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상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出家)라 한다. 그리움도 버리고 인연도 끊었기에 출가한 줄 알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온통 세상사이거늘 어쩔 것인가. 이슥토록 기울이는 술잔 위로 학조차 비껴가는구나! <상선약수> 소책자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온통 고통스럽고 복잡한 세상에 이슥토록 기울이는 술잔 위로 학조차 비껴간단다. 또 “한국춤의 특성으로 꼽히는 멋과 한과 흥의 결정체가 ‘한량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춤의 근원은 불가에서 말하는 방하착의 수행과 맞닿아 있다. 마음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슬픔과 즐거움, 인생의 무상과 유상, 흥취와 정취가 유발된다. 그뿐만 아니라 죄고 푸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 유장하게 이어지는 무기교의 기교 또한 독보적이다. 이러한 한량춤은 원래 남녀의 구별이 없었으나 이제는 장부의 기백과 풍류를 대표하는 남성춤으로 거듭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제 ‘한량무’는 장부의 기백과 풍류를 대표하는 남성춤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장부의 춤이다. 무대에는 그동안 여성 춤꾼들이 장악했던 한국춤의 모습을 떠나 남성 춤꾼들도 ‘술잔을 피해가는 학(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너도 먹고 물러나라. 너도 먹고 물러나라” 소리꾼과 연희패가 연신 외쳐댄다. 악귀를 쫓아내는 ‘나례(儺禮)’ 의식이다. 어제 12월 27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2023 국립국악원 송년공연 <나례(儺禮), 훠어이 물렀거라>가 열렸다. 무대에 오른 사람만 해도 국립국악원 정악단, 무용단, 민속악단 등 200여 명이나 되는 거대한 공연이다. 나례는 궁중과 관아, 민간에서 행해 온 섣달 그믐밤 사악한 악귀를 물리치고, 태평스러운 새해를 기원하는 종교의식이 예술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 첫 문헌 기록은 약 천 년 전의 《고려사》에 있으나 처용무를 생각하면 신라 때부터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나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잡귀와 역병을 쫓아내는 엄숙한 구나의식으로부터 가무와 오락이 주를 이루는 활기찬 잡희로 점차 변화, 발전해 왔다. 그래서 나례를 나의(儺儀), 나희(儺戱)라고도 한다. 공연은 고천지(告天地) 곧 ‘나래의 시작을 천지에 고하다’로 시작된다. 섣달 그믐밤 창덕궁에 어둠이 내리고 전각마다 촛불이, 궐문마다 횃불이 켜짐을 샤막(망사천을 써서 뒤가 살짝 비치게 하는 막)으로 보여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황금빛 탈을 쓴 그 사람 방울 채찍 손에 들고 귀신 부리네. 빨리 뛰다가 천천히 걸으며 추는 춤은 봉황이 너울너울 나는 듯하구나. 9세기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대면(代面)>이라는 시입니다. 특정한 인물이나 동물을 형상화한 탈 곧 가면을 쓰고 나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전통연극을 우리는 탈놀이, 탈춤, 탈놀음이라고 부르는데 처용무, 북청사자놀음, 은율탈춤, 오광대놀이, 송파(양주, 퇴계원)산대놀이, 하회별신굿탈놀이 따위가 있습니다. 위 최치원의 시로 미루어 보면 이미 신라시대에 탈놀이를 즐겼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그 이전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에서 나온 조개탈과 강원도 양구에서 출토된 흙으로 빚은 탈이 있고, 고구려 안악 3호 무덤 벽화에도 탈춤 추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탈놀이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된 듯합니다. 다만 신라 때의 처용무처럼 오래전의 탈놀이는 주로 귀신을 쫓기 위한 것이었지만 조선시대 이후 전승된 탈놀이들은 “탈 잡는 일”을 하는 것들입니다. 백성은 지배층인 양반들에게 탈 잡을 일이 많았지만 대놓고 탈을 잡으면 바로 보복 곧 “뒤탈”을 당할 것이기에 탈을 써서 지배층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바람이 오면 - 도종환 바람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그리움이 오면 오는 대로 두었다가 가게 하세요 아픔도 오겠지요 머물러 살겠지요 살다간 가겠지요 세월도 그렇게 왔다간 갈 거예요 가도록 그냥 두세요 “동경 발간다래 / 새도록 노니다가 / 드러 내 자리랄 보니 / 가라리 네히로섀라 / 아으 둘흔 내 해어니와 / 둘흔 뉘 해어니오” 이는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나오는 것으로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8구체 향가 <처용가(處容歌)>다. 설화에서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疫神)이 흠모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의 집에 가서 몰래 같이 잤다. 처용이 밖에서 돌아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 그러자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드러내지 않으니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맹세코 지금 이후부터는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이로 인하여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