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에서 2010년에 지구행복지수(HPI, Happy Planet Index)를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를 보면 부탄이 1위를 차지하였다. 대한민국은 68위, 미국은 114위로 발표되었다. 이 조사는 경제적 소득보다는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행복한가를 중요하게 평가하였기 때문에 부탄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2024년의 지구행복지수 조사에서는 한국은 76위, 부탄은 데이터 수집의 한계로 공식 순위에서 제외되었다. <표1> 우리나라의 국민소득과 지구행복지수 순위 변화 위 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은 2010년부터 14년 동안 크게 늘었지만, 지구행복지수는 오히려 추락하였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하락한 원인으로서는 과도한 경쟁과 외로움, 자살 증가가 지적되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율은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급증하여 2003년에 OECD 국가 가운데 자살율 제1위를 기록하였다. 자살률 세계 제1위라는 불명예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제13위의 경제 대국인 대한민국이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 슈마허(1911~1977)는 1934년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영국 정부의 경제고문으로 일하면서 복지 정책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1955년에 버마(현재의 미얀마) 정부의 경제자문관으로서 버마를 방문하였는데, 현지 불교도의 생활을 접하면서 감명을 받았다. 슈마허는 버마에서 관찰한 소박하고 자족적인 불교적 생활 방식이야말로 하나뿐인 지구에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지속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버마에서의 활동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1973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써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경제의 목적은 욕망을 부추겨 소비와 성장을 끝없이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규모의 소비 속에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개발도상국에는 거대하고 자본 집약적인 서구기술보다는 자원과 환경을 낭비하지 않는 중간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경제의 목적을 ‘성장’이 아닌 ‘인간 행복’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불교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부탄을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생각은 종종 엇갈린다. 많은 이들은 나라의 부유함, 기술 수준, 생활 환경 등을 기준 삼아 국가의 질을 판단한다. 세계에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가난과 결핍 속에 살아가는 나라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룩셈부르크나 스위스와 견주면, 아프리카 남수단이나 브룬디는 여전히 최빈국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체로 기반시설과 산업 경쟁력이 강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발전의 이면에는 환경 파괴, 자원 고갈, 사회적 갈등, 과도한 도시화와 소비문화와 같은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 빠른 속도의 개발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성과 자연, 공동체 정신을 잃게 만든 대가를 요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조용히 다른 길을 걸어온 나라가 있다. 바로 부탄이다. 부탄은 빠른 개발을 선택하지 않았다.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며 천천히 삶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 그들은 알고 있다. 빠른 개발이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부탄에서는 어느 곳을 가든 동물들이 풀을 뜯고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차가 씽씽 달리는 길가에서도 소와 말, 개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풀을 뜯고 있어, 처음 부탄을 찾은 이방인은 “잘못 교통사고가 나지나 않을까?” 하고 불안감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달랐다. 누구 하나 동물을 귀찮아하거나 밀어내려 하지 않으며, 도로에 동물이 들어오더라도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조심스레 피해 지나간다. 도시 한복판에서도 무리 지어 다니는 동물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길에 배설하거나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조차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다. 부탄에서는 동물 학대라는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라도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탄 사람들은 생명이면 그 무엇이든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살생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할 일이며, 자연스레 부탄에는 도축장이 없다. 식용 고기는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해마다 3~4월에는 육식을 금하는 기간이 정해져 식당과 식육점에서도 고기를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때때로 우리 생활 속에서 “혼줄 났다.”든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비난을 듣는 사람들을 본다. 이때 혼(魂)은 무엇이며, 정신(精神)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혼(魂)은 넋ㆍ영혼을 말하며, 정신은 ‘마음’ 또는 ‘얼’이라고도 하며 ‘영혼이라고도 하는데, 영혼(靈魂)은 별개로 죽은 사람의 넋이나 유혼(幽魂) 또는 혼령(魂靈)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영혼은 보이지 않는 개체 속에 하나의 존재로 등장한다. 그래 인간의 구조를 크게 둘로 나누면 유교나 무속 신앙에서 혼백(魂魄)이라 하여 혼(魂)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정신적 요소, 백(魄)은 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육체적 생명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와 반면 불교 유식학에서는 명색(名色)이라고 정의하는데 명(名, Nāma)은 정신적 요소, 감각ㆍ의식ㆍ지각을 말하고, 색(色, Rūpa)은 물질적 요소, 육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혼백과 명색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명(名)과 혼(魂)은 다음 생의 종자가 된다고 한다면 색(色)과 백(魄)은 지수화풍 사대로 결합 되었다가 다시 자연의 속성(屬性)인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고 하겠다. 