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사를 하면서 책장에 꽂힌 책들이 정리하고 버리는 가운데 구석에 있었기에 눈여겨보지 못하던 조그만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日本이 美國을 추월하고 韓國에 지게 되는 理由 》
35년 전인 1986년 7월에 나온 책이다. 일본 도카이(東海)대학의 謝世輝(사세휘, 일본 발음으로는 사세키) 박사가 저술한 것을 김희진씨가 번역해 한국경제신문사에서 펴냈다. 당시 사세휘 박사의 이 책은 큰 인기였다. 맨 먼저 한국경제신문이 지면에 연재한 이후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 결국엔 펴내기까지 하게 되었는데,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한국에 지게 되는 이유”라는 내용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이고 또 신나는 것이어서 우리 사회 각계에서 이 책을 사서 보았고 당시 문명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사세휘 박사는 1985년까지의 통계를 가지고 미국과 일본, 한국의 경제력을 비교하고 있는데. 단순히 경제만이 아니라 역사ㆍ문화ㆍ정치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서 미래를 전망하였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일본의 7%에 불과하였고, 전 분야에서 최소 20년은 뒤처져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이었는데, 그때 일본이 미국을 추월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한다는 전망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었다. 그러기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그 근거는 무엇인지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년을 더 지난 상황을 보니, 사세휘 박사의 예견과 전망이 상당 부분 맞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이 책은 5개의 장으로 나뉘어
제1장 동아시아의 대두와 서양의 몰락
제2장 강력한 미국이 몰락해 가는 이유
제3장 일본이 미국을 앞지르는 날
제4장 한국경제 급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제5장 2010년,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다.
등을 설명하고 있다.
가장 관심은 2010년에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다는 마지막 장인데, 우리가 80년대에 그리 기쁜 예견이라고 좋아하다가 아무 의식도 하지 못하고 2010년을 10년 이상 훨씬 넘긴 상황이긴 하지만, 이제라도 사세휘 박사의 진단을 다시 보면 그의 진단과 예견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이미 우리의 상식이 되었지만 조선 분야에서 일본의 몰락을 보면 너무도 충격적이다. 우리나라는 1973년에 외항선 분야에 처음 진출하여 1983년에는 수주실적이 일본의 56%에 이어 19%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이 따라가는 형세였지만 2009년 말에 보면 세계 10대 조선소에 일본은 하나도 없고 한국이 7개, 중국이 3개가 들어갈 정도로 일본세는 몰락한다.
난공불락이던 전자산업은 한국에 밀려 일본 가전업체들이 가전의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전자산업은 한국에 완전히 넘어갔다. 자동차도 아직은 일본의 기술력이 우위에 있지만 한국이 상당 부분 따라간 것이 사실이다. 1985년 당시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연 15만 대고 그 가운데 4만 대를 수출했지만 2011년 말 현재는 465만대를 생산해서 30배가 늘어났다. 물론 일본은 840만 대로 우리보다는 많지만,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의 급성장은 예상을 뛰어넘은 대단한 성과였다고 하겠다.
반도체 산업의 역전은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런 단순히 몇몇 산업에서 한국이 일본을 이긴 것에 머물지 않는다. 경제력이나 구매력이 올라섰고 한류라는 새로운 문화의 힘이 일본을 흔들고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에너지와 창조력이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1985년 당시에는 거의 황당하게 생각될 정도였던 사세휘 박사의 진단은 (물론 몇 가지 경제적인 지표만으로 우리가 일본을 추월했다고 할 수는 없고 다른 많은 분야는 아직도 따라가야 할 것들이 엄청 많은 현실이긴 하지만) 지금 놓고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했던 것이 아닌가 반문하게 된다.
사세휘 박사는 2010년 무렵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는 여러 이유로
2010년에는 일본사람의 3분의 2가 35세 이상이고, 한국은 35세 이하가 3분의 2라는 것, 곧 그만큼 일본이 고령화되기 때문에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경제의 부담이 많아진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사회의 독창성을 놓고 보면 일본보다는 한국이 훨씬 더 독창성을 살릴 수 있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또한 한국 청년들이 일본을 이기겠다는 정신력이 일본 청년들을 압도하고 있는 등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상황과 정신력까지도 일본이 한국에게 이기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아무튼 35년 전 사세휘 박사의 진단은 너무도 정확하고 미래를 꿰뚫어 본 것 같은데, 이런 분석이 가능했던 것은, 사세휘 박사가 원래는 물리학을 전공해서 이름난 상을 받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었고,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과학사를 연구하다 보니 너무나 서구인의 시각에서만 보고 있어 동양인의 시각으로 다시 보니 동아시아의 힘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문명이 일본에 추월 되는 것이 보이고, 같은 법칙으로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하는 것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하는 바로 그 길을 한국이 이미 그대로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고령화 문제도 그렇고 사회기풍이 점점 안이하게 흘러가고 있고, 경제는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쪼그라들고 있고, 사회는 미래를 위한 창조보다는 현재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나눠 먹기에 더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세휘 박사는 “최고위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은 길지만 제2위로 전락하는 시간은 짧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중국에 의해 과거 우리가 일본을 추월하는 속도 이상으로 추월당하고 있다. 지금 35년 전 사세휘 박사의 예견이 실현돼 한국이 일본을 드디어 추월했다고 하고 놀라며 좋아하는 사이에 우리는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세휘 박사는 오늘날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는 상황을 보며 또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까? 궁금해서 찾아보았지만 사세휘 박사는 최근에는 과거처럼 한국과 일본의 문제를 구체적인 수치로는 분석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관심이 역사와 문명에 있었지만 최근에는 개인의 성장과 인생 문제로 방향이 틀어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사세휘 박사가 35년 전에 한 예견이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그가 말한 그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면 한국이 어렵게 올라왔지만 주저앉는 것도 금방일 수밖에 없는 셈이어서 여기에서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사회전체가 뭔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미 가전과 조선을 중국에 넘겨주고, 반도체나 첨단 IC도 돈을 생각하는 전 관련연구자들을 통해 중국에 마구 팔아 넘겨진 상황 아닌가? 나라는 없어지고 개인이 우선되는 사회, 우리 사회가 벌써 그곳으로 진입하고 있어서 우물쭈물하다가는 일본처럼 될 것이다.
사세휘 박사는 말한다.
“안주하는 인생만큼 쓸모없는 것은 없다.”
이 말을 다르게 말한다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안주하는 사회만큼 쓸모없는 사회는 없다.”
그리고 또 하나.
"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의 일만을 제 일로 친다면 인류는 확실하게 멸망의 길로 가고 말 것이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다르게 한다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개인만을 으뜸으로 친다면 그 나라는 확실하게 멸망의 길로 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