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2025년 4월 1일 저녁 인사동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온다. 인사동 들머리에 성난 군중의 고함소리가 진동한다. 다가가 본다.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험악하다. 촛불시위대와 태극기부대가 대치하고 있지 않는가? 아마 초조해진 태극기 부대가 상대편을 도발한 것 같다. 금세라도 충돌이 일어날 것만 같다.
요망스러운 일이지만 태극기 부대는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 있다. 이들 넋이 나가고 얼빠진, 광기의 수구세력이 겨레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나라를 망쳐먹은 역사는 길고도 질기다. 그들은 왜구와 한패거나 제주도에서 수만 명을 학살한 서북청년단과 정신적 동성동본일 것이다.
이들의 본색을 우리는 127년 전 1898년 서울 거리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1898년 겨울 썩어빠진 정부 관리들, 몰아치는 외세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 신세가 된 나라를 구하고자 만민이 연일 거리 시위를 하고 있다. 장작불을 지피며 풍찬노숙을 한다. 시위의 열기가 타올라 마침내 세상이 바뀔 조짐이 보인다. 그러자 오늘날의 태극기 부대 같은 것이 검은 구름처럼 몰려든다. 정부의 사주와 자금을 받은 전국의 보부상 수천 명이 서울로 집결한 것이다. 불길한 기운이 스물거리고 전운이 감돈다. 이에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더욱 불어난다. 불안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거리에 나서면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11월 21일 서릿발이 선 새벽.
인화문 앞 군데군데에 사위어가는 장작불을 보인다. 그 주위에 솜옷을 걸친 사람들이 오소소 떨며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새우잠을 자고 있다. 눈에 갈망과 원망을 가득 담고 있는 이들에게 갑자기 몽둥이가 날아든다. 평양립을 쓰고 물푸레나무 몽둥이를 든 보부상 2,000여 명이 며칠째 철야 농성으로 지친 시위대를 급습한 것이다. 이들은 제주 4.3 사건의 서북청년단, 5.18광주의 계엄군, 엊그제 법원을 공격한 태극기부대의 선배들이다, 피가 튀기고 사망자가 속출한다.
장막 뒤에서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요괴들이 암약한다. 그 요괴들의 본거지는 궁중(오늘날의 용산과 한남동)이다. 궁중에서 몽둥이를 든 보부상 패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하사하여 그 노고와 성공을 격려하고 치하한다(오늘날 전광훈 집회, 태극기 부대의 뒷돈은 어디서 흘러나오는가?)
소문이 바람 타고 퍼지고 민중의 분노는 더욱 타오른다. 다음 날인 11월 22일 서울 도심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당시 서울 인구가 17만 명이었다고 한다. 1만 명이 모인다면 서울 전체 인구의 17분의 1 곧 6% 정도니, 오늘날로 치면 약 60만 명이 모인 것이다. 만민공동회가 절정에 다다랐다.
보부상 패과 시위대 사이에 혈투가 벌어진다. 한 사나이가 떨치고 일어나 맞선다. 광산 김씨 김덕구. 오늘날의 명동에서 가죽신을 수선하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구두 수선공이다. 맨몸으로 보부상과 맞선 그는 날아드는 몽둥이에 피를 흘리고 쓰러진 뒤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독립신문 11월 23일 자는 병정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병정 ㄱ: 여보게 우리가 이 병정 노릇 안 하면 굶어 죽나? 오장육부 바로 박힌 자식이라면 차마 눈 뜨고는 못 보겠네.
병정 ㄴ: 무슨 소리야?
병정 ㄱ: 인화문 밖에 밤낮 모여 있던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었나. 심지어 군밤 장사 어린이가 다 보조를 하고, 걸인과 판수들이 다 보조를 하였다데. 경향(京鄕) 간에 마음 바로 가진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그 백성 모여 있는 데로 모여들어 그 백성들의 소원하는 일을 일심으로 응원하데. 그 백성들 하는 일과 목적이 그럴진대 어찌 그리들 하겠나.
병정 ㄷ: 그 백성들의 소원하는 일이 잘 돼야 우리 병정들도 차차 잘 돼가지. 만일 그렇지 못하면 우리 병정들도 점차 무슨 모양이 되겠나. 들은즉 정부에 재정이 군색하여 월급 타 먹기도 이제는 힘들다는군.
병정 ㄹ: (갑자기 주먹으로 땅을 치며) 여보게. 세상이 이런 법도 있나. 정부에서 이미 혁파했다는 보부상 패가 갑자기 어디서 다 생겼겠나. 만일 우리가 운이 좋아 정부 대신이 된다면 저 보부상패들을 당장에 없애야겠네. 애국애족 내세우는 저것들의 행색이 기막히네. 본래 무식하고 부랑한 무리라, 설령 저들이 뉘 지시를 받아 백성들을 치러 달려들더라도 정부에서 병정과 순검들을 많이 풀어 막았더라면, 저들이 어찌 감히 인화문에 모인 백성들을 칠 수 있었으리오.
