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애월 해변도로를 달렸다. 대정을 거쳐 한림에 이르는 길은 해안도로로 쭉 이어진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해안도로가 끊겨 국도로 나왔다가 다시 해안도로를 타는 길이다. 제주 도착 3일 내내 18호 태풍 차바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궂은 날씨였으나 어제(30일) 만큼은 비가 그쳐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제주에 가끔 올때면 박물관이나 유명한 영화촬영지 따위와 맛집 나들이가 대부분이지만 어제는 애월해변도로를 넉넉한 시간을 갖고 렌트카로 달렸다. 인상 깊었던 곳은 차귀도 앞 작은 포구 '자구내'다. 대부분의 항구처럼 특이할 것도 없는 작은 포구 풍경이지만 제주에서 포구를 본 것은 처음이라 더욱 정겨운 느낌이다. 자구내 포구 앞은 차귀도 섬이고 포구 오른쪽 구릉은 당산봉이라는 이름의 특이한 바위산이다. 마치 중국 감숙성의 석굴을 연상케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자구내 포구는 고산마을의 젖줄로 만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하니 포구 역시 고기잡이용 배들이 연신 드나들던 곳이었을 것이다. 이곳에는 일제강점기에 돌로 만든 돌등대가 원형 그대로 세워져있다. 그런데 이 등대를 도대불이라고 부른다고 등대 앞 안내판에 쓰여 있는데 여기서 도대(燈臺)란 일본발음 도다이(とうだい)가 '도대'로 와전되어 '도대불'로 정착된 듯하다.
자구내 포구에는 할머니들이 오징어를 파는 허름한 가게가 줄지어 있는데 1만원에 반건조 오징어 3~4마리를 구워 판다. 잘 구워진 오징어를 질근질근 씹으며 다시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난 곳이 송악산이다.
송악산 고개를 넘자 마자 눈 앞에 펼쳐지는 탁틘 검푸른 제주바다! 가슴 속까지 시원한 정경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차를 세우고 송악산에는 오르지 않고 송악산 앞바다의 신선한 바람을 쏘이며 산책길을 걷다가 만난 표지판에 기자는 눈을 떼지 못했다.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 진지' 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에는 송악산 아래 해안가에 파 놓은 동굴에 대한 유래가 빼곡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제말 패전에 대비한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국 함대를 향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파놓은 것이라 하니, 또 다시 일제의 망령을 보는 듯해 소름이 끼친다. 이 동굴은 송악산 해안 절벽을 향해 17기가 만들어져있다한다. 침략의 역사는 제주 땅 곳곳에서도 목격되지만 일본은 아직도 제국주의 시절에 저지른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반성 없이 버티고 있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다.
검푸른 제주의 바다는 무언의 시위라도 하는 듯,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해안 절벽에 끊임없이 부딪치고 있었다. 철썩,철썩,철썩. 파도소리에서 역사의 준엄한 소리를 읽으며 송악산을 뒤로하고 삼방산을 돌아 본 여정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제주의 또 하나의 얼굴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