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호심 기자]
아리랑 넘는 길 몇 만 리든가 가면은 오지는 못하는 고개 (왕수복/마즈막 아리랑)
우리 부모가 날 길러서 무슨 공덕 보려고 나를 길렀겠나 (아롱타령)
포구의 달빛은 잦아드는데 우리 님 탄 배는 안 오네 (최향화/포구의 달빛 아리랑)
일제강점기 민족적 울분을 삼키며 저항의 선율로 태어난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오는 10월 5일(토) 오후 5시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열리는 <민족수난기의 창작 아리랑을 듣다>는 아롱 타령부터 광복 직후 만들어진 정선아리랑까지 전통 선율로 태어난 아리랑은 물론 마즈막 아리랑, 할미꽃 아리랑 등 서양 선율로 태어난 아리랑을 두루 감상할 기회다.
이번 공연은 국립무형유산원의 2019년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고 보조사업 공모 선정 작품으로 사단법인 서울소리보존회(이사장 남혜숙)가 주최하고 서울소리보존회와 신민요연구회가 주관한다.
공연에서는 경기소리 인간문화재 임정란을 비롯해 중견 경기 소리꾼 이선영, 가야금병창 중견 소리꾼 차수연, 서도소리 이수자 박수영, 경기민요 대통령상 수상자 박정미 등 대표적인 경서도 소리꾼이 출연해 다양한 창작 아리랑을 선보인다. 또한 원로 예술인으로 서울소리보존회를 이끄는 남혜숙, 유명순, 최영자 명창을 비롯해 경기민요 이수자이며 평양검무 이수자인 최정희 명무도 출연한다. 여기에 신민요연구회 앙상블이 반주를 맡아 명창들의 소리를 한결 아름답게 꾸며준다.
1부 전통 선율로 태어난 아리랑 무대에서는 전통 민요 선율에 기반한 창작 아리랑이 관객들을 매료한다. 원로예술인 최영자 명창이 이끄는 서울소리보존회 예술단이 보존회의 복원 재현 사업을 통해 발굴한 함경도 아리랑, 진천방골 아리랑, 아롱타령을 다듬이 타악에 맞춰 부르며 무대를 연다.
이어 차수연 명창이 가야금병창으로 신조 아리랑과 제주아리시리를 부른다. 신조 아리랑은 경기 명창 표연월과 남도 명창 이중선이 함께 녹음한 특이한 아리랑으로 유행가 오동나무와 신민요 아리랑을 섞어서 만든 노래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1호 임정란 명창은 김옥심 명창이 광복 후 창작한 정선아리랑을 선사한다. 고 묵계월 명창의 수제자로 12잡가를 사사한 임정란 명창은 금강산타령을 구성지게 잘 부르는 소리꾼으로 유명하다.
이선영 명창은 구아리랑과 잡잡가 중 토끼 화상을 부른다. 이선영 명창은 현재 성남시립국악단 민요 수석으로 있으며, 경서도 소리꾼 중 가장 기교가 뛰어난 소리꾼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이선영 명창에게서 김옥심제 잡잡가를 전수한 남혜숙 명창은 유명순·유근순 명창과 함께 대구 아리랑, 영천 아리랑, 구방물가를 부른다.
1부 무대는 최정희 명무의 김지립류 살풀이로 마무리된다. 이 춤은 이매방의 제자인 김지립이 새롭게 짠 살풀이로 나르리라는 이름으로 전수되고 있다.
2부는 서양 선율로 태어난 창작 아리랑으로 꾸며진다. 주로 권번 출신 예기들과 전문 가수들이 부른 아리랑들을 감상한다.
신민요연구회의 홀로 아리랑 반주에 이어 전설적인 평양 출신 기생 가수 왕수복의 대표적인 창작 아리랑인 마즈막 아리랑은 박수영 명창이, 인천 용동권번 출신 기생 가수 장일타홍의 대표적인 아리랑인 아리랑우지마라는 박정미 명창이 각각 들려준다. 조선 권번 4대 무희 출신으로 19세에 폐렴으로 아깝게 요절한 최향화의 포구의 달빛은 박수영 명창이 부른다.
눈물 젖은 두만강으로 유명한 가수 김정구의 형인 김용환이 빅타레코드에 녹음한 꼴망태 아리랑은 차수연 명창이, 가수 백난아가 부른 할미꽃 아리랑은 황해도무형문화재 놀량사거리 이수자들인 이춘자·김옥자 명창이 나선다.
이어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아나운서이자 소리꾼인 황재경이 1인 만담 형태로 남긴 아리랑레뷰를 박정미 명창이 맛깔스럽게 재담으로 재현하며, 1954년 미국에서 최초로 발표된 잭 플레이스(Jack Pleis)의 아리랑(Ah ri rung)을 상암초등학교 학생들이 들려준다.
이 공연을 연출한 한윤정 씨는 “아리랑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고자 기악 반주를 최소화했으며, 서양 선율에 입힌 아리랑 역시 국악 반주에 맞춰 좀 더 국악적으로 표현했다”며 “인류 무형유산인 아리랑 하면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같은 아리랑만을 생각하지만, 민중·대중과 함께 많은 아리랑이 만들어졌으며, 이들 아리랑은 진도아리랑이나 밀양아리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라를 잃은 상실감’을 직접적으로 혹은 의연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소리보존회 남혜숙 이사장은 “아직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아리랑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더 많은 아리랑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대한다”며 이번 공연의 의미를 강조했다.
전석 선착순 무료이며 공연 문의는 서울소리보존회(02-353-5525)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