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윤지영 기자] 문화재청(청장 변영섭)은 임진왜란 시 순국한 칠백의사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칠백의사 순의제향(七百義士 殉義祭享) 행사를 오는 23일 오후 3시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칠백의총에서 거행한다. 올해로 421주기를 맞는 이번 행사는 초헌관(칠백의총관리소장)의 분향과 초헌례(初獻禮), 축관(祝官)의 축문 낭독, 아헌관 헌작의 아헌례(亞獻禮), 종헌관 헌작의 종헌례(終獻禮)와 헌관 재배, 문화재청장의 헌화(獻花, 대통령 명의)와 분향(焚香) 순으로 진행된다. 제향행제(祭享行祭) 후 의총참배, 음복다과회가 이어지며, 행사를 통해 칠백의사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넋을 추모하게 된다. ▲ 지난해 칠백의총 제향행사 모습 1 이번 행사에는 문화재청장을 비롯하여 지역 국회의원, 충남도지사, 금산군수와 칠백의사 후손 등 1,000여 명이 참석한다. 딸림행사로 화랑도 무도시범단(중부대학교)의 무도시범과 경내 활터에서 활쏘기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지난 6월 금산지역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제14회 칠백의사 추모 예능대회 입상작품도 전시한다.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당시 중봉 조헌(重峯 趙憲) 선생과 승장 영규(靈圭) 대사가 이끄는
▲ 대한제국시절 궁궐로 활용한 덕수궁 중화전 ▲ 황제가 타고 가는 가마 ▲황제가 탄 어가 ▲ 사직단으로 행하는 어가행렬 ▲ 경호부대의 행렬 ▲ 대취타대의 행렬 ▲ 북을 울리면서 ▲ 광화문을 돌아서 ▲ 황태자의 가마 ▲ 사직단에 도착한 황제 ▲ 신위를 모시고 사직단으로 ▲ 신위를 뒤따르는 제관행렬 ▲ 사직단 위로 오르는 모습 ▲ 제단 위로 ▲ 신위를 제단에 안치 ▲ 헌관들의 도열 ▲ 헌관들의 인사 ▲ 제례에 참여한 무용수들 ▲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 제례의식 거행 ▲황제의 입장 ▲ 황제의 제례의식 ▲ 황제의 깃발 [그린경제=최우성 기자]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황제라 부르지만 아무리 황제라할지라도 그가 인간인 이상 황제도하늘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 또한 땅의 자손일 수밖에 없다는 철학이우리에게는고래로부터 있어왔다. 그리하여 하늘에도 제사를 지내고 땅에도 제사를 지냈다. 그런 의미에서 무형의 존재인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은 별도로 하고 사직대제는 유형의 존재인 땅과 그 땅에서 거두어 인간을 살수 있게 하는 곡식을 주관하는 신을
[그린경제 = 정석현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오늘 몸 숨기고 바다 건너는 사람 지난 몇 해를 와신상담한 사람인가 이미 정한 이 걸음 평생의 뜻이기에 다시 고향 돌아갈 길 묻지 않으리 -상해에서 동경으로 가는 배안에서 읊은 시 가운데서- **김지섭(1885-1928) 독립투사는 누구인가? 본관은풍산(豊山). 호는 추강(秋岡).경상북도 안동 출신. 사서삼경에 능통하였고, 일어를 자습해 21세 때에 상주보통학교 교원과 금산지방법원 서기 겸 통역으로 재직하였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김원봉(金元鳳)곽재기(郭在驥)김시현(金始顯) 등과 조국의 독립을 기도하였다. 독립투쟁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어 만주상해시베리아 등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1922년 상해에서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러시아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충당하고자 1922년 1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뒤 국민대표대회에도 참석하였다. 국내에서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신사숭경(神社崇敬)은 실로 일본의 국체관념(國體觀念)의 반영이다. 신사에서 봉납되는 제사는 황국국체(皇國國體)로 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이한 일이다. 일본민족은 개국 이래 신사를 중심으로 성장하여 왔다. 신사는 일본민족의 향토생활의 중심인 것이다. 이러한 신사는 본토를 떠나 멀리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의 정신생활의 중심이다. (중략) 올해로 성전(聖戰) 5년에 접어들어 지금 일본민족이 전면적으로 대륙으로 진출하여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목표 아래 흥아(興亞)의 대업완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며 신사는 일본의 대륙진출의 중심지이다. 위는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만든《대륙신사대관, 1941》머리말에 나오는 말로 조선 내에 신사를 만든 이유를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 1940년(소화 15) 11월 현재 전국 13도 가운데 유독 전라남도에만 신사를 많이 세웠다. 전국의 신사 신사(神社) 신사(神祠) 경기도 5 67 충청북도 2 16 충청남도 7 30 전라북도 10 20 전라남도 8 226 경상북도 5 47 경상남도 7 37 황해도 2 27 평안남도 2 21 평안북도 4 37 강원도 2 35 함경남도 2 20 함경
[그린경제=이규봉 기자] 7월 9일 0시 조금 지난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마음이 심히 복잡했다. 장준하와 박정희를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리는 누구의 삶을 따라야 하는지. 장준하의 삶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박정희의 삶을 따라야 하는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시킬 것인가? 장준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면 박정희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 둘의 삶은 너무도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민주언론인이며 반독재민권운동가인 장준하 ▲ 1973년 12월 24일 서울 YMCA 2층 총무실에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표하는 장준하 @장준하기념사업회 광복군 장준하는 1945년 11월 23일 김구 선생과 함께 그렇게 바라던 고국으로 환국했다. 그는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면서부터 해방이 되고 김구 주석의 비서로 활동할 때까지는 조국의 광복을 되찾는 데 헌신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1953년 3월 잡지 《사상계》를 창간했다. 1958년 8월호에 실린 함석헌의 글로 필화사건을 맞았다. 