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참나무는 낙엽활엽수로서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지만 소나무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나무는 한 그루에 수백만 원씩 조경용으로 팔리고 있는데 참나무를 사서 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참나무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산에는 참나무가 없다. 참나무는 특정 나무 종의 이름이 아니고 통칭에 불과하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6종의 나무를 모두 참나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참나무 6형제의 공통적인 특징은 도토리라고 부르는 열매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참나무는 바람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풍매화고 서로 교배가 가능해서 잎이나 줄기로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정쩡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참나무는 신갈나무로서, 옛날에 짚신이 헤지면 깔창 대신으로 사용했는데, “신을 간다”라는 뜻으로 ‘신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졸참나무는 잎과 열매가 가장 작아 ‘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근에는 표고버섯의 재료목으로 많이 쓰이며, 졸참나무 도토리로 만든 묵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떡갈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잎이 가장 큰데, 옛날에는 큰 잎으로 떡을 찌거나 싸서 보관하였다. 잎의 항균작용으로 떡을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 떡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갈참나무는 가을철이 되어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멀리서 보면 황갈색의 잎을 잔뜩 달고 있어 마치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까닭으로 가을참나무라 불리다가 갈참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굴참나무는 껍질의 코르크층이 두꺼워서 병마개의 재료로 쓰인다. 굴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만든 집이 예전에 강원도 산골에 있던 너와집이다.
상수리나무는 옛날에 토리나무(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라고도 불렀는데,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약간 둥글고 크다. 상수리나무 열매로 만든 도토리묵을 임금의 수라상에 올려서 상수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설화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에 의주로 피난 간 선조의 상에 올릴 음식이 마땅치 않아 도토리묵을 자주 올렸다고 한다. 여기에 맛을 들인 선조가 환궁한 후에도 좋아해 자주 수라상에 올렸다고 얘기가 전한다. 또 상수리나무 잎을 따서 삶아내면 천연염료가 되어 황갈색 물을 들이는 데 쓰였다.
도토리묵은 요즘은 건강식으로 먹지만,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서민들이 즐겨 먹던 구황식물이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흉작에 대비하여 도토리의 비축을 권장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토리는 약용으로도 애용됐는데, 설사와 원기 보충, 중금속 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뼈와 관련된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참나무로 만든 숯은 화력이 세고 연기가 나지 않아서 화목으로 환영받는다. 신라 경주에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나지 않았는데 참나무 숯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참나무는 단단해서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판옥선 뱃머리는 참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말 속담에는 도토리가 들어가는 것이 몇 개 있다. “마음이 맞으면 도토리 한 알을 가지고도 시장을 멈춘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아무리 가난하여도 서로 마음이 맞으면 모든 역경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속담이다. 여기서 도토리는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개밥에 도토리”라는 속담은 따로 떨어져서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개는 도토리를 먹지 않기 때문에 밥 속에 도토리가 들어가도 남기므로 생긴 속담이다.
“도토리 키재기”라는 속담은 하잘것없는 재주를 가지고 서로 낫다고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꿈에 도토리나무를 보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으며 서울지방에서는 임신 중에 도토리묵을 먹으면 유산한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겨레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있는 나무가 참나무이다.
참나무는 인간에게는 목재와 화목 그리고 도토리를 제공한다. 청설모와 다람쥐, 어치 꿩 같은 조류, 그리고 멧돼지 등은 겨울에 도토리를 먹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참나무의 효용은 소나무보다 못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참나무를 칭찬하여 나무 중에서 “진짜 나무”, “정말 좋은 나무”라는 의미로 ‘참나무’라고 이름 붙였으며, 선사시대에도 진목(眞木)으로 불렀다.
그런데 이름에는 ‘참나무’가 들어가며 도토리도 열리지만, 잎 모양이 우리나라 참나무와 전혀 다르고 단풍색도 갈색이 아니고 붉은색인 참나무가 외래종인 대왕참나무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가 쓴 월계관은 대왕참나무 잎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히틀러가 직접 월계관을 씌워주었는데, 손기정 선수는 부상으로 대왕참나무 묘목 화분을 받았고 이것을 모교인 양정고에 기증하였다. 이 나무는 1982년에 서울시 기념물 제5호 “손기정월계관기념수”로 지정되어 손기정 체육공원(옛 양정고 교정)에서 잘 자라고 있다.
1980년 이후에는 이 나무가 미국에서 수입되어 가로수로도 환영을 받고 있다. 이 나무의 이름이 ‘대왕’인 데는 여러 가지 속설이 있다. 참나무 가운데서 가장 키가 커서 대왕이라고 불렀다는 설, 이 나무를 수입했던 회사의 이름이 대왕이었다는 설, 뾰족뾰족 튀어나온 이파리 모양이 한자(漢字) 임금 왕(王)자와 비슷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 등이 있다.
요즘에 지구온난화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최근 국가장기생태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참나무 숲은 소나무 숲에 견줘 탄소저장량이 2배나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곧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서는 소나무보다 참나무를 많이 심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도 참나무는 효용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삼림의 약 1/4을 차지하는 참나무가 2004년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이배재고개에서 참나무시들음병이 처음 발견됨으로써 비상이 걸렸다. 참나무시들음병은 ‘광릉긴나무좀’이라는 작은 벌레가 곰팡이균을 몸에 지닌 채 참나무로 들어가 병을 옮겨 발생한다. 감염된 참나무는 줄기의 수분 통로가 막히면서 잎이 시들고 마르면서 죽게 된다. 이때 잎이 빨갛게 마르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단풍이 든 것처럼 보인다.
광릉긴나무좀은 1935년에 문헌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2004년 이전에도 병원체가 이미 참나무 숲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병은 우리가 잘 아는 참나무 6형제뿐만이 아니고 대왕참나무 루브라참나무 등 외국 수종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병은 서울과 경기도 대도시 주변의 신갈나무를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어서 앞으로 참나무 숲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예단하기가 어렵다.
아무쪼록 한민족과 함께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살아왔던 진짜 나무, 참나무가 병을 잘 이겨내고 살아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