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문화신문 = 윤지영 기자] 제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뜻깊은 전시회가 열렸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시화전이 그것이다. 이번 시화전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이윤옥 시인이 그들의 활동무대였던 중국의 상해, 남경, 항주, 유주, 중경 등지를 찾아가 삶의 현장을 돌아보며 지은 헌시와 그 내용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이무성 화백의 그림 30여점을 전시하게 된 것이다. ▲ 서대문형무소에서 있었던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개막식에서 개막테이프를 끊는 인사들 특히 일제강점기 아픔의 역사를 품고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이들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는 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는 평가이다. 이번 시화전을 주최한 한국문화사랑협회 김영조 회장은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현 정국이 우려된다. 이러한 때 일수록 일제강점기에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로 온 몸을 던진 구국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개막인사를 했다. 마침 개막식이 열리는 이 자리에 일본 순사로 분장을 한 사람들이 총을 메고 나타나자 "일본은 다시 군국주의로 되돌아가 총칼찬 순사들을 앞세우려한다. 이들을 몰아내자"라는 말을 하여 개막식장에 참석한
[그린경제=현용운 회장] ▲ 손말틀(휴대폰)가 기본상 보급 되었다는 감을 가졌다. 문자입력의 자소배치는 나의 오랜 조선친구 김명규안으로 표준화된 것이었다 이렇게 남ㆍ북ㆍ중 3개국의 법정문자가 모두다 자기방식대로 입력한다고 하니 지난 20년 동안 연길에서만 14차나 만나서 공동표준제정안을 수없이 다룬 게 무용지물로 된 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단, 수요시장은 그런 느릿느릿한 합의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느껬다 ▲ 라진 책방에서 구입한 컴퓨터 도서들 ▲ 귀국 전, 점심 때 45년 전 화룡 신동(新東)소학교 동창이자 주 체육위축구 구락부 주임이었던 친구 정룡준씨 일행을 만났다, 룡준주임의 부인 현정옥은 나하고 종친이자 역시 동창이기도 하다, 부르기 좋은 매형인 셈이다. 북경 체육대출신이다. ▲ 라진을 떠나면서 투숙했던 삼흥호텔앞에서 김파씨와 라진 1박2일 방짝인 고철룡씨와 함께 ▲ 우리를 초청하느라 수고한 김 신고(申告員을 칭하는 말인데 회사의 대외업무 총괄 같은 지위같었다,) 일어를 잘 한다고 들었다. ▲ 나의 방짝(룸메이트) 철룡이영어를 잘하는 친구이고 현재는 김파씨를 도와 생수사업을 돕고 있었는데 아주 착한 친구였다
[그린경제 = 최미현 기자] 연일 뜨거운 가마솥더위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만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68년 전 광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준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자기 희생정신과 불굴의 정신에 깊이 고개 숙여 흠모의 마음을 가져봅니다. 특히 여성의 몸으로 남성 못지않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오늘 우리는 이러한 분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이에 특별히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들을 발굴하여 헌시를 바치고 그 일생을 세상에 알리고 있는 이윤옥 시인이 쓴 시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이무성 화백의 그림으로 선보이는 광복 제 68주년 기념,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별도의 초대장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래 안내문으로 초대장을 대신하오니 무더운 날씨이지만 개관식을 찾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계사년(4346) 8월 15일 한국문화사랑협회 회장 김영조 사룀 문의:02-733-5027
[그린경제 =황명하 호주광복회장] 얼마 전편집국에 호주 광복회장 황명하 씨로부터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보면 제 선친이 1944년 1월 20일, 학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 후, 몇 달 만에 탈출하여 중국군 상위(대위)가 되어 한중 연합군의 정보장교 시절에 쓴(44년 7월경) 일본인에게 고함이라는 격문이 있습니다. 일본군 진영에 살포하면서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일본군 내 한국 국적 사병들을 불러모으는데 쓰였던 것으로 원문은 일본어입니다.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편지는 이어졌다. 무엇보다 일본이 항복하고 광복을 맞이한 지도 68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인들은 아직까지도 과거의 조선에 대한 엄청난 죄과 -강제 징용, 징병, 위안부, 억압, 학살 등등 - 에 대해 엎드려 사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과는 커녕 말도 안 되는 독도 영유권 주장 등 한국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습니다. 선친의 글은 이제 지나간 역사로 간과될 하나의 성토문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내용으로 보아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없는 이 시대에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입니다. 이에 황갑수 애국지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든 일본인에게 고함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그린경제 = 최미현 기자] 해마다 광주에서는 8월 29일 국치일을 맞아 그 어느 곳에서도 생각 못한 친일음악회를 열어 왔다. 올해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주최로 오는 국치일 하루 전날인 28일 오후 8시 진월지구 노대마을 물빛호수공원에서 국치 103년 기억 음악회가 열리는데 이번에는 친일과 항일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음악회로 마련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지부장 김순흥, 광주대 교수)는 국권 침탈 103년이 되는 29일에 앞서 수치스런 날을 되돌아보고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해마다 이 행사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친일 음악회에는 광주에서 클래식음악을 대중에게 보급하기 위해 힘써 온 '광장음악회' 소속 성악가들이 출연하여 아름답고 순수했던 1920년대의 동요 및 일제 강점기 친일 노래 등을 선보인다. <친일,항일 음악회 프로그램> 사회 / 김순흥 해설 / 정찬경 1920년대 동요...........................................................................꿈꾸는예술 반달 / 따오기 / 오빠생각 / 퐁당퐁당 / 고기잡이 / 고향의 봄 일제 강점기 치욕스러운 친일노래........