탄압에 맞서 다음해 2월호는 권두언을 백지 상태로 발간해 친일파를 등에 업고 독재를 일삼는 이승만 정권을 비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가운데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이 오늘 11시 30분 교육부 앞(정부종합청사 정문)에서 열렸다.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는 항일독립운동가기념사업단체연합회, 흥사단, 한국YMCA전국연맹, 참교육학부모회, 학술단체협의회. 역사정의실천연대 등 전국 465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 반대 시민연합체다. ▲ 온 나라 465개 단체가 참여하는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출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 인사말과 규탄발언을 하는 한상권 대표, 이이화 선생,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김원웅 회장(왼쪽부터) 기자회견은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가 인사말을 했고, 역사학계 원로이며, 전 동민농학혁명기념재단이사장 이이화 선생의 일본인들이 일본어를 국어로 지칭한 것을 마치 한국어를 말한 것으로 해석하고, 독재자 이승만을 추앙하는 교과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또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기념사업단체연합회장은 교학사 교과서는 일본 후쇼사 교과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본래 대한民으로서 차라리 죽을 지언정 일본民 되기를 바라지 않는 국민이 독립을 외친 것이 무슨 법에 맞는 다는 것인가 -이상동 판결문(고등법원, 1919년 5월 12일)- *이상동(李相東)독립투사에 대하여... 1865년(고종 2)1951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건초(健初), 호는 만진(晩眞). 이상동(李相東)의 형은 이상룡(李相龍)이다. 이상동은 1895년(고종 32)에 의병장 신돌석(申乭錫)의 지휘 아래에서 싸웠는데, 형 이상룡과 함께 참여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이루어지자 이상동은 대한협회(大韓協會)의 안동지회에 들어가, 국권을 회복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1년에는 기독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였으며, 이후 장로(長老)가 되어 교회를 건립하는 등 기독교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안동에 있는 한 시장에서 기독교 교인들과 함께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최근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매우 많다. 내지(일본) 및 구미의 문제는 제쳐두고 특히 내 고향 조선의 최근 사태 가운데 매우 유감스런 일이 많다. 우리들 동지가 이전부터 희망하던 동양의 평화를 핵심으로 하는 한일합병의 대사업은 사실 이토히로부미 공(公)을 중심으로 메이지천황의 성지(聖旨)를 도와 이뤄진 것이다. 더구나 유신(維新)의 공로자인 이토 공이 조선인에 의해 쓰러져 범상치 않은 희생을 지불한 것은 지금도 국내외인의 기억에 새로운 바다. 우리는 지금 무슨 얼굴로 지하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 공을 대할 것인가? 메이지천황의 재위 중 이토 공이 살아있을 때는 충성심이 인정되어 어쩌면 일한동화(日韓同化)의 공덕이 곧바로 이뤄질 것으로 마음속으로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조국(일본)을 향해 반기를 드는 무리가 나타난 것은 정치가 황폐해진 까닭이 아닐까? ▲ 오사카매일신문 1919.8.6 1면 기사 송병준의 (동경전화)대담 조선의 제2 유신 지하에서 이토히로부미를 볼 면목이 없다는 말을 한 사람은친일파 송병준이다. 그는 1919년 8월 오사카 매일신문에서 위와 같이 조국 일본을 위해 피를 토하는 심사로 조선에 대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나라 없는 몸 무덤은 있어 무엇하느냐 내 죽거든 시신을 불살라 강물에 띄워라 혼이라도 바다를 떠돌면서 왜적이 망하고 조국이 광복되는 날을 지켜보리다 -서대문형무소 옥중 유언- * 김동삼(1878-1937) 독립투사는 누구인가? 본관은의성(義城). 원명은 긍식(肯植), 호는 일송(一松).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1907년 고향에서 유인식(柳寅植)김후병(金厚秉) 등과 젊은 일꾼의 양성을 위해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세웠으며, 1909년에는서울양기탁(梁起鐸)의 집에서 신민회(新民會) 간부들과 독립운동의 기반 마련과 독립투사의 양성책을 협의하였다. 1910년 국권 침탈로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1911년 만주로 건너가 통화현삼원보(通化縣三源堡)에서 이상룡(李相龍)이시영(李始榮)이동녕(李東寧)윤기섭(尹琦燮)김창환(金昌煥) 등과 함께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여 재만 동포의 농지개혁과 생활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신흥강습소(新
[그린경제 = 정석현 기자]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오는 2014년 2월 28일까지 안동독립운동가 어록전이 열린다 일제강점기 치열하게 펼쳤던 안동독립운동가들은 과연 어떤 말들을 남겼을까? 이제라도 안동독립운동가들의 가슴 절절한 외침을 들어보자. 우리는 역사적 복수주의를 반복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국권과 자유를 회복하려 함에 있다 우리는 결코 일본 전 민족에 대한 적대가 아니요 다만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적 통치로부터 탈퇴코자 함에 있다 우리들의 독립의 요구는 실로 정의의 결정으로 평화의 표상인 것이다. -6.10 만세 격고문 가운데서- *권오설 (18991930) 독립투사는 누구인가? 사회주의운동가. 별명 김형신(金亨信). 경상북도 안동 출신. 일본 유학생으로 1923년 7월 서울에서 결성된 사회주의사상단체인 신사상연구회(후에 화요회로 개칭)에 참여하였다. 1924년 4월 창립된 조선노농총동맹에서 화요회를 대표해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6월에는 김찬(金燦)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의 사전조직인 코르뷰로 국내부에 참여, 조선노농총동맹의 당 야체이카(細胞) 책임자로 활동하였다.1925년 4월 17일 국내에서 결성된 조선공산당 조직에 가담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