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속풀이 47에서는 유럽의 유명 신문들에 실린 감정평을 소개하였고 그들이 인상깊게 이야기하는 종묘제례악과 대취타를 간단히 소개하였다. 다시 국악이란 항아리를 들고 여섯 번째의 감정가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중국의 음악인 차이링의 말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듣고 느낀 점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매우 독특한 음악적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서양음악은 물론, 인도의 불교음악에서 받는 느낌과도 다르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동방 민족을 대표하는 독특한 종교관과 신(神)적 정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음악이 서양음악과는 다르고 인도의 불교음악과도 받는 느낌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동양을 대표하는 독특한 종교관을 내포하고 있어서 신비롭고 그러기에 신적인 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는 앞에서 소개한 여러 감정가의 논평과 다르지 않다. 이상, 만나본 외국의 저명 음악인들 외에도 한국의 전통음악을 감상하고 느낀 논평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평가는 내용은 같고 표현만 다를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전통음악은 매우 훌륭한 음악미와 차원 높은 예술성을 지닌 세계적인 음악임을 이구동성으로 인
국악속풀이 46에서는 조나단 컨디트(Jonathan Condit) 박사의 논평을 통해서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 그리고 궁정음악, 즉 아악과 민속악의 차이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한국음악은 자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고 서양음악은 인공적인 것 같다.”는 그의 평가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제 유럽의 신문들은 한국음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살펴보도록 하겠다. 다음은 독일의 디벨트(DIE Welt)신문의 논평이다. “한국음악은 현대음악에 큰 위협을 느끼게 했다. 한국음악은 바로 현대음악이다. 500년 전의 종묘제례악이나 천년 전의 대취타(大吹打)가 바로 오늘의 현대음악이요, 그 본보기이다.” 이어서 프랑스의 르몽드(LE Monde)지와 르피가로(LE Figaro)지에 실린 기사를 보자. “우리 서구인들에게 이 신비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기쁨은 색채의 조화성과 아름다운 변화의 다양성을 맛보게 하여 황홀한 예술의 극치를 경험하게 하였다.” “전위 음악가들이 한국 음악을 들었을 때에 그들이 찾고자 하는 새로운 운율을 충족시켰을 것이며, 동시에 무
지금 국악속풀이는 한국전통음악이라는 항아리를 들고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을 만나는 중이다. 지난주 46에서는 조나단 컨디트(Jonathan Condit)박사의 평가로 “한국음악은 자연에 좀 더 가깝고, 서양음악은 더욱 인공적인 것 같다.”는 논평이었는데, 그 대표적인 음악으로 수제천을 들고 있기에 이를 소개하였다. 아악과 민속악의 차이뿐 아니라, 국악과 서양음악의 차이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고 있어서 참고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수제천이란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음향 자체도 매우 인상적이고 위엄 있으며 강렬하지만 진미를 알려면 여러 번 들어야 한다. 그 음악에 내재하여 있는 갖가지 음악적 요소도 특징적이지만, 일정치 않은 불규칙 장단 속에서도 많은 연주자가 하나같이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 모습은 마치 물이 흐르고 바람에 구름이 움직이듯 자연의 형상 그대로라는 느낌이다.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이번 주 국악속풀이 47에서는 최창남의 공연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연일시는 3월11(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중요무형문화재
국악이란 항아리를 들고 다섯 번째 감정가인 캠브릿지 대학의 조나단 컨디트(Jonathan Condit)박사를 만나 보도록 한다. “한국음악에서 또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특색은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등 매우 풍부한 다양성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광범위한 감정 묘사가 있는 것이다. 궁중음악은 한없이 우아하고, 위엄 있고, 세련되고, 품위 있고, 진진하며 아주 아름답다. 반면에, 민속음악은 정서적이고 정열적이다. 궁중음악이 오랜 전통이 있듯이 민속음악 역시 뿌리깊은 전통이 있다. 차이를 말하자면, 민속음악은 더욱 대중에 침투되어 있어 처음 들을 때 이해하기가 쉽고, 반면에 궁중음악은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깊이와 참뜻을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수제천과 같은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음향 자체도 매우 인상적이고 위엄 있으며 강렬하지만, 진미를 알려면 여러 번 들어야 한다. 한국과 서양의 음악을 대비할 때 한국음악은 아주 느린 속도와 동시에 아주 빠른 속도를 갖추었는데, 서양에선 그렇듯 느린 것은 없다. 한국음악은 자연에 좀 더 가까운 것 같고 서양음악은 인공적인 것 같다” 컨디트 박사는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정악, 민속악 등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초부터 공부하였고
지난주에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윌리암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한국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는 말의 배경을 음미해 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감정 결과였다. 그의 논평문에는 한국의 피리와 대금이라는 악기 이름이 나오는데, 피리의 종류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가 있고 이들이 각각 어떤 음악에 편성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해 보았다. 이번 속풀이 45에서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소개부터 시작해 보겠다. 대금이라는 악기는 신라의 3죽 중에서 가장 굵고 긴 형태의 가로 부는 젓대 또는 저의 이름이다. 신라의 3죽은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신라 신문왕(神文王)때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그 산 위에는 대(竹)가 한 그루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 연유를 알아본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
