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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밝은 달이 있는 까닭

달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임술(壬戌) 가을 7월 기망(旣望, 열엿새 날)에

소자(蘇子, 소동파)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새,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는데 물결은 크게 일지는 않는다.

술잔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고 요조(窈窕 ,깊고 고요함)을 노래하네.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네.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는데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마치 신선(神仙)으로 돼 오르는 것 같네..."

 

 

이렇게 시작하는 적벽부는 47살의 소동파가 송나라 원풍 5년(1082) 한가위 한 달 전인 음력 7월 16일(旣望) 달 밝은 밤에 삼국지 가장 큰 전투인 적벽대전의 무대였던 적벽 아래에서 뱃놀이하며 읊은 부(賦) 형식의 명문장이다.

 

880여 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적벽대전으로 수많은 장정이 목숨을 잃었고 그때의 큰 싸움의 주인공인 조조와 주유, 공명 등의 위인들은 영예와 권세를 다투었지만 이미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닌 것을 생각하면 결국은 저들이나 자신이나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모두 덧없는 존재이며, 우주의 무한한 본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다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되니 시름을 가질 일이 아니라는 도도한 가르침을 술회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글 뒷부분으로 가서는​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되 아직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되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사람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無盡藏)가 아니겠는가."​

 

라는 데에서 그윽한 흥취는 마침내 절정에 이르러, “맑은 바람과 하늘 위의 밝은 달은 가져도 다함이 없고 막을 사람도 없으니 마음껏 즐길 보배이구나...”라는 대목은 이후 수많은 시인묵객이 가을 달을 보며 즐겨 읊는 명 구절이 되지 않았던가?

 

 

그로부터 500년이 더 지난 조선조 중기 광해군 3년인 1611년 신해년에 고산 윤선도도 24살의 나이에 생모인 순흥 안씨의 3년상(喪)을 막 치르면서 한가위를 맞았다. 얼마 전까지 무덥던 날씨가 어느새 가을로 바뀌자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가운데 하늘에는 두둥실 둥근 달이 떠올랐다. 시심이 동한 윤선도는 서늘한 바람을 배 위에서 맞으며 달밤의 흥취를 그린 소동파의 적벽부가 생각이 나서 “맑은 바람 밝은 달은 돈 한 푼 안 들여도 나의 것(淸風明月不用一錢買)이란 생각을 제목으로 삼아, 저 바람과 달이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오는지를 물어본다.​

 

淸風明月獨何事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유독 무슨 일로

不煩白水來吾前 백수와 상관없이 내 앞에 오셨는가

欣然自幸還自怪 흔연히 기쁘면서도 괴이하게 여겨져서

坐思物理窮先天 물리를 사색하며 선천을 궁구하였다오​

 

시 구절에 백수(白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백수진인(白水眞人)의 준말로, 돈(화폐)을 뜻하는 말이란다. 중국 전한(前漢) 말기에 왕망(王莽)이 제위(帝位)를 찬탈하고 나라 이름을 신(新)으로 바꾸었는데, 그 당시 쓰던 돈에 새겨진 ‘전(錢)’이란 글자에 금(金)이란 글자와 도(刀)란 글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자기가 거꾸러트린 한(漢)나라의 황제 집안인 유(劉) 씨를 뜻하는 것이 되어 기분이 나쁘다고 그 글자 대신에 재화의 샘물이라는 뜻의 ‘화천(貨泉)’이란 글자를 돈에 새기도록 했다.

 

그런데 이 ‘화천(貨泉)’이란 글자 가운데 화(貨)라는 글자를 파자(破字), 곧 글자를 나누어 보면 인(人)과 진(眞)이 되니 진인(眞人)이 되는 것이고, 천(泉)이란 글자도 파자하면 백(白)과 수(水)가 되니 돈에다 새긴 화천이라는 글자는 백수진인(白水眞人)이 되는 것이다. 윤선도도 그 백수란 말을 써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아무런 대가를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내 앞으로 와주었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한양의 양반 가정에서 자라고 컸지만, 윤선도 자신도 크면서 임진왜란을 겪었고 일반 백성들의 어려움을 늘 느꼈기에 돈이 귀하고 어려운 것인 줄 알고 그 사연을 시에 담은 것이리라. 처음 세상이 열릴 때는 모든 백성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로 돕고 잘 살았는데 돈이란 요물이 생긴 이후에는 그것 때문에 세상이 험악해지고 혼란해졌다고 한탄을 한다.​

 

昔者混沌判未久 혼돈이 쪼개져 갈라진 뒤 오래지 않은 옛날

順天之則民皆賢 하늘의 법도 따르는 백성들 모두가 어질어서

君子無田食於人 군자는 밭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얻어먹고

鄕人亦戒乾糇愆 시골 사람도 마른밥 하나라도 아까워하지 않았는데

 

自從孔兄使鬼神 공형(돈)이 귀신을 부리기 시작한 때로부터는

人力漸勝天失權 사람의 힘이 불어나고 하늘은 권세를 잃어

擾擾萬象覆載內 천지간에 온갖 것이 요란하게 널려 있어도

一毫不入無錢拳​ 돈 없는 손안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오.

