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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동물원이 되어버린 궁궐, 창경궁

《동물원이 된 궁궐(창경궁)》, 김명희 글, 백대승 그림, 상수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나라가 망하고, 또 그 궁궐은 동물원이 되고… 불과 백여 년 전 우리 역사에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이런 슬픈 역사 속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김명희가 글을 쓰고, 백대승이 그림을 그린 이 책, 《동물원이 된 궁궐, 창경궁》은 창경궁이 품고 있는 슬픈 ‘창경원’의 역사를 모르는 어린이들이 읽기 좋은 그림책이다. 일제는 궁궐에 있던 소나무를 모두 베고 곳곳에 벚나무를 잔뜩 심었다. 그리고 광복이 되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창경원은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책의 앞부분에는 부모님과 창경원에 놀러 간 한 소녀의 이야기가, 책의 뒷부분에는 창경궁의 역사와 주요 건물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재미와 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다. 창경궁을 한 번쯤 가보거나 들어는 봤어도,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견주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창경궁은 세종이 아버지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쪽에 지은 ‘수강궁’을 성종이 증축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성종은 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 세 대비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지었고, 그래서 나랏일을 돌보는 ‘외전’보다 생활공간인 ‘내전'에 더욱 신경을 썼다. 세종이나 성종이나, 이 궁은 효를 위해 지었던 '효의 궁궐'이었다.

 

 

조선의 법궁이던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리고 창덕궁을 주로 쓰게 되면서 보조 궁궐 역할을 톡톡히 하던 창경궁은 1909년 일본에 비참하게 헐려버린다. 순종을 위로한다는 구실로 창경궁 건물을 마구잡이로 뜯어내고 궁궐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든 것이다.

 

1910년, 일본은 우리나라의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고 식민지로 삼았어요. 그 이듬해인 1911년 4월에는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꿔 버렸어요. 이로써 임금이 살던 궁궐은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이처럼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임금의 거처에 동물들을 들이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만들어서 우리 민족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아버리기 위해서예요.

더욱 부끄러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한 우리의 모습이예요.

 

일제 강점기 내내 유원지였던 창경궁은 광복을 맞이한 뒤에도 1983년까지 동물원으로 남아있다가, 1984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복원 공사를 시작해 옛 궁궐의 이름과 모습을 되찾았다. 창경원에 있는 동물들은 남서울대공원(현재의 서울대공원)으로 옮겼고, 수천 그루의 벚나무 대신 소나무를 심었다.

 

 

 

 

1986년에는 명정전 회랑과 문정전이 복원되었고,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과 일본식 건물을 없앴다. 지금도 옛 모습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원래 규모의 20% 정도만 복원된 것으로, 예전의 아름답고 웅장했던 모습을 찾을 길은 요원하다.

 

지극한 효성에서 시작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던 창경궁은, 망국(亡國)의 설움을 대변하듯 유원지가 되어버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문화유산도 지켜낼 수 없다.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창경원’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긴 세월 끝에 겨우 다시 이름을 되찾은 우리 궁궐, 창경궁.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던’ 과거를 넘어, 오래오래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