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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일

퇴계, 증손자를 살리기 위해 여종 아이를 희생할 수 없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조 중기 명종 선조 대에 살았던 퇴계 이황(1501~1570)은 평생 올바른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며 학문과 수양,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아 마침내 최고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족, 자손들의 건강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퇴계는 자신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큰아들 준(寯)에게 제대로 아버지로서의 정을 주지 못한 때문인 듯 41살 때 얻은 맏손자 안도(安道)에게는 할아버지로서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편지로 수시로 훈육하였다. 손자 안도는 퇴계가 68살 때인 1568년 3월에 아들, 곧 퇴계의 증손자를 낳았는데, 퇴계는 그 소식을 듣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직접 수창이란 이름을 지어 한 달 뒤에 편지를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때는 안도가 성균관에 유학하기 위해 한양의 처가에 있을 때인데, 안도의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있지 않아 둘째가 들어서게 되자 엄마의 젖이 끊어져 당장 젖을 못 받아먹게 된 아들의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고 한다. 증손자가 자주 설사를 하는 등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을 들은 퇴계는 손자 앞으로 편지를 보내어 걱정을 많이 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알려주곤 했다.

 

당시 증손자는 다른 음식은 안되고 오로지 젖을 먹어야만 겨우 나아지곤 했기에 고민을 하던 안도는 안동의 할아버지 집에 마침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 그 여종을 서울로 불러 아들에게 먹이자고 안사람들끼리 의논한다. 소식을 알게 된 퇴계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여종도 아이를 출산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은 데다 젖도 역시 많이 나오지 않아 그 딸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서울의 손자에게 3월에 이어 4월에 편지를 보낸다.

 

여종을 보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생후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올라가게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고 데려가게 할 수도 없고, 더욱이 여종은 병으로 젖이 부족해서 자기 아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할 형편이라고 하더구나. 이 때문에 너무 곤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1570년, 3월 4일)​

 

듣자 하니 젖을 먹일 여종이 태어난 지 서너 달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그녀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사록》에서는 이러한 일을 두고 말하기를, “남의 자식을 죽여서 자기 자식을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라고 하였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어쩌면 좋으냐. 서울 집에도 반드시 젖을 먹일 여종이 있을 것이니, 대여섯 달 동안 함께 키우게 하다가 8~9월이 되기를 기다려 올려보낸다면, 이 여종의 아이도 죽을 먹여서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두 아이를 모두 살릴 수 있을 것이니, 매우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가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노릇이니,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1570년, 4월5일).

 

 

퇴계는 이 대목에서 맹자가 말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이란 표현을 빌려 썼다. 그래서 여종이 아이가 죽을 먹고 자립을 할 수 있을 때까지라도 여종의 서울행을 연기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증손자의 병이 꼭 젖을 못 먹어서 생긴 병이 아닐 수 있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온 집안의 걱정에도 증손자 수창은 5월 23일에 죽고 만다. 안도는 차마 퇴계에게 증손자가 죽었다는 말을 못 하였고 퇴계는 그 소식을 사돈(안도의 장인)으로부터 듣게 되어 망연자실한다.​

 

지금 네 장인의 편지를 받아보니, 창아가 병을 앓던 과정을 소상히 적어 놓았더구나.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해서 너무도 가슴 아프다. 의원과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다면 실로 천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찌하겠느냐. 아무쪼록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거라.(1570년 6월 14일)​

 

이렇게 위로를 했지만, 퇴계의 속마음은 끊어졌을 것이다. “어찌해야 하겠느냐?”라는 퇴계 편지의 표현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함, 한편으로는 끝내 여종을 보내주지 못한 데에 대한 미안함,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 다 녹아있다. 자기 증손자를 살리려고 여종 딸아이의 목숨을 거는 것은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맹자 이후 유학자들이 공유하는 값어치였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맹자》,〈공손추 상〉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이런 생각은 꼭 유교에서만이 아니라도 인간 세상에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가 되어 당신 증손자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결정을 하기는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인내와 고통을 감수한 데서 퇴계의 위대함이 나타난다고 하겠다. 여종의 자식이건 당신의 손자이건 같은 생명이라는 생각, 그것이 곧 공자 이후 유학에서 말하려는 진정한 가르침이며 퇴계는 그 가르침을 피눈물 나는 고통을 참으며 몸소 결정하고 보여준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코로나19로 병상이 아주 부족해 일반인들은 입원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어느 고위공직자의 아들이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병원 특실에 입원한 사례가 알려졌다. 시민단체는 그 고위공직자가 병원장에게 청탁해서 자기 가족의 편의만을 추구했다며 고발을 했고 이에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이 문제가 퇴계가 처했던 상황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 그만큼 어렵다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응급상황이든 아니든 자식이 급하게 병이 심해지면 여느 아버지로서는 아들을 위해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입원 기회를 빼앗을 수 있고 타인의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만일에 그렇게 자식이 급한 상황이 되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의 경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부하고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의 올바른 몸가짐은 어때야 하는가? 그래도 정답은 있지 않은가? 그런 문제로, 퇴계의 사례를 역사에서 꺼내어 우리 고민의 거울로 다시 비춰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