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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을 흩어내는 돌담가 국화 같은 삶 영해대사'

[우리문화신문= 전수희 기자]

두어 이랑 심은 외밭에 피는 노랑꽃

먼저 핀 꽃 시들고 나중 꽃 아름다워

이슬은 떨기 적셔 푸른 잎 무성하고

비로 다져진 흙에 가지 더 돋는다

몇 자씩 뻗는 넝쿨 긴놈 짧은 놈

몇치로 자란 열매 누운 놈 서 있는 놈

용의 발톱인 모습 비단처럼 고운 빛깔

아이에게 따게 해 어버이 공양하라네

 

이는 외심은 데 외난다다라는 제목으로 영해대사(1668~1754)의 선시다. 영해대사는 전라남도 고흥출신으로 10살에 출가하여 능가사(楞伽寺)의 득우장로(得牛長老)의 제자가 되었다. 17살에 수연(秀演)으로부터 계()를 받았으며, 22살부터 경전 공부에 몰두하였다.

 

28살에 어머니가 죽자 모든 현상세계가 오직 마음(唯心)에서 비롯된다는 선지(禪旨)를 체득하고 피나는 참선정진을 시작하였다. 1704(숙종 30)에 자수암(慈受庵)에 들어가서 많은 학승(學僧)들을 지도하였다. 55살 때에는 공장(工匠)을 시켜서 불화(佛畫)를 그리게 하였고, 54살 때에는 송광사(松廣寺)로 자리를 옮겼다.

    

 

장엄한 옷차림의 조정대신을

절 동녘 숲에서 맞이하였소

형식 떠나 깊숙이 맺은 인연

구름가 저녁 경치 찾았구료

바위 머리엔 푸른 구슬 흐르고

황금을 흩어내는 돌담가 국화

태연히 서로 마주하는 곳

이미 깊어진 마음마저도 있었구료 정이도사(呈李都事)-

 

영해대사는 61살 되던 해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방장산 벽송암에서 학인 수만 명과 지내다가 대중에 게 이르길 국가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이러한 변고를 당하였으니 나라 구할 힘이 없다면 내 어찌 지략을 아끼랴만 형세가 그러하지 못하니 조용히 지내며 난의 평정을 기원하리라라는말로 대사의 충절을 나타내었다. 영해대사는 당시 유생들과 교류가 많았으며 그들은 영해대사를 선승(禪僧)으로 모시고 마음의 교분을 쌓았다. 87(1754)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