속풀이 43에서는 루 해리슨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그가 한국에 와서 피리를 배울 때, 자신이 익숙한 서양의 5선보가 아닌 한국의 정간보를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제 세 번째 감정가인 미국 미시건 대학의 윌리엄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들어보기로 한다. 맘 교수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나는 전에 일본음악을 들어 본 일이 있다. 그러나 한국 음악은 들을 때마다 나의 호기심을 끌며 일본이나 중국음악과는 달리 완전히 독창적이며 독특한 데에 놀랐다. 한국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직접 한국음악과 춤을 접했을 때, 그들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한 구조로 된 악기들, 즉 피리, 대금, 장고 등이 있으나 소리는 전혀 다르다. 또한, 무용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감각적 요소가 풍부하여 매우 매혹적이었다. 한국의 음악과 춤은 우리 외국인을 더욱더 감동시킬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우아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음계나 가락도 중국의 5음계나 일본의 음
‘김 모씨의 항아리’ 이야기를 이 난에 소개한 이유는 그가 자기 집에 항아리를 두고도 그것이 귀한 보물임을 모르고 지내 왔듯이, 한국 전통음악의 진정한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악이라는 항아리를 들고 전문 감정가들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제일 먼저 알렌․호바네스(Alan Hovhaness)를 만났는데, 그가 말한 논평문 속에 ‘아악’ ‘향악’ ‘거문고’ ‘가곡의 대여음’과 ‘처용무’ 등의 낯선 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속풀이를 하는 중이다. ‘아악’ ‘향악’ ‘거문고’ 등은 이미 간단하게 풀이하였고 ‘가곡’과 ‘처용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리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풀이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가곡’은 홍난파 이후의 신가곡이 아니다. 조선조 전기부터 문인이나 선비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오던 전통 가곡을 말한다. 가곡은 5장 형식이다. 시조시 초장을 가곡에서는 1장과 2장으로 구분하고, 시조시 중장 전체를 3장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종장을 4장과 5장으로 나누는데, 가곡의 4장은 시조시 종장의 첫 3음
지난주 국악속풀이 41에서 필자는 김 모 씨의 항아리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내다가 타인의 충고를 받고 그 유산이 매우 귀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된 과정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소개한 이유는 ‘김 모씨의 항아리’를 김 모씨=한국인 항아리=국악 즉 ‘한국인의 국악’으로 비유하여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와 악을 교육이념으로 삼고 인격을 도야하며 자기완성을 실현코자 했던 할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귀중한 백자(白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집까지 잃고 가난 속에 푸대접을 받던 아버지 시대의 국악은 깨져버린 항아리처럼 끊기고 잘리는 아픔을 견뎌 내야만 했던 식민시대였다. 일제는 우리 고유의 음악문화를 말살하려 들었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은 마지막 항아리처럼 힘겹게 그 명맥을 오늘에 잇고 있는 것이다. 이 힘겹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전통음악이 많은 한국인이 알고 있듯, 그렇게 볼품없고, 수준 낮은 과거의 낡은 음악인가 아닌가 하는 점을 확인하고자 세계의 유명 감정가들을 만나 보기로 하겠다. 먼저 미국의 유명한 작곡가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김 모씨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대강 이러한 내용이었다. 그의 집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조그맣고 흰 항아리가 하나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의 집에는 이런 종류의 항아리들이 몇 개 있었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는 특히 조부가 그 물건에 관심이 많으셔서 매일같이 그 항아리들을 닦고 매만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누가 손이라도 댈라치면 걱정을 하시며 지극 정성으로 보존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부께서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의 사업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가족은 작은 집,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다가 드디어는 남의 집 방 한 칸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사는 동안 가족들의 관심 밖으로 돌려진 항아리들의 보관문제는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조부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항아리들은 관리소홀로 하나 둘 깨지고 조각이 나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한 개뿐이다. 가장이 된 김씨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고 생활
문화재의 지정 또는 인정의 해제와 관련된 조항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그 지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당해 문화재의 보유자로서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유자의 인정을 해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와 “특별한 사유”가 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가? 만일 보유자가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전수활동이나 발표공연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당연히 명예보유자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사유에 속하는 경우는 ‘장기간 해외에 체류하는 경우’ ‘전수교육을 게을리하여 진전이 없는 경우’ ‘의무사항인 공개발표를 이유 없이 안 하는 경우’ ‘보유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거나 추락시키는 경우’ 등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인정을 해제시켜야 마땅하다. 개인종목이나 단체종목 구분 없이 1년을 주기로 보유자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