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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어려운 문화재 이름, 이제는 알고 불러야 할 때

《친절한 우리 문화재 학교》, 이재정(글), 신명환(그림), 길벗어린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우리나라 문화재 이름은 참 어렵다.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어지간한 어른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밑줄 좍좍 그으며 외우기만 했지, 문화재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탓이다.

 

그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한자어로 된 문화재 이름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억울한 낙인이 찍히는 일도 뚜렷이 줄었으리라.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문화재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더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만 해도 그렇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들었을 때 어른이라면 뜻을 대강이야 짐작은 하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당최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p.143-144)

반가사유상은 무슨 뜻일까요? 반가(半跏)는 반만(半-반 반) 책상다리(跏-책상다리할 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유(思惟)는 깊은 생각(思-생각 사, 惟-생각할 유)에 잠겨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반쯤 책상다리를 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금동으로 만든, 미륵보살상’이라는 뜻이지요.

 

이렇게 설명을 듣고 이해하고 나면, 이 유물들이 비로소 마음에 새겨진다. 이 책 《친절한 우리 문화재 학교》의 지은이는 도자기, 활자, 궁궐, 불상, 사찰 등 문화재를 14개 분야로 나누어 각 분야의 한자어 문화재 이름을 쉽게 풀이해준다. 어린이 책으로 나왔지만, 어른이 읽어도 ‘이게 이런 뜻이었어?!’라고 새롭게 알아갈 수 있는 부분이 무척 많다.

 

 

가령, 우리가 별 뜻 없이 쓰는 ‘궁궐’도 실은 두 개의 낱말이 합쳐진 것이다. 임금이 거처하는 집 ‘궁’과, 그 집을 둘러싼 울타리 ‘궐’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p.95-96)

궁궐(宮闕)에서 궁(宮)은 원래 집을 나타내는 여러 글자 가운데 하나였어요. 그런데 중국 한나라 때 황제가 자기 집을 ‘궁’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들 집에는 그 글자를 쓸 수 없게 했답니다. … 그럼 궐(闕)은 뭘까요? 왕이 살던 궁은 높은 담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고, 맨 바깥쪽 담에는 모서리마다 멀리 내다보며(望-바라볼 망) 안팎을 감시할 수 있는 망루(望樓)를 만들어 두었어요. … 궐(闕)은 바로 이 담과 망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궁궐이란 왕이 살던 집(宮-집 궁)과 그 집을 둘러싼 울타리 전체(闕-대궐 궐)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뿐만이 아니다. 국사시간에 그저 외웠던 조선시대 3대 지도, ‘대동여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곤여만국전도’도 한자어만 외울 때는 어렵지만 그 뜻을 알고 나면 더는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먼저 대동여지도부터 살펴보자. 옛날에는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아 그 동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동국(東國)’이라고 불렀으므로, ‘동쪽에 있는 큰 나라’, 대동(大東)은 바로 우리나라를 말한다. 그리고 ‘여’는 ‘수레 또는 수레에 싣다’라는 뜻의 한자어로, ‘여지(與地)’는 땅을 싣고 있다는 뜻이므로 결국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전체 지도라는 뜻이다.

 

 

역대급으로 긴 이름을 자랑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태종 때 만든 지도로, 혼일(混一)이란 섞여서(混-섞일 혼) 하나(一 한 일)가 된다는 뜻이니 각 나라가 섞여서 하나가 된 세계를 뜻한다. 강리(疆理)는 영토를, 역대(歷代)는 여러 시대를, 국도(國都)는 나라의 수도를 의미하므로, 세계 영토와 여러 시대의 수도를 그려 넣은 지도라는 뜻이다.

 

곤여만국전도도 마찬가지다. 곤여(坤與)라는 말은 온갖 물건을 품고(與-수레 여) 있는 땅(坤-땅 곤), 곧 지구를 뜻하고, 만국은 수많은 나라를 뜻하니 이 또한 세계지도다. 이처럼 하나하나 풀이해 보면 쉽게 이해될 이름이건만,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한자어만 가르치기 급급해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값어치는 더욱 돋보인다. 편집이 까다로웠을 텐데도 하나하나 한자어를 한글로 풀이하며 풍부한 설명과 그림까지 곁들여, 문화재를 안내하는 친절한 길라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정확히 뜻을 모르고 이름만 외워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던 우리 문화재들이 비로소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이제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필자는 중고책방에서 운 좋게 살 수 있었지만, 이처럼 훌륭한 책이 절판되어 버린 것이 너무나 아쉽다. 앞으로 이렇게 어려운 한자어 문화재 이름을 한글로 쉽게 설명해 주는 책들이 많이 출간되어,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활(活- 살 활)자로 독자들 마음에 다가섰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