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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80의 정순임 명창, 국립극장 완창무대 빛내다

‘가난타령’ 대목 박송희제와 장월중선제 함께 소리해 눈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의원 보면 침 도적질, 양반 보면 관을 찢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과부는 모함 잡고, 우는 애기 발가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 싸고, (가운데 줄임)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뒤집어놓고, 봉사 눈 똥 칠허고, 애 밴 부인은 배를 차고” 흥보가 가운데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을 걸쭉하게 소리한다. 완창판소리 공연장의 객석은 자지러진다.

 

지난 토요일 낮 3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정순임 명창의 박록주제 흥부가 완창 판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정순임 명창의 명성 덕인지 코로나19와의 대전을 치르는 가운데서 하늘극장의 객석은 빈틈이 없다. 정순임 명창은 객석의 환호에 “나이 벌써 80이 되는데 객석을 메워준 여러분께 재롱을 좀 떨어봤씨유.”라고 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김세종 교수가 나와서 정순임 명창의 완창무대의 의의를 말하고, 이 공연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를 얘기해주었다. 그는 특히 “오늘 정순임 명창은 흥보가를 박녹주-박송희로 이어지는 바디로 부르게 되지만, 송만갑 명창으로부터 정 명창의 외할아버지 장판개, 어머니 장월중선 명창으로 이어지는 집안 내력도 있어서 그런 점이 어떻게 비칠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정 명창은 나이가 팔십이 된다는 말이 무색하게 중간에 잠시 옷을 갈아입는 휴식시간 외에 3시간 30분 가까이 되는 공연시간 내내 잠시도 청중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정 명창은 판소리에 쓰이는 장단 7가지는 물론 악조와 리듬까지 바꿔가면서 부른다고 김세종 교수는 칭찬해 마지 않는다.

 

정순임 명창은 역시나 원숙한 소리로 무대를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흥보제비가 다친 내력을 보고하는 대목에서는 귀여운 아니리와 발림으로 청중들이 배꼽을 잡게 했고, 흥보 마누라가 쏟아내는 ‘가난타령’ 대목에서는 얼마나 슬프게 소리를 하는지 청중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객석은 역시 대단한 귀명창들이 들어찼다. 청중들은 추임새는 물론 심지어 자진모리나 휘모리 때는 박자를 맞추는 손뼉을 쳐서 호응했고, 소리꾼이나 고수나 청중이 모두 하나가 돼서 돌아가고 있었다.

 

이날 공연의 정점은 끝부분에 있었는데 특히 가난타령을 하기 직전 정순임 명창은 갑자기 청중들을 향해 “객석을 가득 채워주시고, 쉼 없이 추임새를 해주시는 청중 여러분께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드릴까 합니다.”라고 운을 뗐다. 바로 해설자 김세종 교수가 말한 얘기가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가난타령 부분을 박녹주-박송희제로 먼저 부르고, 이어서 정 명창의 어머니 장월중선 명창에게서 배운 송만갑-장판개-장월중선으로 이어진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소리꾼이 한 바디를 제대로 부르는 것도 어려운데 두 소리제를 한 무대에서 부르는 것은 그야말로 서프라이즈 깜짝 선물인 것이다. 그런데 ‘가난타령’ 대목은 박송희제 보다는 장월중선제가 서편제에 가까운 소리여서 청중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이날 공연에는 이낙훈, 박근영 두 명고가 함께 했다.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이 괜히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정 명창과의 호흡은 기가 막혔다. 정 명창은 수시로 고수에게 다가가 “거 북 한번 기가 막히게 치네. 물 한잔 들고 허소.” 하면서 말을 거는데, ‘박 타는 대목’에서 고수는 휘모리장단을 힘차게 때려내면서 힘을 실어줬고, 진양조 슬픈 대목에서는 소리꾼의 마음을 달래듯 작고 느려터지듯 한다.

 

80이 됐다는 정순임 명창은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시간이 흐르면서 기운이 쇠진할 법도 한데 오히려 쌩쌩해진다. 아마도 청중의 추임새에 그저 하나가 된 덕이 아닐까? 연한 연꽃그림의 연회색치마에 진홍저고리를 입고 쥘부채를 들고 소리를 하는 모습에 청중들은 꽃다운 젊은 처자의 소리로 착각하고야 만다.

 

정 명창은 마지막 대단원 부분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을 제자들과 함께 부른다. 그저 소리꾼 혼자 고고한 체하는 것이 아니라 한 대목이라도 제자들과 함께하려는 정 명창의 따뜻한 마음 씀이 기가 막힌다.

 

지난 4월 14일 문화재청은 정순임 명창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흥보가)’ 보유자로 지정예고한 바 있다. 이번 공연을 본 청중들은 모두 인정하지만 정 명창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공연이 끝나고 청중들은 공연장을 나서려 하지 않는다. 명창과 손 한 번 잡아보고 사진 한 컷 찍어보려고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가정의 달 5월의 끝 자락쯤 정순임 대명창과 청중들은 코로나19 대전을 잠시 잊은 채 울고 웃는 3시간이 되었다.  (사진 국립극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