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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결혼 40주년인데요

잘 챙기지 못했던 날, 무얼로 선물할까요?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6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양력 10월만 되면 두려운 날이 하루 있다. 결혼기념일이다.​ 결혼기념일을 부부가 같이 기념하고 즐기는 날이라는 사회 통념에 따르면 나는 지금까지 이날을 제대로 같이 기념한 적이 없다.

 

우선 결혼기념일이 정확히 언제인지가 기억되지 않은 해가 많았다. 8월에 있는 부인 생일은 챙겼지만, 그 두 달쯤 뒤인 이 결혼기념일은 날짜가 꼭 이틀쯤 헷갈려서, 무심코 지나고 나서는 ‘아이쿠 이런’하고는 후회를 한다. 대개 그런 날은 부인에게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뒤늦게 깨달은 경우이다. 그리고 어쩌다 미리 생각이 나면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게 서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잘 맞지를 않아 삐끗거리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물론 아주 챙기지 않았으면 70을 바라보는 내가 아직까지 다리가 성한 채로 나다닐 수 있었겠는가? 지난 일을 생각하면 그래도 결혼 15주년을 맞은 1995년 북경에 있을 때에 시간을 내어 천진을 하루 다녀온 일이 있었고, 10년이 더 지난 2005년에는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일본 단풍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다. 말하자면 25주년이니 은혼식을 일본 여행으로 치른 셈이 된다.

 

 

그렇지만 이런 큰 두 기억 말고는 대개는 술 취해서 잊어버리고 날짜를 헷갈려 잊어버리고, 딴 생각하다가 지나버리고... 하는 식의 얼버무림으로 평소 나의 성격과 생활태도에 대한 부인의 비난 그대로를 보여준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말하자면 올해는 결혼 40주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25주년은 은혼식, 50주년은 금혼식 정도는 알고 있는데 40주년은 무슨 식이 있는가 없는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 수소문을 해보니 40주년은 루비(Ruby)혼식이란다. 루비라면 붉은 색의 보석. 그래서 홍옥혼식이란 말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말로 된 인터넷 정보는 조금씩 헷갈린다.​

 

이런 몇 주년 결혼을 기념한다는 무슨 무슨 혼식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이 점에 대해서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영국에서는 결혼을 하고 나서 해마다 기념일의 이름을 붙여서 축하를 해서 15년까지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5년 단위로 축하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름을 보면 다 물질 재료나 광물질 이름이다. 곧 죽이어오면서 결혼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 또 서로의 수고와 배려를 축하하기 위해 그런 이름에 해당하는 선물을 해왔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15년까지의 기념의 이름을 보면​

 

1년째는 지혼식(紙婚式), 2년째는 고혼식(藁婚式) 혹은 면혼식(綿婚式, 3년째는 혁혼식(革婚式), 4년째는 화혼식(花婚式), 5년째는 목혼식(木婚式)이라고 부른다는데 이것은 영어의 Paper, Cotton, Leather, Flower, Wood를 번역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계속해서 이를 15년까지 이어서 보면​

 

6년째는 철혼식(鉄婚式), 7년째는 동혼식(銅婚式). 8년째는 고무혼식, 9년째는 도기(陶器)혼식, 10년째는 주석혼식(錫婚式) 혹은 알루미늄혼식, 11년째는 강철혼식, 12년째는 비단(絹婚式)혼식, 13년째는 레이스(Lace)혼식, 14년째는 상아(象牙)혼식, 15년째는 수정(水晶)혼식이다.​

 

뭐 이런 것들을 일일이 다 알거나 기억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그렇다는 것은 이참에 공부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즈음에 보내는 선물로는 결혼 1년째 지혼식에는 앨범이나 수첩과 같은 종이로 된 물품, 2년째에는 결혼생활에 검소하고 절약하며 살아가자는 뜻에서 너무 요란하지 않은 면제품을 선물로 보내는 것이 풍습이라고 한다. 다만 6년째부터는 쇠, 구리, 고무, 도자기 등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선물의 재료나 제품이 값이 더 나가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쌓이는 것이 감안된 것으로 보이며, 어쩌면 그만큼 집에서 고생하는 부인에 대한 보상이 더 쎄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도 된다고 보겠다.​

