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송원조 고수(鼓手)의 보비위(補脾胃)정신, 곧 소리꾼의 비위를 잘 맞추어 주는 고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다양한 양념이 들어 있지 않음에도 또 다른 맛의 묘미를 전해주는 경우와 비슷하다는 이야기, 그는 거의 원 박을 반복하다시피 치면서도 강과 약을 분명하게 조절해 주기 때문에 단순, 명료하면서도 다양한 표현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래서일 것이다. 송원조를 성공한 고수라고 평가하는 배경이라든가, 또는 송원조 자신이 지금까지도 절실하게 후진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말은 다름 아닌, 소리판의 성공적 비결은 첫째도 둘째도 ‘소리꾼의 기량’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가 주장하는 으뜸 명고수도 소리꾼으로 하여금 그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바로 이러한 마음가짐과 자세가 고법(鼓法)의 기본 정신이 되는 것이다. 서울시 고법의 예능보유자, 송원조의 고법에서 느낄 수 있는 단순함이라든가, 명료함, 또는 겸손함과 같은 덕목들은 바로 송원조 자신의 인격이어서 자신만의 특징을 여지없이 들어내고 있는 듯 보인다. 이 분야의 관계 전문가들은 그가 구사하는 단순한 가락들은 강약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동초제>란 판소리의 한 유파(流波)를 가리키는 말로, 김연수(1907~1974) 명창이 기존의 바탕 위에 새롭게 구성하였고, 그의 제자, 오정숙과 <동초제 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승됐다는 이야기와 20세기부터 판소리의 연극적인 특성이 <창극>의 공연양식으로 확산하기 시작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판소리는 1인의 북 반주에 맞추어 창자 혼자 부르던 성악(음악)곡이었다. 그러다가 연극적인 특성이 주목받으면서 2인의 대화(對話)창이나 3인 이상의 분창(分唱)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더 발전하여 오늘날과 같은 <창극>의 새로운 공연양식으로 크게 확산한 것이다. 이를 판소리의 발전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여하튼 창극의 공연 형태가 판소리의 발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판소리의 창극화가 판소리 확산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과정, 곧 판소리의 창극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소리꾼이 바로 <동초> 김연수 명창이다. 이번 주에는 동초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