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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영산회상,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53]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이 있다.

금이라는 악기와 슬이라는 악기가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으로 보통 부부 사이가 좋을 때, ‘금실이 좋다’는 표현을 한다. 슬을 타는 자는 그 뜻을 슬에 두지만, 금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금을 타는 자, 역시 그 뜻은 금에 두되, 그 슬과 더불어 조화를 통해 즐거움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무룻 여기에 조화를 모르는 자는 즐거움 또한 넓지 아니하며 뜻도 없고 음악의 역할도 구차하게 스스로 얽어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악기를 붙잡고 그 솜씨를 다투는 자와 비슷할 것이다. 마음의 교류를 통하여 조화의 멋을 느끼며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흔히 영산회상이나 가곡을 일러 ‘점잖은 음악’이라고 말한다. 점잖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을 말함인가?

 

성재 유중교(1821~1893)는 이항로의 문인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외국과 서양의 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척사위정을 주장하기도 했으며 유고로는 《성재문집》 60권이 있다. 그 유중교가 쓴 《현가궤범》 서(序)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듣건대, 세상에 금(琴)과 가(歌)에 종사하는 자는 크게 세 등급이 있다고 한다. 세상에서 음란한 소리에 뛰어나 한갓 목구멍을 떠는 것에서 기교를 부리고, 농현의 사이에 귀를 미혹시켜 남의 뜻을 방탕하게 하니 이는 악(樂)의 적(賊)으로 이른바 악이 아닌 것이다. 그것을 비루하게 여길 만하다는 것을 알고 조금씩 스스로 고상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또 항상 물외(物外, 형체 있는 물건 이외의 세계)에 정(情)을 의탁하여 그 사(詞)와 소리가 또한 악의 이단으로 정도(正道)가 아닌 것이다.

 

오직 군자의 현가(絃歌, 거문고 따위의 현악기에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가 본성에 바탕하고 정숙한 덕에 자리하며, 천지에 합치되고 기(氣)의 근원을 소리 내니, <가운데 줄임> 반드시 장중함으로써 도를 삼고 스스로 즐기며 그것으로써 사람을 감화시킨다면 이것이 이른바 악(樂)의 정도이다.”

 

이처럼 정악은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본성에 바탕하여 소리에 담담하고 조화로움과 장중함으로 도(道)를 삼아 사람을 교화하는 악이라고 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음은 정농악회가 펴낸 영산회상 음반, 그 해설문에 들어있는 이혜구의 글이다.

 

“현악영산회상은 세속음악 중에서도 정악(正樂)에 속하는데, 그 정악이란 템포가 촉급하지 않고 완서(緩徐)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지 않고 진정시키는 음악이다. 또한 직업연주자가 돈을 받고 듣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그런 음악이 아니고, 비직업 연주자들이 사랑방에 모여 양심정(養心情), 즉 마음을 수양하려고 연주하는 그런 음악”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선비란 이러한 풍류를 통하여 금지사심(禁之邪心, 바르지 않고 기울어진 마음은 금한다.)하고, 인격을 닦으며 며예와 이익을 탐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은거하는 사람들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음악적 배경이 형성된 것은 영산회상이나 가곡, 등 소위 정악의 주 향수층이었던 조선조 사대부들이나 선비계층에게 예악사상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러한 사상이 그들의 생활에 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사대부들이나 선비계층은 새로운 문화의 무분별한 수용보다는 기존의 문화를 선호하는 전통주의에 익숙해 있었고, 이러한 전통주의는 새로운 악곡의 창작이나 도입보다는 기존 악곡을 부분적으로 고치는 과정을 거쳐 슬기롭게 변용시키는 지혜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전통주의는 기존의 것을 무조건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를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고 철저하게 기존의 것을 지켜가며 그 위의 부분적인 변화를 수용하려 했던 계층이었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면 전면적인 변화나 개혁보다는 부분적인 변화를 인정하고 기조가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안정을 추구해 온 그들의 “존기본양(存其本樣)의 정신” 곧 전통을 중시하는 정신이 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음악분야에 있어서도 새로운 음악의 수용보다는 기존의 악곡을 중심으로 음계나 유사한 선율, 리듬의 변형, 장식음 등을 부분적으로 바꾸어 또 다른 변주악곡을 만들어 오게 된 배경이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첫 영산회상에서 많은 변주곡을 만들어 온 양상이나 확대 방법에도 원래의 그 모습은 지켜가면서 부분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려 했던 전통 중시(重視)의 정신이 기본적으로 팽배해 있었던 것이 그 배경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