 

15년 이후는 5년 단위로 기념일이 올라가는데 20년째에는 자기(磁器)혼식이란다. 앞에 9년째에 도기(陶器)혼식이 나오는데, 영어 원어로는 앞에는 Pottery, 뒤의 것은 China이니까 뒤의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질 좋은 자기이고 앞의 것은 간단한 컵 종류의 도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20년을 넘어 25년에는 은혼식이니 이때야말로 여성 측에서는 하다못해 은반지이건 은식기이건 은으로 된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때가 되는 것이다. 사실 결혼 25년이 되면 이미 자녀들이 다 크고 해서 새삼 별거니 이혼이니 하는 파탄을 겪을 때는 지난 것으로 보이니 만큼 이제 값이 좀 나가는 선물을 기대할 자격은 된다고 하겠다.​

 

25주년 이후 30주년은 진주(眞珠)혼식이고, 35주년은 산호(珊瑚)혼식이고 내가 맞이하는 40주년은 루비 혹은 홍옥(紅玉)혼식이다. 45주년은 사파이어이니 벽옥(碧玉)혼식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결혼 50주년, 모두가 알고 있는 금혼식이다.

 

사실 금혼식부터는 오래 같이 살았다고 축하할 일이지만 분위기는 다소 쓸쓸하다. 우리가 결혼 나이를 20대 후반으로 잡아도 금혼식은 70대 후반에 맞이하는 관계로 이때는 몸의 활력이랄까 열정이랄까 하는 것들이 많이 사그라졌다고 판단하는 때인지라 젊을 때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을 하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하겠지만 그래도 보통 가장 멋진 결혼기념일은 역시 금혼식이다. 지금까지의 다른 금속이나 물질과 비교할 수 없이 값어치도 있고 상징성도 뛰어나기에 결혼 50주년을 대표하는 보물로 뽑혔을 것이다.​

 

금혼식 이후에는 55년째에는 에메랄드, 60년째에는 다이아몬드(금강석), 65년째에는 푸른 사파이어, 70년째에는 백금 등으로 이어지는데 사실 60년 이후에는 속된 말로 꼬부라지는 연세가 되니 어떤 선물이더라도 이제 물욕이 없어지시는 분들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로서도 40주년을 맞는 올해가 중요하지 앞으로 20년 후 30년 뒤까지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하겠다.

 

이런 결혼기념 풍속에서 가장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몇 주년 행사는 없이 60주년을 회혼례(回婚禮)로 기리는 것이다. 이 기념행사는 외국에는 별로 없고 우리나라만 있는 것 같은데 외국, 곧 영국에서는 다이아몬드(금강석)혼식을 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오래 같이 잘 살았다는 뜻이 강하다면, 우리의 경우 두 분이 만나서 정말로 60년을 해로한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축복할 일인가 하는 차원에서 자축보다는 축하를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우리의 회혼례는 자손들이 중간에 먼저 세상을 뜨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등을 갖추어야 하고, 정말로 두 사람 서로만이 아니라 운명적으로도 알뜰살뜰하게 챙겨주지 않으면 도달하기 힘든 멋진 결혼생활의 증거다. 따라서 자식 며느리 손주뿐 아니라 일가친척과 이웃 친지 모두에게서 큰 축하를 받는 자리가 아닐 수 없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성대하게 축하를 받고 있고, 외국, 심지어 중국에서도 중국 조선족의 풍습이라며 그것을 주목하고 부러워하는 것 같다.​

 

아무튼, 나의 고민은 결혼 40주년의 날을 어떻게 가장 멋지게 준비해서 부인도 나도 만족할 만한 날로 만드느냐 하는 것인데, 거기에 좋은 방안이 있는 분들은 날짜가 지나기 전에 빨리 연락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

 

 

40주년이 루비혼식이니 루비로 선물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물론 일부에서는 결혼 40년은 남자만이 여자에게 값이 나가는 선물을 보내는 날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름다운 꽃이 더 선물로 어울리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요즈음에는 모든 정성이나 마음이 다 돈으로 환산, 뒷받침되는 세상이니 이런 세상의 흐름을 거역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방법은 가성비도 좋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돈을 벌어오는 처지가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