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2011년 4월 1일 시작한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오늘(10월 8일)로 700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문화신문> 독자에게 쉬운 국악속풀이를 해주신 서한범 교수님께 <우리문화신문>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엎드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편집자 말)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가 이번 주로 700회를 맞는다. 그동안 우리음악 이야기에 관심을 보내주시고, 댓글도 달아 주신 <우리문화신문> 독자 제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쓴이가 지난 2년여, 601회~699회까지 소개한 이야기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었다. 지운하와 인천 남사당패 관련 이야기, 임방울 국악제와 2022년 대상을 받은 최잔디의 판소리 심청가 이야기, 고 백인영의 제자들이 올리는 10주기 추모제 관련 이야기, <춘천시립국악단>의 창단공연과 앞으로의 활동방향 이야기, 경기소리 과천대회 이야기, 경기 12잡가 중 어려운 노래, ‘적벽가’로 장원한 장은숙의 이야기, 고 성창순의 제자 어윤경이 스승을 기리며 부르는 ‘심청가’ 이야기, 조선 춤 방에서 만난 민천식의 ‘화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어진 음악으로 세상을 교화(敎化)한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 정농악회(正農樂會)라는 점, 원로들을 모시고 창립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재확인한 내용들이 훗날 후진 양성에 큰 경험과 교훈이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하였다. 지금도 초심자를 비롯해, 젊은 국악인들은 쉽고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는 음악이 바로 <정악(正樂)>이며, 대표적인 악곡이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평생을 걸고 연주해 온 원로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정농악회 창립 발표회를 함께 준비하면서 ‘영산회상’이란 음악을 바라보는 그분들의 시선이나, 음악적 태도가 어떠했는가, 하는 점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영산회상이란 어떤 음악인가? 이 악곡은 《대악후보(大樂後譜)》에 「영산회상불보살」 7글자를 노래하던 성악곡이었으나, 그 이후로 내려오며 가사를 잃고 기악곡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곡은 편성 악기에 따라 각각의 이름이 다르다. 현악기들이 중심이 되면 ‘현악영산회상’이 되는데, 현악기 가운데서도 거문고가 중심이 된다고 해서 ‘거문고회상’으로도 불린다. 이에 견줘 관악기를 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이 <해금>을 연주했다고 하는데, 혜강은 어떤 사람이고, 그가 연주했다고 하는 해금은 어떤 악기인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다. 현재까지도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악기, 해금은 중국을 통해 고려에 들어 온 이래, 궁중음악과 민속음악 전반, 그리고 근래에는 창작곡 연주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악기라는 점, 일정한 음자리가 없고, 연주자의 음감(音感)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음정 관계가 정확해야 한다는 점과, 연주법에 있어서는 줄을 당겨 연주하면서 다양한 농현(弄絃)이 일품이란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궁중음악 해금 연주자로서 유명했던 것과 겸해서 아쟁과 양금 연주자로도 유명했던, 아니 음악보다는 오히려 궁중정재(呈才)의 명인으로 더 많은 업적을 낸 김천흥 명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선생의 아호는 심소(心韶)였다. 심(心)이란 곧 마음이고, 소(韶)는 바로 요순시절의 음악을 뜻하는 말이니, 선생의 성품이나 음악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는 아호일 것이다. 심소 선생(아래 심소)은 1909년에 태어나 2007년에 영면하였으니 99살을 일기로 평생을 궁중음악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하였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데,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에도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통소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악(鄕樂)에도 쓰였으나 현재는 민간의 시나위나 산조, 탈놀음의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다. 통소는 취구(吹口, 나팔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 넣는 구멍)와 지공(指孔), 지공 중간에 청공(淸孔)이 있어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음색이 일품이란 점과 단소보다는 굵은 대나무로 만들어 다소 거칠면서도 힘찬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혜강이 연주했다는 <해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기로 한다. 해금을 연주했다는 혜강은 어떤 인물이며, 또한 그가 연주했다는 해금(奚琴)은 어떤 악기인가? 혜강은 중국 진나라 사람이다. 중국의 위와 진나라의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는 정치권력의 부패가 극심했던 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의 금(琴)과 슬(瑟)처럼, 한국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대표적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는 북방, 가야금은 남방의 가야국에서 연주되어 오던 악기라는 점,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사대부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는 점, 두 악기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나 줄의 수, 연주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 신라의 진흥왕이 신하들에게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 가야가 망했단 말인가!”