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김슬옹 세종한말글연구소장] 5월 15일은 618돌 세종 탄신일이었다. 세종은 32년 나라를 다스리면서 사람 중심의 인문학과 과학, 예술을 꽃피웠다.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서양이 200-300년에 걸쳐 이룩한 온갖 문화와 과학 업적을 30여년 만에 해치웠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종의 그런 위대한 업적을 이어받기는커녕 일부에서는 깔보고 훼손하기까지 한다. 그 가운데 두드러진 것이 오목해시계(앙부일구) 복원품이다.
▲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필자가 복원한 세종 때의 오목해시계 복원도
서울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 그 지하의 세종 이야기 전시관, 여의도 세종대왕 동상 앞, 경기도 여주 영릉 등 곳곳에 오목해시계가 복원되어 있는데 이 모두가 세종시대의 민본주의 과학 발명품이 아닌 엉터리 복원품이다.
세종은 다목적용 해시계인 오목해시계를 1434년에 설치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시각 표시를 동물신 그림으로 나타냈다. 이때는 한글창제 훨씬 전이었으므로 한자로 시각 표시를 했다면 한자 모르는 백성들한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미터도 안 되는 2단 계단 위에 설치하여 어린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이 받침돌은 서울 탑골 공원 외진 곳에 방치되어 있다.
▲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의 오목해시계, 동물신 그림이 없다.
▲ 동물신 그림 대신 한자를 쓴 광화문 광장 오목해시계
▲ 광화문 광장 오목해시계를 구경하는 중국인들, 이들도 해시계 안에 동물신 대신 쓴 한자를 읽을 수 없다고 했다.
이때는 시각 표시를 두 시간 단위로 쪼개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띠로 나타냈으므로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새벽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는 토끼 그림, 그 다음은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순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위 복원품들은 동물신 그림 대신에 한자 전문가도 알기 힘든 초서체 한자로 만들어 수많은 관광객과 후손들을 우롱하고 있다.
15세기는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여 백성들에게 그 시간을 알게 하는 것은 임금의 고유 권한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그 시간을 백성 스스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임금 고유 권한을 백성과 함께 나눈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목해시계야말로 백성 중심의 과학을 실현한 세종시대 최고의 발명품인 셈이다. 이제 받침돌과 앙부일구를 제대로 복원해 누구에게나 평등한 실용과학을 실현하려고 했던 세종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
▲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안에 있는 오목해시계 복원품, 역시 동물신 그림이 없고 그 자리를 한자가 차지했다.
▲ 세종 때 오목해시계를 전시해 놓았던 받침돌, 탑골공원에 방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