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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제비꽃처럼

작은 창으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니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자네는 지겹지도 않아서 평생을 두고 수학만을 그렇게 연구하는가? 자네가 하는 그 일이 인류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그 수학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양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선 알 바가 아니라네.” ​

 

법정 스님의 저서 '서 있는 사람들'에 나오는 글이다. ​

 

세상이 어지럽다.

지겨운 코로나는 언제 우리 곁을 떠나려나?

이런 때에 제비꽃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걱정하지 말고

그저 자기 일이나 또박또박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문득 고개를 드니 오후의 햇살이 길게 창문을 타고 들어온다.

물끄러미, 아무 생각 없이, 오랫동안 그 햇살을 본다. ​

그러다가 햇살을 말한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떠올랐다.

 

 

小窓多明 使我久坐(소창다명 사아구좌)​

뜻이야 뭐 “작은 창으로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니, 그것을 보느라 한참 앉아있네​” 정도일 것인데​ 원래 뜻글자인 한자를 상형문자화 해서 표현하는 추사의 솜씨가 기가 막힌다. ​

 

창(窓)을 격자무늬의 칸 정도로 단순화한 재치있는 발상,​

글자들이 햇빛을 받아 마치 간지러운 듯 춤을 추는 형상이 너무 익살스럽지 않은가?

 

오랫동안 앉아있으면서 햇빛에 노출된 사물들의 속 움직임을 포착해내고 그것을 글씨의 율동으로 표현한 듯하다. 서예도 리듬이고 음악이고 그림, 곧 시각예술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겠다. 거기에는 추사라는 사람이 추구해 온 정신의 영역이 담겨있고 드러나 있다.

 

 

어떤 사람은 좌(坐)라는 글자를,

마치 너무 오래 앉아있어 허리가 아픈 관계로 살짝 엉덩이를 든 상태 같다고 하던데,

그 말도 재미있다. ​

 

아니면 창문 두 개를 상징한 것인가?

 

답답한 날 오후에, 저녁해를 바라보다가 추사의 이 글귀가 생각난다.

그러다가 이 글귀의 참맛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제비꽃이 되는 것이다. ​

꼭 제비꽃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피워낼 수 있는 작은 꽃을 피워내면 되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받은 본분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내 사는 것이 이 세상에,

후세에 어떤 영향이나 평가를 주고받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말자.

태생대로 본분대로 살아갈 뿐이다. ​

 

너무 걱정을 많이, 그것도 쓸데없는 것까지 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

 

덥기까지 한 저녁 햇살에 내 생각은 한없이 왜소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이 세상일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삶을 만들어가는 소박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