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0월 9일은 578돌 한글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종임금이 만든 훈민정음이 조선시대 내내 ‘언문’이라 하여 푸대접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금이나 왕비 등이 한글 편지를 썼음은 물론 교지도 한글로 써서 사실상 한글은 많은 이가 쓰는 글자였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인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선조임금은 공식 문서인 교지에 언문을 썼지요. 교지를 쓴 때는 왜군이 7백여 척의 배를 앞세워 부산포로 쳐들어와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던 조선은 왜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속속들이 관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선조는 탄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실록》 25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로 방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민간을 알아듣게 타이르도록 하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한문이 아닌 언서(한글)로 교지를 내린 까닭은 백성과의 원활한 사맛(의사소통)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는 또한 임진왜란 당시 백성의 상당수가 언문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2022년 보물로 지정된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 한글박물관 소장)》은 정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이 말은 말이 겨레의 정체성이요, 독립 번영의 연장이라는 뜻으로 110년 전인 1914년 오늘(7월 27일) 세상을 뜨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이 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주시경 선생은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겨레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큰 힘이라고 믿었던 분입니다. 한힌샘 주시경 선생은 당시 유일하게 한글을 가르친 교육자로 “주보따리”란 별명처럼 커다란 책보를 끼고 동분서주했지요. 선생은 언제나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었는데 한복 속에 우리 겨레의 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을 언문(諺文), 가갸글, 조선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997년에 유네스코에 첫 번째로 오른 대한민국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을 해설한 책, 세종이 1446년에 8명의 신하들과 함께 펴낸 책, 15세기로 보아도 지금으로 보아도 최고의 사상과 학문을 담은 책. 현대 음성학과 문자학 그 이상의 값어치를 담은 책. 33장 66쪽으로 이루어진 책. 한글날의 기원이 된 책. 전 세계 이름난 문자학자나 문자 전문가들이 격찬하는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 얽힌 내용을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이야기로 풀어낸 책.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흔히 《훈민정음해례본》이라고 표기하지만, 실제 책 제목은 ‘훈민정음’이므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이 표기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책을 우리나라 그 많은 국어국문과와 국어교육과에서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하게 가르치는 곳이 거의 없다면 상상이 될까? 불행하게도 이는 사실이다. 도대체 인류 문명의 틀을 바꾼 책을 옆에 두고도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는 나라가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물론 이 책은 국어 전문가들한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문자학, 음성학, 철학, 과학, 음악, 수학 등 다양한 학문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세종을 도와 세종르네상스를 만든 인물(집단)을 살피고 있다. 집현전과 집단 지성② 세종 시대 이루어진 연구 집단으로 한국 첫 ‘집단지성’이라 할 집현전이 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集團知性]이란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집단적 능력을 일컫는 용어다. 이는 개체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전회에 이어 집단 지성으로서의 집현전의 몇 활동을 이어가 보자. (영돈녕 유정현이 사직하고자 청했으나 허락하지 아니하다.) 유정현이 사직하는 글을 올려 아뢰기를, “신이 용렬한 자격으로 오랫동안 높은 벼슬을 더럽히고, 많고 후한 녹을 받으면서 처리하고 다스리는데 보람이나 효과가 조금도 없고 오히려 가물의 재앙을 부르게 되었나이다. 신은 나이 7순이 넘어 여러 가지 병이 몸에 얽혀서 기거하기도 불편하오니, 비옵건대, 신의 관직을 파면하시어 어질고 능한 이를 기다리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직집현전(直集賢殿) 정인지(鄭麟趾)를 시켜 정현의 집에 가서 사표를 도로 주고, 말하기를, " ... 경은 사양하지마는, 나는 늙지 않았다고 생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세계 으뜸 글자의 부끄러운 성적 우리는 한글이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울 뿐 아니라 어떤 언어의 발음이라도 표기할 수 있는 세계 으뜸 글자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정인지도 훈민정음으로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도 표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글은 정말 다른 문자들이 따라 올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세계 으뜸 글자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일본사람들과 함께 세계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민족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것이 한글의 표기 기능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fan을 우리는 ‘팬’이라 하고 일본사람들은 ‘후앙’이라고 하니 외국인들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발음이 몇 개 더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나라 밖에 나가면 입을 열지 못하고 맙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을 나오고도 미국이나 호주처럼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살게 될 때 말이 안 통해 노동일이나 말이 별로 필요 없는 서비스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를 누구에게 호소해야 합니까? 개인 당사자의 복지 문제를 넘어 국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우리는 매일 한글의 덕을 보며 살고 있습니다. 참 좋은 글자구나 하고 느끼고 이에 대한 자부심도 큽니다. 