[그린경제 = 이나미기자] 100년 편지에 대하여..... 100년 편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2019년)을 맞아 쓰는 편지입니다. 내가 안중근의사에게 편지를 쓰거나 내가 김구가 되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10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역사와 상상이 조우하고 회동하는 100년 편지는 편지이자 편지로 쓰는 칼럼입니다. 100년 편지는 2010년 4월 13일에 시작해서 2019년 4월 13일까지 계속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100년 편지에 동참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매주 화요일 100년 편지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문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02-3210-0411 일송(一松) 김동삼 선생님 ! 작년 약전 집필을 위해 선생님의 일생 행적을 더듬으며 다시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민족운동사, 특히 만주지역 무장투쟁사를 빛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자랐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만주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 통합운동에서 뜻을 함께 했던 희산 김승학이 바로 저의 증조부가 되시는 때문이지요.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턱을 괴고 골똘히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본인 하야시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이 말은 비단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며 2013년 현재 남아있는 60만 재일조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이었고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꾸려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인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행사가 있던 히비야공원까지 장장 1,200킬로 거리를 12일에 걸쳐 돌아보았다. 이 글은 그때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상황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68주년 광복을 앞두고 조선인강제연행 궤적을 쫓아갔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설명- ▲ 지하에 여전히 조선인 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본인 하야시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이 말은 비단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며 2013년 현재 남아있는 60만 재일조선인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말이다. 지난 2010년 8월 15일은 광복 65주년이었고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을 꾸려 조선인들의 강제노동 현장인 기타큐슈의 치쿠호 탄광을 시작으로 시모노세키, 오사카, 교토에 이어 도쿄의 야스쿠니 반대 행사가 있던 히비야공원까지 장장 1,200킬로 거리를 12일에 걸쳐 돌아보았다. 이 글은 그때의 기록이지만 현재의 상황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68주년 광복을 앞두고 조선인강제연행 궤적을 쫓아갔던 기록을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설명- 답사단이 교토시 우쿄구(右京区) 케이호쿠시모나카쵸
[그린경제=이규봉 기자] 길은 어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평지다. 길 주변은 모두 밭이고 거의 논을 볼 수 없다. 장준하 일행이 몸을 숨기는 데 좋았던 옥수수가 무척 많이 심어져 있다. 도로 양쪽으로는 플라타너스 나무가 빼곡히 서있다. 나무 사이사이로 가는 곳마다 군데군데 화학비료를 선전하는 화비(化肥)라는 입간판이 밭에 서 있다. 이 넓은 들판에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선진국들은 유기농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화학비료를 장려하고 있다. 그 넓고 넓은 땅에 모두 화학비료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생산은 늘어나겠지만 훗날 토질이 나빠지고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은 생각 못하는지. 나로서 걱정되는 것은 그 많은 화학성분이 결국은 황해로 배출되어 중국의 연안 어업은 몰락이 가속화되고 이웃한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진 나라의 사례를 이미 모두 파악 했을 텐데 중국 정부는 화학비료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이와 같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갑자기 자전거 두 대가 이어서 펑크를 낸다. 정비를 맡은 임 선생이 바퀴
[그린경제 = 황명하 호주광복회장] 호주에서 광복회 회장으로 민족의 자존심과 얼을 심어주고 있는 황명하(黃明夏) 회장께서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호주에서 부르는 광복군 아리랑 글을 기고해 왔다. 황 회장의 아버님은 그 유명한 일본인에게 고함 (1944년 7월)이라는 격문을 지은 광복군 출신 황갑수(黃甲秀 :1921~2009) 애국지사이다. 아버지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황 회장의 나라사랑 정신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도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힘겨운 이민 사회 속에서도 고국의 역사와 불굴의 정신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 낸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알리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앞장서서 솔선수범함으로써 오늘날 호주동포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우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 한인 동포들은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중에서도 모범적인 한인 동포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드니 동포는 약 12만 명, 호주 전체로는 20여만 명으로서 재외동포 다수 거주 국가 순위 6위국이다. -편집자주- 광복군과 나 광복군하면 아련한 기억부터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시골집 벽장에 있던 태극무늬가 붙은 군모와 누런 군복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