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시대, 힘든 일은 로봇이 하고 늘어난 여가를 즐기는 시대 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맞춤형 서비스가 늘어나고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야 옳습니다. 현대는 대부분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더 잘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더 필사적인 삶, 불안감, 빈부 격차의 심화라는 대가를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경쟁으로 인해 미래 수입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고 현재 하는 일이 계속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일거리가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벌어야 하니 결과적으로 쉴 새 없이 일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전문직도 모든 것을 일에 바쳐야 하고 승진하려면 고객과 함께 밤늦게까지 씨름해야 하고 끊임없이 소개되는 신기술과 보조를 맞추어야 하는 고달픈 일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사회에도 DINS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DINS (double income, no sex)는 부부가 맞벌이하면서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침대에서 잠자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못 할 정도로 항상 피곤함에 절어 있는 맞벌이 부부의 상황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땅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우리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 뜻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지라도, 저마다 이름이 있고 사연이 있다.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꽃은 비로소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곳도 이름에 얽힌 사연을 알고 나면 더없이 가깝고 정겹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책, 《그래서 이런 지명이 생겼대요》는 서울뿐만 아니라 강원ㆍ경기ㆍ충청 등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땅이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친절하고도 정겹게 풀어주는 책이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의 지명에 얽힌 유래도 함께 소개해 다 읽을 때쯤이면 세계로 눈을 넓힐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지명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다섯 개를 뽑아보았다. #1. 장승배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경기도 화성(지금의 수원)으로 이장한 뒤, 11년 동안 12차례나 찾아갔을 정도로 효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지금도 가깝지 않은 수원을 그 당시 가려면 꽤 먼 길을 움직여야 했다. 현륭원으로 행차하던 정조는 커다란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여기는 민가도 없고 사람도 드물어 귀신이 나올 것처럼 음침했다. 그래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틀 전 늘 가던 둘레길 산책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입구에 흰 테이프가 처져 있었고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표시가 있었다. 태풍 피해를 막기 위함이렸다. 그러고 오후 내내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밤새 걱정도 했다. 얼마나 엄청난 태풍이 오는 것일까? 새벽 4시에 얼른 창밖을 보았다. 어! 바람도 비도 잦아졌네? 그리고 다시 보니까 부산과 경남, 그리고 울산과 포항을 지나면서 400밀리가 넘는 엄청난 비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정전이 되고 길이 끊기고 했는데 초기에는 인명피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하 주차장에서 주민들이 대거 실종되는 등 안타까운 인명피해도 많이 났다. 역사상 유례가 없이 강한 태풍이라고 해서 다들 긴장하고 조심했지만,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은 다시 무력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산에 올랐다. 역시 상처가 꽤 있구나. 등산로 입구부터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과 제법 굵은 가지들, 빗물에 쓸려 내려온 길 모래와 작은 자갈들이 길 위에 올라와 있다. 조금만 땅이 낮은 곳에는 빗물들이 졸졸 흐르다가 아래쪽으로 가서는 굵은 물줄기가 되어 평지 근처에서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런 가운데도 누가 쌓았는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베어진 옥수수 대궁 위에 내려앉은 고추잠자리의 나른한 오수에서 길가에 마냥 흐드러지게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청순한 자태에서 한낮의 여름을 식히듯 또랑또랑한 귀뚜라미 울음소리에서 묻어나는 가을을 느낍니다. 해는 점점 짧아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아직 여름이고 싶은 나무의 잎새를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 여름내 숨어있던 새들도 햇살 아래로 나오는 걸 보니 가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길쭉한 꽃송이를 하얗게 이고 있던 밤나무의 모습이 어제인 듯한 데 바늘 숭숭한 송이 안엔 속살이 굵어져 가고 성급하게 다가온 추석에 열매를 물들이기에 바쁜 대추나무 보름달 아래 휘영청 한 수숫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 감의 깊이가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름은 켜켜이 쌓인 소중한 추억과 함께 떠날 채비를 마치고 그 빈자리에 풍요를 구가하는 계절이 성큼 와 있습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나뭇잎이 지는 계절, 이별의 계절, 비워냄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내 키워냈던 열매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개구리의 합창으로 요란했던 황금 들녘도 빈 들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가을은 비워냄을 학습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덜고 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번 책은 산악계 원로이신 이용대 전 코오롱등산학교 교장님이 쓰신 수필집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산정한담(山頂閑談)》은 산악계 원로가 지나온 산악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쓴 글들입니다. 그래서 책 표지의 부제에는 ‘산 위에 올라 인생을 돌아본다’라고 되어 있네요. 선생은 책을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혈기 넘치던 젊은 날 나의 산은 위험한 짓거리와 마주하는 치기로 가득했다. 여러 차례의 추락으로 죽지 않을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내면에서 솟구치는 산을 향한 열정을 꺾지 못한 채 오늘도 산에 오르고 있다. (가운데 줄임) 이번 글의 내용 대부분은 산과 사람의 이야기와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 알피니즘의 정체성, 산악인들의 사사로운 일상과 그들의 등산 활동이 배경이며, 이전 저서에서 못다 한 이야기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주변 산사람들과 부담 없이 나누는 산정한담(山頂閑談)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삶의 터전마저 산기슭으로 옮겨와 둥지를 마련한 지 40년, 아직도 강북에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지만, 산의 품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 내 고집이다. 