 

우리가 흔히 엽전이라고 말하는 옛날 돈은 생김새가 겉은 둥글고 속 구멍은 모나게 뚫려 있어 이를 공방(孔方)이라고도 불렀고 윤선도는 이를 공형(孔兄)이라고 표현했다. “공방은 권세 있고 귀한 사람을 몹시 재치 있게 잘 섬겼다.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기도 권세를 부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등에 업고 벼슬을 팔아, 승진시키고 갈아치우는 것마저도 모두 그의 손에 매이게 됐다.

 

이렇게 되니, 한다고 하는 고관대작들까지도 모두 절개를 굽혀 섬기게 됐다”라고 고려 의종 때의 문인 임춘은 돈의 힘을 묘사한 바 있는데, 그처럼 돈은 있는 사람들에게는 권세이자 요술방망이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원망과 원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우리가 부정해도 우리는 살아가는 데 결코 돈 문제를 초연할 수 없다. 특히나 현대처럼 물질문명으로 가득 찬 세상이고 어디서나 돈이 많이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많은 세상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생활은 늘 돈이 귀하고 생활은 어려웠기에, 일찍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봐 온 고산 윤선도도 가을 하늘 밝은 달을 보면서 그런 고민을 같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험하고 어려워졌는데도 저 하늘의 두 물건, 곧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권세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고 풍성한 선물이 되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라고 반긴다.

 

 

중국의 소동파가 달밤의 경치를 드높은 우주의 경지에서 바라보았다면 조선의 청년 윤선도는 가난 속에 어렵게 사는 백성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고통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현실에 괴로워하지만 말고 저 아무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시원함과 맑음을 선사하는 바람과 달처럼 세상의 욕심을 버려 맑고 그윽한 정신세계룰 느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을 천지간에 피력한다.​

 

惟彼二物尙偃蹇 오직 저 두 물건만은 여전히 의젓하여

不爲有力之所專 힘 있는 자의 전유물이 되지 않고서

一視貴賤布微涼 귀천을 똑같이 여겨 서늘바람 나눠 주고

共使遠邇瞻高懸 높이 매달려 원근에서 모두 보게 해 주네

 

但思外物非至樂 다만 생각건대 외물은 지극한 즐거움이 못 되고

又恨風有時兮月不能長圓 또 유감은 바람도 때가 있고 달도 늘 둥글 수 없다는 것

君子胸中自有霽月與光風 군자의 가슴 속엔 원래 제월과 광풍이 있는 것이니

最使神淸心浩然​ 심신을 호연히 맑게 함에는 으뜸이 아니겠는가

 

* 제월(霽月) : 비가 갠 날의 밝은 달

* 광풍(光風) :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온 뒤에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

 

9월로 접어들어 한가위가 가까웠으니 한낮의 더위가 제풀에 물러간 것으로 착각(?)하고 있던 사이에 여름 더위가 "무슨 소리야? 나 아직 안 갔어"라며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장마도 늦게 다시 왔다가 간다. 아무래도 계절이라는 것이 그냥 다음 계절에 자신을 냉큼 넘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계절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왜 이 코로나인지 뭔지는 이태째 수그러들지 않는 것인가? 이 때문에 우리들의 삶은 더욱더 어렵게 되었다. 다음 주에 오는 한가위 명절이 그나마 힘들고 지친 우리가 둥근달을 보며 시름을 잊고 포근한 인심 속에 모처럼 삶의 희망을 다시 다지는 때인데, 이 코로나는 올 한가위라도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을 수 없는가?​

 

 

한가위는 외로움을 털어야 하는 때다. 젊을 때 나주 회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삼봉 정도전(鄭道傳)도 한가위에 외롭다고 중추가(中秋歌)를 읊는다. ​

 

是時對月倍怊悵 이 밤에 달을 보니 몇 배나 더욱 슬프구나

迴首舊遊散如煙 생각해 보니 예 놀던 친구들 연기처럼 흩어졌네

此身由來非異身 이 몸도 작년과 다른 몸이 아니고

今年明月似前年 밝은 달 올해도 다름없건만

自是人情有異感 사람의 정은 때에 따라 달리 느끼게 되어도

造物賦與原非偏 조물주가 준 것이야 치우치지 않는 법

爲問明月之所照 묻노라, 밝은 달아, 네가 비치는 곳에

幾人歡樂幾人悲 기쁜 사람 몇이고 슬픈 사람 또 몇인가

 

올해도 달을 보며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더 어려워진 삶,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라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객지에서 보실 분들도 많을 것이니, 그들 모두 달을 보며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을 것이다. 살림은 그런데 명절이라고 물가가 또 크게 오르니 다시 한숨이다. 그러나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이 세상과 우주의 철리를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세상도 달의 순환처럼 고통과 슬픔이 있으면 즐거움과 기쁨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보름달은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자 소망을 받아주는 우리의 어머니다.​

 

그런 깨끗한 달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동녘에 두둥실 떠오르는 달에 한 해 동안의 수고와 괴로움을 실어 보내고 새로운 희망과 소망을 받아서 우리 가슴에 담아보자. 달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다. 달에서 보면 지구에 사는 사람일 뿐이다. 달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없다. 개혁도 수구도 없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없다. 오랜만에 달을 보며 세파에서 느낀 온갖 힘들고 괴로운 점을 다 잊어버리자. 우리 모두 둥글고 둥근 달 앞에서 한 동포, 한 가족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