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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새로운 ‘한량무’ 관객들의 큰 손뼉을 받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정기공연 <상선약수>, 법고창신 경지 펼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세상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出家)라 한다.

그리움도 버리고 인연도 끊었기에 출가한 줄 알았다.

하지만 보이는 게 온통 세상사이거늘 어쩔 것인가.

이슥토록 기울이는 술잔 위로 학조차 비껴가는구나!

 

<상선약수> 소책자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온통 고통스럽고 복잡한 세상에 이슥토록 기울이는 술잔 위로 학조차 비껴간단다.

 

“한국춤의 특성으로 꼽히는 멋과 한과 흥의 결정체가 ‘한량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춤의 근원은 불가에서 말하는 방하착의 수행과 맞닿아 있다. 마음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슬픔과 즐거움, 인생의 무상과 유상, 흥취와 정취가 유발된다. 그뿐만 아니라 죄고 푸는 긴장과 이완의 연속이 유장하게 이어지는 무기교의 기교 또한 독보적이다. 이러한 한량춤은 원래 남녀의 구별이 없었으나 이제는 장부의 기백과 풍류를 대표하는 남성춤으로 거듭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제 ‘한량무’는 장부의 기백과 풍류를 대표하는 남성춤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장부의 춤이다. 무대에는 그동안 여성 춤꾼들이 장악했던 한국춤의 모습을 떠나 남성 춤꾼들도 ‘술잔을 피해가는 학(鶴)’이란 이름으로 기백과 풍류를 뽐내면서 온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리 요란한 몸짓이 아니면서도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춤이 절정에 오를 때 모든 춤꾼이 도포를 한껏 펼치고 한걸음에 무대 맨 앞까지 도열한다. 여태껏 숨을 죽이고 있던 관객들은 순간 우레와 같은 손뼉을 치고 있다.

 

어제 6월 27일(목요일) 저녁 7시 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예술감독 김충한)의 정기공연 <상선약수(上善若水)>가 펼쳐졌다. 객석은 이미 예약 단계에서 차버렸고 젊은 관객들부터 나이 든 관객까지 공연 시작 전 부터  공연장 열기는 후끈달아 올랐다. 

 

국립국악원 말한다. “시간의 웅덩이에 춤이 고였다. 익히고 배우고 반복하고 답습하며 시간은 흐르고 춤은 무르익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웅덩이를 다 채운 물은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상선약수>는 한국 민속춤의 원초적 생명력을 다시 되새겨보는 작업이다. 춤추는 사람에 고여 흘러넘치는 스스로 감흥과 시대 정서에 집중하여 새로운 한국 민속춤의 지류(流)를 탐색한다.”

 

 

 

이런 것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하던가? 그동안 우리는 무대에서 승무, 살풀이, 태평무, 한랑무, 처용무, 장구춤 등 한국춤을 보고 또 보아 왔다. 그것은 그 자체로 기가 막힌 춤이었고, 그 춤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김충한 감독은 거기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민속춤의 대표 종목들을 문화재 또는 유파의 틀에 가두지 않고 해체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시대 감성을 불어넣었다. 특히 그간 민속춤의 원형을 그대로 선보였던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민속춤에 변화를 모색해 정기공연으로 선보인 것이다. 김 예술감독은 이를 위해 새로운 춤 이름을 짓고, 음악과 의상도 변화를 주었다. 이에 더해 다양한 공연의 음악감독으로 폭넓은 활동 중인 김태근 작곡가와 국악 작곡과 지휘, 타악연주자로 활동하며 국악의 깊이를 더한 이경섭 작곡자가 이번 공연에 참여해 음악을 새롭게 작ㆍ편곡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 눈에 띄는 것은 태평무ㆍ승무ㆍ살풀이 등 주로 독무로 공연되는 민속춤들이 이번 공연에서는 모두 군무로 구성되었음이다. 민속춤의 본질은 ‘함께하는 것’이라는 데 주목했다고 국립국악원은 설명한다. 기존에 독무로 익숙한 춤들이 군무로 탄생하면서 무용수들 사이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움직임과 조화로운 모습들은 그야말로 관객들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지난 5월 27일 이애주한국전통춤회의 ‘법열곡(法悅曲)’ 공연에서 독무가 아닌 7인 군무의 승무를 보고 감격스러워했던 것이 이제 국립국악원 무용단 7인의 춤꾼이 함께하는 승무를 보면서 우리의 민속춤이 독무가 아니라 군무로도 뛰어난 것임을 확인해 주었다.

 

 

 

한국 전통춤 중에서 정신적 수련 과정을 가장 요구하는 춤이 바로 승무라고 한다. 그만큼 승무는 춤의 사상을 가장 빈번하게 논의케 하는 춤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항상 천(天)ㆍ지(地)ㆍ인(人)의 합일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 악(樂)ㆍ가(歌)ㆍ무(舞)라고 하는 무용수와 음악의 조화로 귀결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현대의 승무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일상을 살아 나가는 개개인 모두의 내면적 그리움에 대한 성찰임을 공연에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하나 관객의 눈을 꼼짝 못 하게 한 것은 ‘처용무’를 새롭게 추는 ‘또 다른 나를 찾아서’였다. 탈춤은 구성 형식이나 춤사위의 표현성이 다양하고 활발하여 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날의 처용무는 지금까지의 처용무가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용무의 특징은 자기의 아내를 범하려는 역신을 분노가 아닌 풍류와 해학으로 쫓아낸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기괴스러운 음악을 바탕으로 처용무를 추는 춤꾼들이 역신들을 매섭게 몰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국악원 무용단의 처용무도 이렇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선약수 (上善若水)>, 노자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서 이르는 말이다. 여기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상선약수> 공연은 한국 민속춤의 원초적 생명력을 다시 되새겨보는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다. 우리의 훌륭한 전통예술, <상선약수>처럼 ‘법고창신(法古創新)’ 작업을 부지런히 해야만 더욱 셰게적인 예술로 거듭날 것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