이렇게 살펴보았을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보편적 경험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처럼, 태어난 모든 존재는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은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두려움과 의문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느 사회이든 장례 방식과 죽음에 대한 인식, 곧 생사관에는 고유한 역사와 종교, 철학, 그리고 생활 문화가 스며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는 곧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와 직결되어 있다. 동양권에서는 죽음을 또 다른 여정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와 장례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죽음은 단절이 아닌 조상 세계로 편입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는 제의(祭儀)와 의식을 통해 이어지고, 죽음은 곧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또 하나의 삶이다. 인도나 부탄과 같이 불교나 힌두교가 뿌리 깊은 사회에서는 윤회와 해탈 사상이 생사관의 중심을 이룬다. 장례는 단순히 육신과의 이별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의 이행을 돕는 종교적 의식으로 자리한다. 불전 독송, 탑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의 포화를 피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총성이 멎지 않고 있다.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끊임없는 비극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이 잔혹한 현실은 문명의 발전과는 별개로 되풀이됐다. 이 가운데 한국 또한 이 비극은 예외가 아니었다. 한반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전쟁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시작은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하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은 외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첫 번째 비극이자, 침략의 서막이었다. 이후 삼국시대에는 한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 이어졌고, 몽골의 침입과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나라의 존망을 뒤흔드는 대전란이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일본군을 물리쳤지만,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수많은 백성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병자호란에서는 청의 침공 앞에 치욕적인 항복을 겪으며 국가의 자존이 무너졌다. 이후 한일강제병합을 통해 국권을 잃은 35년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평화(平和)란 무엇일까?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극히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사전에는 평화를 일러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평화란, 어떤 존재든 마땅히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극히 신성하고 인류사회에 필요불가결(必要不可缺)한 지향점이며, 목적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렇지만 평화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평화는 진정 누가 만드는가?’라는 물음에는 모두 얼버무리고 만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평화란 의미를 맑은 생수와 같고, 청정한 공기와 같은 것이며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모습에서,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는 동물들을 비추어 보면서 마냥 평화를 동경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들은 평화를 끊임없이 갈망(渴望)하고 살고는 있지만 사실 진정 평화롭다고 확신하지 못하고 불안한 평화 속에 살고들 있다. “평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면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두 가지 축인 「평화의 근본이념(철학적ㆍ윤리적 기반)」과 「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며칠 뒤면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올해는 한가위 연휴가 길일뿐더러 중간 10일(금요일)에 연차를 내면 열흘을 쉴 수 있다고 좋아들 한다. 이렇게 연휴가 길다 보니 호기를 놓칠세라 모두 가방을 둘러메고 여행을 떠난다. 때를 맞이한 듯 여행업계는 호황을 맞이했고, 나라 밖 항공권은 이미 매진된 상태다. 국내 주요 관광지의 숙소 또한 방 잡기 어렵다. 사람들은 긴 연휴를 맞아 맛집 찾아 즐기고 여행할 꿈에 젖어 있다. 그런데 문득 질문이 생긴다. “한가위라는 명분 아래 나라가 국민에게 긴 휴일을 허락한 참뜻은 무엇일까?”, “단순한 휴식과 유흥에 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올 초 필자가 부탄의 전통 명절을 취재하던 중 한국의 전통 명절인 설과 한가위가 부탄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이번 한가위 명절을 기해 한국과 부탄 명절을 비교하면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부탄은 전통문화를 삶의 중심에 두고 오랜 세월 동안 소중히 지켜온 나라다. 특히 두메 마을에 가보면 수백 년 전의 환경과 정서가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유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이 근대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전통이 빠르게 약화한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새벽 세 시, 부탄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피곤에 지쳐 단잠에 빠져 있어야 할 몸은 오히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여니, 싸늘하면서도 맑은 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순간, 몇 시간 전까지 쌓였던 피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이 낯선 나라가 지닌 청정한 공기의 힘을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부탄에는 굴뚝이 없다. 공장을 세워 산업을 키우는 대신, 오염원을 아예 차단해 버렸다. 담배마저도 공기를 더럽힐 수 있다는 까닭으로 금지해 버린 나라. 청정 자연은 이 나라가 지켜온 ‘삶의 조건’이자 ‘국가의 철학’이다. 그러나 부탄에서 느낀 신선한 숨결을 떠올릴수록, 역설적으로 병들어가는 지구의 현실이 더 뚜렷하게 다가온다. 북극의 빙하는 녹고, 바다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기온은 산업화 이후 1.2도나 올랐고, 2도 선을 넘는 순간 식량 위기와 생태계 붕괴가 된다고 환경학자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폭염ㆍ산불ㆍ홍수ㆍ가뭄이 전 세계를 덮치고, 해마다 수많은 목숨이 자연재해라는 이름 아래 스러져 간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 불러온 ‘자업자득’의 결과다.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