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한국의 국수, 생활문화로 접근하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에서는 한국의 근현대 생활문화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목적으로 근현대 생활문화 조사를 추진해오고 있다. 2018년에는 ‘면(麵)’을 매개로 한 근현대시기 식생활의 변화양상을 조망하기 위해 전국에 걸친 국수 조사를 시작하여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 조사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 발간을 위하여 1년 동안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고유의 국수와 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조사ㆍ기록하였다. 문헌을 통해 국수의 유래와 국수 관련 주요 사건에 대해 기록ㆍ정리하였으며, 국수 제면 방법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즐기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특히 부산의 경우, 밀면과 밀면 가게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통해 ‘피란 수도 부산’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새로운 유입과 적응에 대한 이야기를 부산 사람들의 생활상과 함께 풀어내었다.
한국의 국수, 역사와 유래
국수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역사적 기록과 문헌을 통해볼 때 고려시대 이전부터 국수문화가 있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도경》 등 여러 문헌에서 국수의 역사와 조리방법, 그리고 국수의 의미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 한글의 ‘국수’라는 말의 어원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사례편람》, 《아언각비》, 《금화경독기》 등에 ‘국수’를 한자로 국수(掬水)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국물에서 젓가락 등으로 움켜쥐어 먹는 면류, 또는 젓가락 등으로 움켜쥐어 먹는 면류 음식 이름으로 해석하여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 문헌에 면(麵)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시대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수를 일상적으로 즐겨 먹게 된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수는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쌀 생산이 부족했던 시기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저렴한 식사로 시작하여 점차 부식에서 주식과 일상식으로 자리 매김 하였다.
지역별 국수와 특징
한국의 국수는 면의 종류, 육수의 재료 등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각 지역에서는 지역 고유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국수를 만들었는데, 이 음식들에는 지역 생활문화의 특징과 양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주도에서 잔칫날 돼지를 잡아 끓인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에서 유래한 제주도 고기국수와 금강유역에서 잡은 생선을 넣고 끓인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는 생선국수, 그리고 척박한 토양에 메밀을 생산하여 면을 만들어 먹었던 강원도의 메밀국수가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반가의 음식에서 안동의 대표적 향토음식이 된 건진국수, 뱃사람들이 먹던 음식에서 모두가 즐겨먹는 음식이 된 포항의 모리국수,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견디기 위해 먹던 전라도의 팥칼국수 등이 대표적인 지역 국수이다.
국수가 지역별로 발달하는데 있어 다양한 재료만큼이나 영향을 준 것은 국수공장이다. 1970~80년대까지 읍면단위에는 한 곳 이상의 면(麵)을 뽑는 국수 공장이 있었다. 국수공장들은 소규모로 국수를 생산하였기 때문에 최고의 맛을 내는 국수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규모 국수공장은 지역, 또는 공장에 따라 중면, 소면 등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국수를 생산했고, 이러한 국수 제면 방법은 지역에 맞는 다양한 국수를 발달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피란민의 애환이 만들어낸 부산 ‘밀면’
부산에는 피란민이 만든 국수 ‘밀면’이 있는데, 밀면을 파는 음식점의 수가 500곳이 넘을 만큼 대표적인 지역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밀면은 경상도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생소한 음식이다. 서울 곳곳에 국수나 냉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지만, 밀면 음식점은 유독 적은 편이다. 부산 서구 토성동에서 밀면가게를 운영 중인 김명학씨는 그 이유를 "밀면 맛이 강하고 자극적이어서 그렇다"고 했다.
부산 밀면의 유래는 세 가지로 나타난다.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북한에서 피난 온 피란민들이 냉면을 그리워하여 냉면을 대체할 음식으로 고안했다는 것이다. 메밀가루나 감자 전분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구호품으로 받은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부산 우암동에 있는 내호냉면에서 밀면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피란민 출신이 차린 내호냉면에서는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함흥식 국수인 농마국수를 팔았는데, 전분을 구하기 어려워서 당시 보급품이었던 밀가루로 만들어 판매했던 국수가 최초의 밀면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진주에서 즐겨 먹던 해산물을 이용해 육수를 낸 밀국수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1925년 경상남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진주 밀국수가 부산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진주 밀국수 유래설은 현재의 밀면과 많은 차이가 있어 그 가능성이 가장 희박해 보인다. 이처럼 밀면은 피란민이 만든 것이 그 시작이지만 현재는 부산 사람들이 즐겨 먹으며,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음식 12종류 중 첫 번째로 자리 잡았다.
한 권에 담아낸 국수 이야기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 국수와 밀면》 조사보고서에서는 우리의 식생활에 국수가 언제 어떻게 자리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고, 전국의 다양한 국수와 시대성이 뚜렷한 부산 밀면에 대해 다루었다. 현지조사를 통해 각 지역의 다양한 국수와 국수문화를 소개하였고, 부산 밀면과 함께 해 온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시대ㆍ사회적 배경이 지역의 음식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해하고, 식탁에 오르는 한 그릇의 국수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