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에서는 ‘天翼(천익)’, ‘帖裏(첩리)’, ‘帖裡(첩리)’ 등 다양한 한자로 나타납니다. 원래는 관리들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 또는 왕의 궁궐 밖 거동을 호위할 때 착용하는 융복(戎服)이었으나, 점차 일상적으로 입는 평상복이 되었습니다.
철릭은 시대에 따라 상의와 하의의 비율, 주름을 처리하는 방법, 소매의 모양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상의와 하의의 비율이 1:1로 거의 같았으나 후기로 갈수록 하의 부분이 길어집니다. 또 임진왜란 이후에는 소매 폭이 점차 넓어지고 촘촘했던 허리 주름의 간격이 넓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철릭의 제작 시기를 구분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릭은 조선시대 초기의 대표적인 형태와 무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용과 맵시를 더하다
조선 초기의 철릭은 비상시에 옷을 빨리 입을 수 있고 활동하기 편하게 고안된 실용적인 옷이었습니다. 한쪽 혹은 양쪽을 매듭단추로 연결하여 입고 벗을 수 있고, 하의는 짧게 하여 이동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로 하의 부분은 더욱 길어지고 입고 벗기 쉬웠던 실용적인 소매의 기능은 사라지게 됩니다. 초기에 정교한 잔주름이었던 허리주름은 간격이 점차 넓어져서 서양의 플리츠(pleats) 치마와 같은 형태도 나타납니다. 소매는 밑 부분에 생긴 곡선으로 더욱 넓어지며 화려한 무늬의 직물을 사용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곧 주름 때문에 풍성해진 형태와 색상, 직물의 종류가 미적요인으로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철릭의 가장 큰 특징은 위와 아래를 따로 재단하여, 바느질할 때 허리 부분에 주름을 넣은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입는 서양식의 플리츠 치마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플리츠는 아코디언의 주름처럼 작고 촘촘한 주름을 뜻합니다. 아주 좁거나 혹은 넓은 직사각형의 일정한 유형이 반복되는 디자인 요소 때문에 옷의 장식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철릭의 주름은 원래 활동성을 위해 부분적으로 넣었던 것이나 허리의 주름 때문에 옷의 자락이 풍성해져서 맵시를 더해줍니다. 주름의 너비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약 2.0cm 내외의 정교하고 가는 주름을 잡았으나 17~18세기에는 마치 기계로 잡은 듯한 1.0cm의 주름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구름과 보배무늬
구름은 예부터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무늬로 주로 남자의 복식에 사용하였습니다. 1746년에 펴낸 《추관지(秋官志)》에는 “조신의 장복(章服)과 융복(戎服)은 모두 구름무늬를 쓴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의궤나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관원의 집무복도 구름무늬 직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관원용 집무복과 철릭에는 구름무늬 직물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구름무늬는 시대별로 구성과 형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구름무늬는 구름의 머리 부분인 여의(如意)가 네 무리로 뭉쳐 마름모 형태를 만듭니다. 그리고 거기에 구름꼬리가 연결되는데 ‘ㄷ’형, 사선형 등으로 연결됩니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가면 구름 사이의 간격이 넓어지고 구름머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철릭에는 구름무늬를 단독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보배무늬를 넣기도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릭은 구름무늬의 사이에 전보(錢寶), 서각(犀角), 서보(書寶), 방승(方勝), 여의(如意), 산호(珊瑚), 경보(鏡寶)의 일곱 가지 보배무늬를 자유롭게 배치하여 화려한 느낌을 줍니다.
이렇게 원나라에서 도입된 외래의 복식이었던 철릭은 점차 우리나라 고유의 옷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도입 초기에 융복 위주의 기능에서 사대부 양반들의 관복, 하급직 및 시민들의 평상복 등의 옷으로 분화되면서 착용자의 수가 자연스럽게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철릭의 사회적 지위는 점차 하락하게 됩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17년(1793)에는 철릭의 소매가 넓어져서 옷감의 낭비가 많으니 줄이라는 왕의 지시가 있었으며, 순조 34년(1834)에도 철릭의 소매가 발등까지 끌리는 상황을 지적한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고종 20년(1883)에 융복을 폐지하고 군복을 입도록 하면서 철릭은 역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민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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