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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목마른 계절입니다

가을은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보라는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6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목마른 계절”

이 가을에 적합한 표현인 것 같다. “아 목이 마르구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술 생각이 나느냐고 하겠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모든 게 목이 마르다. 어디든 가고 싶은 것도 그렇고 누구든 만나고 싶은 것도 그렇고 무슨 이야기이든 밤새워 하고 싶은 것도 그렇고 ... 그렇다. 나는 목이 마른 계절을 살고 있다. 술이 넘치지만, 술을 같이할 사람도 없고. 술 많이 마시자고 하면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술 대신에 맑은 음료를 놓고 이야기의 강물을 마시고 싶어도 같이 이야기할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지금 내가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알고 싶은데 어디다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

 

《목마른 계절》

 

사실은 책 이름이다. 우리의 전설이 된 수필가 전혜린의 수필집이다. 전에 본 수필 ‘먼 곳에의 그리움’에서 이미 알아버린 그녀의 마음, 어딘가 가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내 마음에도 방랑의 바이러스를 뿌린 게 아닌가 헷갈리는 때에 나는 인터넷으로 옛 책 검색을 하다가 이 《목마른 계절》이란 이름의 책을 발견했다. 1976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2018년에 5판 4쇄까지 온, 말하자면 베스트셀러인데, 그 책 제목이 눈에 띄어 집에서 주문해 받아보게 되었다.

 

 

책 제목이 된 ‘목마른 계절’이란 수필은 곧 서른에 접어드는 29의 나이에 자신이 어떻게 매 순간 환희를 느끼며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삼십도 되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보는 조숙함에는 머리가 숙여지지만, 그 나이에서부터 목마름을 느꼈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와 조금 다르기는 다르다.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놀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워서였다. (가운데 줄임) 또 밤을 새우고 공부를 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닭이 일제히 울 때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증발하는 혀에 이끼가 돋아나고 손이 얼음같이 되는, 그리고 눈이 빛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이런 완전한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무엇이든지 잡물이 섞이지 않는 순수한 것에 의해서 뒤흔들려보고 싶다. 뼛속까지. 그런 순간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그렇구나. 이 여성은 젊을 때(라고 하면 20대까지이겠지만) 느끼고 체험하며 자신이 흠뻑 빠졌던 완벽한 인식의 아찔한 자극과 그것을 기대하는 짜릿함이 그리운 것이구나.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에 느꼈을 그 짜릿한 인식의 체험을 이십대 후반이 되면서 느껴보지 못하니까 목이 말라진 것이구나. 그런 것이라면 그런 목마름을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우리네 중년을 넘긴 남자들은 어찌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가을이 되면 전혜린과 같은 순수한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가 어디로든 떠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삶이 불완전하고 값어치가 없고 재미가 없고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낭만적인 상실감이랄까 그런 정도가 아니고 짜릿한 인식의 스릴에 스스로가 빠져서 거기에서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고민을 한다면 그 고민은 우리들 보통 사람들과는 또 다른 지적인, 감성적인 외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삶에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자세, 이를테면 평범과 피상의 것 저 너머의 절대세계를 동경하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싶다는 것을 우리가 비판할 수는 없지만 삶을 그러한 지독한 자극의 체험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확실히 삶을 전체로 보지 못하는 단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혜린의 ‘목마른 계절’이라는 글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그 자신 그렇게 자릿한 순수의 인식만을 추구한 것이 결국 그를 서른이 넘고 일 년도 더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한 결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

 

삶은 자신이 누릴 달콤한 인식과 체험만은 아니다. 내가 나온 만큼 나를 오게 한 이 세상의 인연과 법칙을 생각하고 다시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오는 일에 대한 자신의 역할이랄까 책임을 느끼고 그에 따른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을 마음 한구석에, 혹은 마음 대부분에 힘들고 마땅찮고 재미없는 것들이 차 있어서, 뭔가 멋있고 신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인데 왜 없을까 하고 목이 마른 사람들이 목을 축일 물을 찾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목이 마른 이유를 나 자신 속에서 나만을 생각하며 찾지 않고 세상 속에서 더욱 많은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고 그 해결방법을 찾아보는 쪽으로 생각이 넓어진다면 사람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소중한 기회이지, 자신의 육신과 함께 버리고 갈 그 구차한 짐이 아니다. 삶이란 말도 인생(人生)이란 말도 모두 살아있는 것, 살아 움직이는 것, 살아가는 것이 전제된 말이기에 저 여성 수필가처럼 삶을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니 지난번에 읽었던 전혜린의 말이 다른 의미로 다시 보인다.

 

“먼 곳에의 그리움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의 글에 담긴 그녀의 소녀적인 순수함과 아름다운 감수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뭔가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꼭 어디로 가야만 풀리는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안 된다고 좌절해야만 할 일도 아니다. 자신에게만 좁혀져 있는 마음의 창을 밖으로 열고 이 계절의 변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무엇인지, 인간의 탄생과 생활과 소멸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자연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이 있고 식물이 있고 무생물이 있고 밤과 낮이 있고, 왜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는지, 왜 가을엔 낙엽이 지는지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도 그리움에 대한 갈증을 풀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전에 젊은이들의 운동 구호로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말이 있었다. 그 구호는 한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부독재에 질식할 것 같은 젊은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대변하는 표어였다고 하는데, 이제 우리 사회가 많이 민주화가 진척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목이 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전정한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 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정치적인 함의나 기준을 떠나서 확실히 요즈음 목이 마르기는 한다. 도대체 사회가 늘 비판하고 대립하기만 하고, 남을 받아들이고 감싸주는 모습은 어디서나 보기 어렵다. 인정있는 사회, 인간이 사는 포근한 사회를 만나고 싶어 목이 말라지는 것이다.

 

조선시대 차별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조선의 여성들이 힘들어 할 때, 이를 과감히 떨치고 남장을 하고서 집을 떠나 금강산으로 동해안으로 홀로 다녀온 김금원((金錦園, 1817년~?)이란 여성이 금강산을 지나 동해바다에 이른 다음에 한 줄의 시를 토해낸다.​

 

百川東涯盡  모든 물 동쪽으로 흘러 닿는 곳

深廣渺無窮  깊고 넓어 아득히 끝이 없구나

方知天地大  이제야 알겠네 천지가 커도

容得一胸中  이 가슴 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더라도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열어놓고 갈 일이다. 천지를 다 이 가슴에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우리들이 서로를 뭐 그리 미워하고 대립하는가? 또 젊은이들이 너무 일찍 절망하고 생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받는 것은 웬일인가? 우리의 가을은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보라는 것이지, 내 속에 갇히라는 것이 아니다. 이 가을의 차가워진 공기는 바로 그런 맑은 깨우침을 우리 머릿속에 불어놓는 것이고, 떨어지기 시작하는 낙엽은 모든 것이 순환한다는 법칙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밖으로 나오라고 한다. 나만, 혼자에만 갇혀 나만 살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을 알아야 이 좋은 계절이 누구의 노래 제목처럼 '잊혀진 계절'이 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