정부에서 저것들을 은연중 불러들여 백성들을 치게 했으니 뉘 아니 억울하겠나. 저 백성들이 울화통이 터져 수 없이 다시 종로로 모여 남의 집들을 부순다, 통곡한다, 저것이 무슨 모양인고. 상인들은 모두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동네동네 백성들은 의분을 참지 못해 내달아 종로로 몰려드니, 죄 없는 우리 병정 순검들은 각 병문 파수 서기에 견딜 수 없네. 당초에 정부에서 저 백성을 속이지 않고 무슨 영(令)을 한번 내려 약속대로 시행하였을 것 같으면, 저 백성들이 무슨 까닭에 저렇게 거리에 모일까? 저 백성들이 이리저리 모인 것은 모두 정부 각 대신의 허물이요, 보부상 패가 문 안에 모여 저 백성들을 친 것도 모두 정부 각 대신의 허물이며, 그 보부상 시켜 저 백성을 치고, 두 진영이 문안, 문밖에서 대적하고 있는 까닭에 우리 병정 순검이 병문(兵門)마다 파수를 서고 있는 것도 모두 정부 각 대신의 허물이라. 말을 다 하자면 차마 코가 시어 못 하겠노라. “
다음은 <매일 신문> 11월 25일 자 기사다.
“얼마 전 만민공동회에서 총대위원을 보내어 일전에 보부상들을 쫓다가 중상하여 죽은 사람을 쌍룡정에 묻고 왔는데, 총대위원의 말이 그 맞아 죽은 사람을 자세히 살펴본즉 신 깁는 송곳 셋이 있고 주머니 속에 전당표 열아홉 장이 들었으니 지극히 가난한 것을 가히 알겠고, 신분은 신깁는 장사라 형세는 가난하되 마음에 충애는 가난하지 아니하였기로 동포에게 손해 끼치는 보부상들을 해치려고 죽기를 무릅쓰고 앞장을 서서 쫓다가 그 지경이 되었으니, 생각하면 눈물을 금치 못할 일이요, 의리를 생각하면 천추에 영광이라 하고 그 무덤 앞에 포대를 세웠으되 거주성명은 모르는 고로 옳을 ‘의(義)’자만 표대 끝에 써서 세우니, 그곳에 나갔던 경무관리들과 그 근처 동리 인민들이 동포 의리를 생각하여 눈물이 비오듯 하니, 일월이 빛이 없고 천지가 비감한 듯하더라 하니 종로에 모인 여러 동포들도 슬픔을 금치 못하더라.”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열사 노제는 바로 구두 수선공 김덕구를 기리는 노제로 그해 12월 1일 이루어졌다. 종로에서부터 남대문 밖 갈월리까지 이어지는 긴 장례 행렬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행렬의 맨 앞을 '대한제국의사광산김공덕구지구'라고 적힌 명정이 이끌고 있다. 상여를 메고 있던 사람들은 김덕구를 위해 지은 애국가를 부른다. 많은 백성이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독립신문> 1898년 12월 6일 자에는 그 광경에 대한 극적인 묘사가 실려있다. 태극기 부대 사람 하나가 홀연 깨닫는 그 순간의 대오각성, 대참회의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 어떤 보부상들이 거리에서 묵묵히 구경을 하면서 서로 말하여 가로되,
장하고도 장하도다. 우리 듣기에는 만민회의 목적이 항상 그르다고들 하더니 오늘날 저 만민들이 일심으로 하는 행동을 우리 눈으로 친히 보고 우리 귀로 친히 들으니 과연 나라 사랑이 분명하도다. 만일 저들의 목적이 그르다면, 그른 일은 혹시 한두 사람이나 하겠지 수만 명 인민이 어찌 일심으로 그른 일을 하겠느냐, 만민이 일심으로 하는 것을 보니 우리를 불러서 만민회와 싸움 시키는 이들의 짓이 대단히 틀리도다,
우리들은 본래 학문이 없어서 무식장이로는 제일이라, 웃어른들이 이리 하라면 이리 하고 저리 하라면 저리 하여 다만 지휘만 따를 다름이러니, 이제 본즉 우리들을 시키던 자들의 소견은 실로 인사불성이며 참으로 간세배라 하는 명호들을 면치 못하겠도다, 저 김덕구가 우리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한즉 우리는 사람 죽이는 백정이로구나, 우리들이 천지간에 몹쓸 놈들이로다.“
이런 상서로운 일이 오늘 거리에서 많이 일어나기를 헛되이 염원해 본다. 1898년의 시공간을 살다 간 군상이 지금 죄다 다시 살아나 21세기 오늘의 한국에서 숨 쉬고 있다. 태극기 부대는 보부상 패요, 용산은 보부상 패를 암암리에 동원한 조선의 권력층이요, 그 수괴자 괴수는 윤석열과 그 처, 그리고 내란을 옹호하는 국민의 힘이 아닌가.
또한 우리는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과 질서 유지에 땀 흘리는 경찰들 속에서 위의 대화에 나오는 병정들을 볼 수 있다. 명동에서 구두수선공으로 살다가 보부상 패의 패악질에 분연히 맞서 숨을 거둔 수많은 김덕구들이 지금 다시 살아 돌아온다. 다시 살아 돌아온 수많은 보부상 패도 지금 거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은 반만 맞는 것 같다.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는 것 같으니 말이다. 기우뚱, 변화의 간극 속에 검푸른 희망이 고동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