그러나 혹 외국인이라도 만나면 한글을 누가 어떻게 해서 만들었는지, 글자로서 어떤 좋은 점이 있는지, 소리를 표기하는 원리는 무엇인지 등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직접 서문을 쓴 《훈민정음해례》라는 책이 있어 이런 문제가 없는데 한글에 관해서는 마땅한 책도 없습니다. 앞에서 인류가 5,500년 동안 문자를 어떻게 발전시켜 왔는지를 보았는데 이 글에서는 우리 조상들이 어떤 문자생활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훌륭한 훈민정음을 갖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2만 년 전에 정점을 찍고 그 뒤 1만 년 동안 온도가 차차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인류는 해를 쫓아 따뜻한 동쪽으로 이동하여 결국 한반도에 정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로 북쪽의 중앙아시아와 남쪽의 인도 남부로부터 왔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1만 년이 넘는 이 긴 세월을 더 이상 큰 이동 없이 한반도와 인근에서 농사나 수렵으로 살면서 하나의 문화권을 이루어 살아 온 것입니다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앞으로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어싣기(연재)하려 하는 신부용입니다. 왜 한글이야기를 하면서 공학박사를 내세우냐고 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에 가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았습니다. 80년 말에 KIST에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교통연구원을 만들고 원장을 지냈습니다. 당연히 한글이나 언어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있다면 중고등학교 국어교실에서 배운 것, 그리고 궁금한 점을 인터넷 검색이나 공개 세미나에 가서 얻은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하겠지만 제 한글이야기는 강단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분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을 전달하려 하기보다는 의문점을 제시하고 토론을 유도하여 함께 해답에 도달하도록 해 볼 것입니다. 물론 정확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소득도 중요하리라 기대합니다. (글쓴이 말) 첫 번째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과연 한글이 세계 으뜸 문자인지입니다. 누구든 한글을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다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우리는 최만리를 비롯한 대다수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을 창제했어도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훈민정음이 언문이라며 외면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문헌을 보면 임금부터 왕실 어른들은 한글로 편지를 썼음을 알 수 있지요. 또 이렇게 왕실이 한글편지를 썼다면 사대부 벼슬아치들도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정조임금은 어렸을 때부터 한글을 썼던 임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정조가 만 3~4살부터 46살 때인 정조 22년(1798년)까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驪興閔氏)에게 보낸 한글편지 16점을 모아 묵은 편지첩 《정조국문어필첩(正祖國文御筆帖)》이 그 확실한 증거입니다. 《정조국문어필첩》에 보면 5~6살 무렵 쓴 한글편지의 내용에 “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기를 바라오며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도 그리워하였사온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사오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시오니 기쁘옵나이다. 원손”이라고 되어 있어 어린 정조의 의젓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에겐 선조가 옹주에게 보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 월요일은 휴일이었다. 주초부터 휴일? 그것은 하루 전 일요일이 한글날 공휴일이었는데 일요일로 쉬지 못하니 대체해서 휴일을 하나 더 내주었기에 휴일이 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사흘 연휴를 일주일 만에 다시 즐긴 셈이 되었다. 이렇게 연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글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이고, 이렇게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리게 된 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주신 덕택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 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킈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고등학교 시간에 배운 이 훈민정음 서문은 세종대왕이 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 뜻을 천명한 것으로 유명하고 아마도 많은 우리 국민은 다 외울 것이다. 정말로 백성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어려운 실정을 풀어주기 위해 새로운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을 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다만 이 글을 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맨 뒤에 댱시 예조판서인 정인지가 이 어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주변 사람들을 보면 초ㆍ중ㆍ고 12년 동안 국어를 배우고, 대학국어까지 공부한 사람들 모두 글쓰기는 참 어려워합니다. 그 까닭은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가 그저 입시에 맞춰서 공부했을 뿐 학교에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지 못한 까닭입니다. 여기에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모두 잘난 체에 급급한 나머지 어려운 말을 마구 써대기 때문에 일반인들로서는 글쓰기가 두려워진 것입니다. 576년 전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그 목표를 어려운 한문이 아닌 글자로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도록 하려 함이었습니다. 곧 글쓰기는 쉽게,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되도록 짧은 글이어야 하지요. 어떤 이는 한 글월(문장)을 5줄이 넘게 이어 쓰는데 그러면 분명히 임자씨(주어)와 풀이씨(술어) 관계가 명확해지지 않으면서 글을 읽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됩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합니다. 한 낱말을 빼도 말이 통하면 그 말은 과감히 빼버려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해서 뛰었다.”에서 ‘불구하고’는 일본말로 쓸데없는 군더더기입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