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틀 뒤 K 교수는 야간 강의가 끝난 뒤에 미녀식당을 방문하였다. 미녀식당은 점심시간에는 붐벼도 막상 저녁 시간에는 손님이 별로 없다. 미스 K를 보려고 점심시간에는 S대 교수들이 많이 오지만 저녁 5시만 되면 교수들은 서울에 있는 집에 가기에 바쁘다. 저녁 8시가 넘으면 미녀식당은 대체로 한산하다. 미녀식당에서는 간단한 차와 음류수를 팔지만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서는 적당하지 않다. 야간 강의가 끝나면 9시 30분쯤 되고, K 교수가 그 시간에 방문하면 대개는 미스 K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빈 식당을 지키고 있다. 그날도 K 교수가 방문하자 미스 K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스파게티 팔아서 부자가 되려면 아무래도 식당을 알리는 광고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좋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네요.” “그래서 이왕 제가 미녀식당의 홍보이사를 맡았기 때문에 그동안 열심히 정보를 수집하였습니다.” “무슨 정보를요?” 학교 후문으로 나오면 슈퍼가 하나 있고, 그 앞에 주간 광고신문인 ‘벼룩시장’이 무인 전시대에 진열되어 있다. 아무나 필요한 사람은 가져가면 된다. 거기에는 구직광고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프랑스의 천문학자 마랑(Mairan)은 18세기 초에 미모사(콩과의 한해살이풀)를 키우다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창가에 둔 미모사가 늘 같은 시간에 태양을 향해 잎을 여는 것이었다. 빛의 영향일까? 마랑은 미모사를 캄캄한 방안에 갖다 놓았지만, 여전히 미모사는 아침마다 잎을 열고 저녁에는 닫았다. 그는 1729년에 파리 과학아카데미에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처럼 식물도 밤낮을 느끼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것 같다.” 마랑의 생체시계 발견은 다른 식물에서도 관찰되었고, 동물에서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연구되었다. 인간의 몸에도 생체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에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시도한 실험을 통해서였다. 사람을 어두운 지하 창고에 살게 하고 행동을 조사한 결과, 밤낮을 모르는데도 거의 24시간 간격으로 잠을 자고 깨어나기를 반복한 것이다. 외부 빛과 상관없이 우리 몸에서는 자발적으로 생체시계가 작동해 우리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두 눈의 뒤쪽 뇌 가운데에 자리 잡은 시신경 ‘교차상핵(SCN)’이라 불리는 곳에 있다. 생체시계는 약 2만 개의 신경세포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날 오후, 강의 시간이 비는 틈을 타서 K 교수는 학교에서 가까운 봉담읍 장터에 나갔다. 모종과 묘목을 파는 가게에 가서 3,000원 주고 조롱박 모종을 3개 샀다. 모종을 차에 싣고 미녀식당으로 갔다. 마침 미스 K가 자리에 있었다. K 교수는 모종을 얼른 내려놓고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서 차도 마시지 않고 식당을 나왔다. 미스 K가 문밖에까지 따라 나오며 정(情)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롱박을 잘 키우겠습니다. K 교수님, 정말 고마워요.” 계절은 이제 늦봄이 지나고 있었다. 미녀 식당의 베란다 밖으로 보이던 화려했던 봄꽃은 어느새 다 지고 이제는 잎이 무성해졌다. 개나리, 목련, 수수꽃다리, 장미에 이어서 향기가 진한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아카시아꽃은 꿀이 많아서 양봉업자들이 소중히 여기는 꽃이다. 아카시아꽃이 질 무렵이면 봄도 물러난다고 볼 수 있다. 며칠 뒤, K 교수는 공과대학의 나 교수와 점심시간에 미녀식당에 갔다. 나 교수 역시 미스 K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을 K 교수는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마도 나 교수가 경쟁이 될지도 몰라. 나 교수는 서울 출신이어서 그런지 시골 출신인 K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K 교수는 분명히 들었다. 미스 K는 이번에는 ‘아저씨’ 대신에 ‘그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미스 K는 남편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거나, 별거 단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었다. 앞으로 K 교수가 미스 K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암시를 주는 바가 크다. 간단히 말해서 K 교수가 미스 K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언젠가 데이트는 물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더라도 유부녀가 아니므로 위험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 물론 아내를 속이는 일은 미안하지만, 상대가 유부녀는 아니므로 저쪽 남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로맨스(나쁘게 말하면 불륜)에 대한 위험 부담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서 K 교수는 매우 고무된 기분이었다. 며칠 뒤, K 교수는 신문을 읽다가 경기도 이천군에서 도자기 축제가 열린다고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해마다 열리는 도자기 축제인데, 올해에는 특히 세계 각국의 도자기를 모아 대규모로 전시회를 한단다. K 교수는 기사를 읽고서 멋진 계책을 생각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음 일요일 K 교수는 친구들과 K리조트에서 골프를 쳤다. K 교수는 작년에야 겨우 골프를 시작해서 아직은 108타 수준이었다. 골프라는 것이 쉽게 실력이 느는 운동이 아니다. 또 골프는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주 필드에 나가기도 어렵다. 욕심 같아서는 보기 플레이(90타)를 목표로 열심히 하고 싶지만, 재력이 따라주지를 않았다. 대학 동창들과 즐겁게 5시간을 보낸 후 K 교수는 호기심에 찬 친구들과 미녀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이 닫혀 있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K 교수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예약했는데….”라고 소리쳤지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일행은 할 수 없이 미녀식당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날 친구들은 K 교수를 한껏 놀려댔다. 여자에게서 바람맞는 것이 대학 다닐 때부터 너의 주특기였다고. K 교수는 놀리는 친구들에게 대항하지 못하였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할 뿐이었다. 이틀 뒤 화요일, 야간수업이 끝난 후에 K 교수는 미녀식당에 갔다. 마침,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미스 K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가 일어서더니 정중하게 사과부터 한다. 일요일에 약속을 못 지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마침, 손님은 하나도 없고, 미스 K 혼자서 빈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알바생은 이미 퇴근했다. 