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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왕의 남자,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왕의 남자 내시》, 글 윤영수, 그림 이승현, 한솔수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창백한 낯빛, 수염 없는 매끈한 턱, 가느다란 목소리...

흔히 내시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모습들이다. 내시는 그림자처럼 임금을 수행하면서 궁 안팎의 일을 두루 살피는 벼슬이었다. 비록 거세됐다는 까닭으로 세간의 인식이 좋지 않기도 했지만, 높은 영화와 권력을 누릴 수도 있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내시는 거세된 만큼 자손을 볼 수 없었지만 대체로 양자를 들여 가문을 유지했다. 윤영수가 쓴 책, 《그림자처럼 왕을 섬긴 왕의 남자 내시》에서는 내시 박계운의 양자로 들어간 서개동이라는 소년이 내시가 되기 싫어 몸부림치다가 마침내 양부의 대를 이어 훌륭한 내시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내시가 되는 과정은 아주 고된 일이었다. 우선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다친 소년들이 내시의 양자로 입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시대 내시들의 계보를 적은 족보 《양세계보(養世系譜)》를 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의 성이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비록 양자를 들였더라도 원래 집안의 핏줄을 존중해 주는 내시 가문의 가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면 원래 식구들은 집과 논밭을 받아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살림이 어려운 집들이 강제로 아이들을 내시로 보내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서개동은 비록 나무에서 떨어져 성기를 다친 탓에 내시 가문으로 보내지긴 했지만, 가난하던 자기 가족이 집과 땅을 받아 풍족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내관 박계운의 아들, 서유동이 되기로 결심한다.

 

내시들도 여느 신하들처럼 궐 밖에 자기 집을 가지고 출퇴근하면서 일을 보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내시부는 오늘날의 효자동인 준수방에 있었다. 조선의 호적부에 효자동 지역의 사대부 가구는 쉰한 가구로 나오는데, 그 가운데 여덟 가구가 내시들의 집이었다고 한다.

 

유동은 양아버지 박 내관을 따라 내시부로 들어갔지만, 곧바로 내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유동과 함께 내관이 되려고 들어온 스무 명가량의 아이들 가운데 훈련을 잘 이겨낸 아이들만 내관이 될 수 있었다. 궁궐 구조를 훤히 알아야 하는 궁궐 공부와 궁중 예법 공부, 사서오경을 배워야 하는 글공부, 주상 전하에 대한 충성심 훈련 등 고된 훈련이 이어졌다.

 

(p.36)

양아버지 박 내관이 식구들한테 집과 논밭을 마련해 준 것이 고마워서 내시부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이렇게 힘든 일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내관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유동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매를 맞겠느냐 아니면 임금이 숨어 있는 곳을 말하겠느냐?”

잠깐 주저하던 유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 말하겠습니다. 대궐 뒷산에 숨어 있습니다.”

유동은 끝내 있는 대로 말하고 말았다.

 

임금이 숨어 있는 곳을 끝내 발설하지 않는 충성심을 시험하는 모의 훈련에서 유동은 매를 이기지 못해 결국 뒷산에 있다고 말해버리고 만다. 이로써 내관의 길은 끝나는가 싶었지만, 양아버지 박 내관과 절친한 사이던 조 내관이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하여 내시 훈련의 길을 이어간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내시부에서 일한 내시의 수는 140명이라고 나오며, 이는 병조나 이조 같은 육부에서 일하는 관원이 보통 부당 열 명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규모가 매우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내시의 품계는 종이품 상선에서 종구품 상원까지 있었고, 이 가운데 임금의 수라상을 감독하는 상선이 가장 높은 벼슬이었다.

 

정4품 상전으로 있던 박 내관은 최 내관이 꾸민 역모로 자객이 임금의 방에 침입했을 때, 임금을 대신하여 방에 누워 있다가 자객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박 내관이 준 옷을 입고 잠시 피신했던 임금은 돌아와 역모를 진압하고, 이를 계기로 유동은 진정한 내관이 될 것을 결심한다.

 

조선 시대 내시의 역할은 임금의 수라를 살피는 것에서부터 임금을 경호하는 역할까지, 말 그대로 임금과 관계된 모든 것을 살피는 것이었다. 자기 피를 물려받은 후손을 남기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거세당한 채 타인을 위해 사는 인생, 그것이 쉬웠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조선의 내시들은 철저한 책임의식과 직업정신으로 그 일을 훌륭히 해냈다. 연산군이 잘못된 길을 갈 때 목숨을 걸고 진언해 끝내 잔인하게 처형당한 김처선과 같이 만고에 길이 남을 충직한 이들도 많았다.

 

조선이 오랜 세월 지탱한 배경에는 이들의 희생과 책임감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임금의 그늘에 가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그림자로 남은 내시를 그림자 밖으로 걸어 나오게 만드는 책이다. 줄거리가 다소 탄탄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잘 몰랐던 역사의 단면을 발견하게 하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