라며 설득한 것은 훌륭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수궁풍류에 나오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는 장자방이 한(漢)나라의 유방을 도와 초(楚)나라를 칠 때의 이야기로,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중국에 금(琴)과 슬(瑟)이 있다면, 한국에는 고구려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거문고와 가야국으로부터 연주되어 온 가야금이 있다. 흔히 하는 말로, 부부(夫婦)지간의 정이 돈독할 때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을 한다. ‘금실이 좋다.’ 또는 ‘금실 좋은 부부’라는 말은, 금이라는 악기와 슬이라는 악기의 어울림이 그만큼 조화롭다는 뜻이다. 거문고와 가야금의 조화를 뜻하는 말로도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규방(閨房) 여인들의 손끝에서 가야금의 가락들이 이어져 왔다면, 거문고의 주된 향수층은 남성들이었고, 남성 가운데서도 사대부들이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 예로부터 선비란, 좌서우금(左書右琴)이라고 해서 책과 금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했다. 곧 왼손에는 책,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는 말이니, 곧 선비는 책으로 지식을 얻고, 거문고로 마음을 닦는다는 말이 되겠다. 그래서일까? 거문고만큼 상류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에서 애호를 받아 온 악기도 드물다. 17세기 초, 양덕수(梁德壽)가 펴낸 《양금신보(梁琴新譜)》에는 거문고가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라는 점, 그래서 군자의 악기인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長)으로 보고 있다. 거문고나 가야금의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국립국악원》의 기획공연에서 황해도 지역, 민천식의 춤 방에서 전래해 오던 춤들이 현대에 와서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민천식(閔千植, 1898∼1967)은 어린 시절부터 탈춤, 특히 봉산탈춤을 배웠으며, 월남 이후에는 <아악부(雅樂部)>에 다니며 궁중무용의 강습 과정을 수료하였다는 점, ‘화관무(花冠舞)’, ‘기본 춤’, ‘수건춤’ 등이 그의 대표적인 춤이란 점, 그는 봉산(鳳山)탈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당시, 김진옥(金辰玉) 등과 함께 고증자로 활동하였다는 점을 말했다. 또 이 탈춤은 20세기 초, 이춘강ㆍ임재현ㆍ정순조ㆍ김봉학 등으로부터 1930년대에는 이동벽ㆍ김경석 등에게, 월남한 뒤에는 김진옥ㆍ민천식ㆍ이근성ㆍ이용익ㆍ양소운 등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수건춤’은 ‘손목 사위’, ‘수건 뿌림’, ‘발놀림’이 독특하다는 점이며, ‘기본 춤’은 타령 춤의 양식을 굿거리 음악에 입혀 재구성하였다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화관무(花冠舞)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화관무란 글자의 뜻, 그대로 꽃으로 만든 화려한 관을 쓰고, 추는 춤이라고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와 관우의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처절하게 펼쳐졌다는 이야기, 조조와 그의 모든 장졸들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앙천(仰天) 통곡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관공의 어진 마음, 조조를 쾌히 놓아주고, 돌아와 공명께 법대로 처벌하기를 요청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공명이 내려와 관우의 손을 잡고 회답하기를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라고 답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판소리 <적벽가>의 주요 대목은 이제까지 소개한 바와 같이 조조와 관우가 만나게 된 화용도 대목을 비롯하여 ‘삼고초려’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타령’, 적벽강 싸움‘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유파에 따라서는 조금씩 들쑥날쑥하여 일정하지 않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은 글자 그대로 풀밭 속의 오두막집을 세 번째 돌아본다는 뜻으로 숨어 사는 현명한 사람을 임금이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만난다는 말이다. 임금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만들 위인을 얻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는 말이다. 이 대목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정선아리랑>은 강원도의 대표적인 소리이다. 1971년,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그 고장 사람들은 ‘아라리’, 또는 ‘아라리 타령’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비 기능요이지만, 모심기하거나, 논밭에서 일할 때, 노동요로도 부르고 있다. 이 노래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폭넓게 불리고 있어서 이 지역을 아라리권역, 또는 메나리권이라고 부르고 있다. 본디 ‘메나리’라는 말은 ‘뫼놀이’, 또는 ‘뫼노리’의 변화형이다. ‘뫼놀이’는 ‘산에서 놀이하는’ 곧 유산(遊山)의 뜻이므로 산간 지역의 소리조라는 뜻이 강하다. 서울의 12좌창 가운데 첫 번째 곡이 바로 ‘유산가’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메나리권이라 함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강원도 지역으로부터 그 아래의 충청 일부 지역을 포함, 경상도 지역의 음악적 특징을 뜻하는 음악적 사투리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악지대는 교통의 발달이나 문화의 지체 현상이 심각하였으며 지역의 언어가 서로 소통치 못함에 따라 전통적인 민속의 노래도 각 지역, 또는 지방마다 서로 다른 특징적인 어법(語法)을 지닌 채, 전해 왔다. 우리나라의 민요 권역은 강원지역을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