혼자서 심심하던 차에 K 교수가 방문하니 미스 K는 반갑게 맞아준다. 손님이 없더라도 12시가 넘어서 식당 문을 닫는다고 한다. 미스 K의 숙소인 K리조트는 식당에서 3분 이내 거리에 있다. 이해가 된다. K리조트 방에 가봐야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썰렁할 것이다. 차라리 식당에서 마무리 일을 하면서 음악이라도 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K 교수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을 알아채고서 미스 K가 묻는다. “술 드셨어요?” “네, 서울에서 열린학회 모임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1차로 저녁식사, 2차는 맥주, 3차는 노래방 가서 최신곡을 세 곡이나 불렀답니다.” “운전은 어떻게 하셨어요?” “나는 모범생이잖아요. 모범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택시를 1시간 동안 문밖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택시를 돌려 보내세요. 이따가 제 차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러지요 뭐. 잘 되었네요. 오늘은 일진이 좋은 날인가 봐요.” K 교수는 택시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체육대학의 가 교수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미녀식당으로 갔다. 가 교수는 축구해설가로 널리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축구에도 관심이 많은 재단이사장이 다른 대학에서 스카우트 해 온 가 교수는 축구 선수 출신의 유명한 해설가였다. 그런데 체육대학에는 아직 미스 K의 소문이 알려지지 않았나 보다. 가 교수는 미스 K를 보자마자 “대단한 미인이십니다”라고 면전에서 칭찬의 말을 했다. K 교수가 “사장님은 실제로 1978년 미스 코리아 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가 교수는 깜짝 놀라면서 “아, 그래요? 그러면 아마도 40대 아닌가요? 저는 20대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남자들이 잘하는 뻔한 거짓말을 했다. 그날은 손님이 많아서 미스 K가 합석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가 교수는 미스 K를 바라볼 수 있었으니 여복이 조금은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안식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가 교수는 학교에 온 지 6년이 되지 않는데도 작년에 안식년을 6개월 갔다 왔다고 한다. 안식년이란 지적 노동을 하는 교수들이 6년 동안 근무하고 재충전을 위해 1년간 쉬는 제도이다. 그러나 S대학 총장은 안식년을 교수들에게 주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내가 시라큐스에서 배거로 일할 때 재미있는 일을 겪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던 아가씨 중에 슈(Sue)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미국 여자들은 슈라는 이름이 많던데요. 정식 이름은 수산나인데 그냥 슈라고 줄여서 부르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아마도 그날이 추수감사절이었을 거에요.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잖아요. 추수감사절이 되면 학교 기숙사도 문을 닫고, 모두 고향으로 갑니다. 그날 밤은 손님이 없어 한가했습니다. 그래서 슈에게 물었지요. 너는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안 간다는 것이에요. 은정 씨도 잘 알겠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아마 멀어서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시러큐스라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나는 근처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러큐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친구도 만나게 되고 애인도 생기게 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을 1주일 앞둔 1987년 12월 10일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새만금 사업 기공식은 1991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완공 목표연도는 2004년이었다. 기공식 연설문 일부를 인용한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이곳 변산반도와 저 바다 한가운데 고군산군도, 그리고 군산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쌓고 그 안의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강화도만큼 큰 새 국토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정부는 총 1조 3,000억 원을 들여 1998년까지 33km의 방조제 건설과 외곽 공사를 끝내고, 이어서 1억 2,000만 평에 이르는 방조제 안쪽의 개발사업을 2004년까지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1998년까지 끝내겠다는 방조제 공사는 12년이 지연되어 2010년에 완공되었다. 2004년까지 끝날 것이라던 내부 개발사업은 2025년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새만금 사업이 끝나면 지역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 부자 전북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북도민은 오랫동안 전라북도에 국제공항을 가지는 것이 숙원이었다. 김대중 정권 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경영 이야기가 나오니 미스 K가 할 말이 많아졌다. 미스 K는 스파게티 식당을 열기 전에 잡지사에 근무했었고 한 때는 영화 회사를 운영하다 망한 적도 있었단다.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일하다가 극단을 만들어 운영해 본 경험도 있고. 이 일 저 일을 하다 보니 그녀는 나름대로 경영에 대해서 일가견이 생겼단다. K 교수가 “훌륭한 경영자의 특징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니 “자기가 데리고 있는 모든 사람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미국 유학 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K 교수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1979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기 3달 전에 미국 뉴욕주에 있는 시러큐스(Syracuse)라는 작은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시러큐스는 이탈리아 이민들이 개척한 도시인데, 마피아로 유명한 시실리섬에 있는 시라쿠사라는 항구도시와 지형이 비슷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인구는 25만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남들은 대학 졸업을 하고 바로 유학을 가는데, 나는 졸업한 뒤 학군단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5년 동안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 나이 30살이 다 되어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