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퇴계 이황 선생은 그 학문의 깊이에 비하여 여복이 참으로 없었던 사람입니다. 첫째 부인은 21살에 얻은 김해 허씨인데 27살에 병으로 사별합니다. 퇴계가 30살이 될 무렵, 퇴계가 사는 안동으로 문신 권질(權礩)이 유배되어 옵니다. 홀로 사는 퇴계에게 그는 이런 부탁을 하지요. “자네 말일세. 나한테 딸아이가 하나 있네. 그 애가 본디는 괜찮았으나, 사화(士禍)로 인해 정신 줄을 놓아 좀 부족한 아이일세 가장 믿을 만한 이는 자네뿐이니, 제발 거두어 주게.” 그리하여 퇴계는 좀 모자란 권 씨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어느 날 퇴계는 할아버지의 제사를 치르기 위해 큰형님 집으로 갑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데 갑자기 배 하나가 방바닥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퇴계의 부인 권 씨가 떨어진 배를 얼른 치마 속에 감춥니다. 권 씨는 큰 동서에게 혼나지만, 퇴계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퇴계는 부인 권 씨를 불러 "왜 그러셨소."라고 묻습니다. "먹고 싶어서요." 조선 예법의 대가였지만 퇴계는 배를 손수 깎아 부인에게 먹여 주었다고 합니다. 또 하루는 권 씨가 흰 두루마기를 다림질하다가 조금 태우고서는, 하필 붉은 옷감을 대고 기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소나기 내리는 날 예쁜 여학생이 책을 가슴에 품고 비를 피해 도서관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몸은 젖었고 마스카라는 번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때 초로의 교수가 묻습니다. "자네 괜찮나?" "네. 몸이 젖고 화장이 번지긴 했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자네 말고 자네 책 말일세…." 공자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마구간에서 큰불이 났습니다. 이때 하인이 들어와 말하지요. "큰일 났습니다. 마구간에 큰불이 났습니다." 그때 공자님은 묻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는가?" 마구간의 불 소식을 듣고 말의 안부가 아니라 사람의 안부를 묻는 공자의 모습을 봅니다. 책의 안부를 묻는 교수와 대조적이지요. 판단의 기준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린 인본주의라고 이야기하지요. 옛날 종교가 중요한 잣대로 세상을 지배했을 때를 신본주의라고 한다면 지금 물질 만능을 구가하는 시대를 물본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린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인간에 관한 것을 가장 중히 여기는 인본주의로의 회귀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는 이러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또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