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 억새밭에서
살랑대는
네 손짓을 따라
어승생 산길을 걷는다
어디까지
오라는 것인지
하늘은
흐리고
멀리 바다빛도 흐려
천지간 만물마저 흐려버린
초가을 낮
수수빛
억새들 손짓만
홀로 바쁘다. - 이한꽃 '어승생 억새밭에서'-
메밀꽃하면 강원도 봉평을 떠올리지만 제주 오라동(오라 2동 산 76번지)어승생 메밀꽃밭도 봉평 못지않은 메밀꽃 명승지로 알려졌다. 제주시내와 한라산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진 어승생 메밀꽃밭을 한 티비 방송에서 보고 이곳을 찾았으나 최근에 지속된 비로 메밀꽃 밭은 쑥밭이 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메밀밭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펼침막이 붙어 있었다.
“9월 17일부터 내린 비의 영향으로 메밀이 쓰러지고 꽃이 곱지 못해 올해 ‘메일꽃 나들이 행사’를 종료합니다. 내년은 더욱 아름다운 메밀꽃밭을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유) 농업사회법인 오라-
메밀꽃은 쏟아진 비로 볼품이 없어졌지만 메밀밭에 이르는 길목에는 가을 억새들이 대신 손짓하고 있었다.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지만 억새밭 또한 메밀꽃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어승생이란 조선시대 이름 높았던 말 중 가장 뛰어난 명마가 탄생하여 ‘임금이 타는 말’을 뜻하는 ‘어승마(御乘馬)’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지는 데『탐라지』에 '어승생악(御乘生岳)'이라 표기했고, "제주성 남쪽 25리에 있다. 산 정상에 못이 있는데, 둘레가 100보다. 예로부터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났기 때문이 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비가 추적거리는 가운데 찾은 어승생 메밀꽃밭은 실망 대신 하늘거리는 억새들이 반갑게 손짓해주어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