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검계! 이름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날의 조직폭력배와 유사한 검계는 도성 안팎의 사람들을 벌벌 떨게 만든 조선 후기의 비밀 폭력조직으로, 양반 세력가의 자제들도 많이 가담해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곤 했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포도대장 장붕익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장붕익은 26살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조선 영조 때, 오늘날의 경찰청장 격인 포도대장으로 활약하며 검계를 일망타진했다. 그는 전조선 후기 유명한 포도대장 집안이었던 인동 장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운이 넘치고, 작은 일에 얽매이거나 남에게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장하현은 숙종 때, 장붕익은 영조 때, 손자 장지항은 영ㆍ정조 때 각각 포도대장을 지냈으니 가히 포도대장 명문가라 할 만했다. 이 책 《포도대장 장붕익 검계를 소탕하다》은 장붕익이 1725년~1735년 포도대장으로 있던 시절, 포도청에서 실제로 벌어졌거나 일어났을 법한 사건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재구성한 책이다. 장 대장의 참모 격인 김 종사관, 특별 대원인 이 포교와 팔봉, 남이, 막동이 등이 등장해 각종 범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흥미롭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딱 10년 전 우리는 은평뉴타운 5단지에 집을 사서 이사 왔다. 이곳에서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면 바로 한옥마을 단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2년 동안 아래 사진처럼 허허벌판, 공터였다. 그러다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맨 처음 생기고 시범주택이 생기더니 일반 한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애초 예상과 달리 분양을 시작하고 1년 동안에 12필지만 분양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이를 세분하고 또 일반 주택으로 집을 짓는 곳도 분양하는 정책전환으로 2018년에는 필지가 모두 분양되면서 한옥마을 조성사업이 활기를 찾았다. 물론 한옥과 양옥이 절반씩 나눠서 절름발이 한옥마을이 되긴 했지만, 수도권에서 처음 조성한 한옥마을이기에 새로운 주거단지이자 일종의 관광명소로 점차 부상하기 시작했다. 현재 진관사에서 가까운 쪽은 한옥단지로만 분양이 돼 제법 한옥마을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현재는 공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옥들이 꽉 들어서는, 이름 그대로 한옥마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내가 은평뉴타운에 산다니까 한옥마을이 가까운 데 있냐며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손님들을 집 옆 한옥마을로 가끔 안내하기 시작했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옛 그림.’ 어쩐지 근엄하기도 하고,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옛 그림’은 한동안 내가 선뜻 다가가기 힘든 대상이었다. 이런저런 그림을 자주 접하면서도, 그리고 심지어 우리나라 ‘옛 그림’을 심심찮게 보면서도, 묘하게 낯설고 어려운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렇게 막연하고 조금은 부담스러웠던 ‘옛 그림’은, 이 책을 계기로 계속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진중한 느낌 때문에 다가가기가 망설여져도 막상 대화해보면 잘 통하는 친구처럼, 옛 그림에 담긴 오묘한 맛과 신묘한 뜻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 《속속들이 옛 그림 이야기》는 뒷면에 있는 소개 문구 그대로, ‘다정한 입담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미술평론가 손철주의 강연집’이다. 그가 강의했던 내용이 네 장으로 정리되어 네 번의 특강을 듣는 기분이다. 지은이는 ‘이야기에 담긴 연희성은 역시 말로 해야 흥이 돋는다. 글로 단장하려 하니 제스처만 남고 교감이 날아간 느낌이다. 귀에 남을 이야기가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다.’라며 겸양을 보이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강의 덕분에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몰입할 수 있다. 책의 1장에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문화예술기획자’란 직업을 아는가? 많은 사람에겐 생소한 직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를 외면하고 살지 않았다면 문화예술기획자와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화예술기획자가 있어야만 문화와 관련된 행사를 열 수가 있다. 거문고를 공부하고, 지금 문화예술기획자로 살아가는 이화여대 이진경 교수의 글을 통해 앞으로 공연과 문화행사를 톺아보고, 그 뒤에 서린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이 교수가 어떻게 문화예술기획자가 되었고, 어떤 생각으로 문화예술기획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향후 이어지는 연재를 통해 '문화예술기획'이란 작업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자한다. (편집자말) 문화예술기획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예술전공으로 뭐하며 살 수 있어요?”다. 그럼 나는 내가 어떻게 예술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가지 직업들을 이야기해주곤 한다. 처음부터 문화예술기획자가 목표는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를 보면서 곧잘 공부하니 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중학교 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경기도 농촌에 가보면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닐하우스 덕분에 겨울에도 마트에 가보면 상추, 호박, 오이, 딸기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제주도의 특산물로 알고 있는 감귤을 경기도의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서울 시민에게 공급하고 있다. 유리온실에서는 카네이션을 재배하여 사시사철 꽃을 공급하기도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는 일반 국민의 겨울철 식탁을 보면 조선시대 임금보다도 더 화려한 식사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리나 비닐, 플라스틱으로 지은 인공 구조물에서 인위적으로 재배 환경을 조절하면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사 방법을 ‘시설재배’라고 한다. 시설재배 가운데서도 가장 흔한 비닐하우스의 색깔이 하얀색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농촌이 작물의 색깔인 푸른색이 아니고 백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백색혁명이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졌다. 사전을 찾아보면 백색혁명이란 “비닐하우스 농법의 보급으로 한겨울에도 푸른 채소를 공급할 수 있게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 산골에서도 밭농사를 지으면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하는 농가가 많이 보인다. 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