 신호 부학장, 김성삼 전학부장, 전화자 교수, 중국음악가 협회 박장수 주석, 표현전업의 리훈 주임, 최성룡 교수 등 그 외에도 여러 교수와 학생들이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그 중 리 훈 주임교수의 “중·한 교류음악회의 진정한 의미”라는 제하의 환영사 일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연변대학예술학원과 한국의 전통음악학회가 매해 여름에 만나 공동으로 개최하는 중한 학술 및 실연 교류회가 벌써 금년으로 14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이번에도 저희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찾아주신 한국전통음악학회 회장 서한범 박사님을 위시한 모든 가족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하나 되는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에 열매가 맺을 수 없는
중요무형문화재 19호 선소리 산타령의 이수자로 용인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기소리의 중견 곽윤자 명창이 음반 출시를 했다고 한다. 평소 그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노래에 대한 그의 열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미국과 중국의 대학과 학술 및 실연교류회를 해 오고 있다. 겨울철에는 미국의 UCLA와 Korean Music Symposium 행사를 11년째 해 오고 있고,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는 중국의 연변예술대학, 그리고 조선족 예술단과 학술 및 실연교류회를 20여년 전부터 해 오고 있다. 이 행사에 국악계 여러 교수와 석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 인간문화재급 명인명창이나 이수자급의 실기인들이 동참해 주고 있다. 몇해 전부터는 선소리 산타령의 황용주 예능보유자 외 보존회 멤버들이 본 행사에 동행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곽윤자를 가까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연주여행을 함께 하면서 남들과는 다른 그녀만이 지니고 있는 인상에 남는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는 그녀가 매사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소리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