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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EU 택소노미’와 원자력 발전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6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2022년 2월 3일 생중계된 대선후보 4자 토론에서 전문적인 경제 용어가 튀어나와 시청자들은 어리둥절하였다. 이재명 후보가 “‘RE100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물었는데, 윤석열 후보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뭔지 다시 물었다. RE100은 대다수 국민에게도 낯선 말이며 윤석열 후보가 모른다고 해서 치명적인 흠은 아닐지도 모른다. 필자는 2021년 8월 5일 자 우리문화신문 기사에서 RE100에 관해 설명한 적이 있으므로 관심있는 독자는 아래 주소에서 참고하기 바란다.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 한순간에 망할 수도> 기사 보러 가기

https://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131455

 

이재명 후보는 이어서 "EU택소노미가 중요한 의제인데 원자력 관련된 논의가 있지 않으냐!"라며 "원전전문가에 가깝게 원전을 주장하시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실 생각이시냐?"라고 물었다. 윤석열 후보는 "유럽을 봐도 독일이 원전을 없앴다가 결국은 프랑스에서 수입하고 또 러시아에서 가스를 들여오고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 뜻이 아니고 EU택소노미라고 하는 새로운 제도가 논의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 원전 문제를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냐?"며 재차 추궁했다.

 

윤석열 후보는 솔직하게 "저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EU택소노미는 녹색분류체계를 말하는데 원전을 포함시킬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란"이라고 설명했다. 이 글에서는 ’EU택소노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택소노미(taxonomy)‘는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RE100‘처럼 새로 만든 말은 아니다. 오히려 긴 역사를 가졌다. 택소노미는 그리스어로 ‘분류하다’는 뜻인 ‘taxis’와 ‘과학’을 의미하는 ‘nomos’가 합쳐져 만들어졌는데, 주로 생물학에서 쓰며 분류체계 또는 분류학이라는 의미다. 21세기에 들어서서 모든 산업 활동에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라는 용어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린은 녹색으로서 환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린 택소노미’는 ‘녹색산업 분류체계’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자연과학보다는 사회과학에 더 가까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택소노미는 여러 산업 분야 중에서 친환경 산업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태양광 발전은 온실가스를 줄이므로 당연히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된다. 반대로 석탄화력발전은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발생시키므로 친환경 산업으로 포함할 수가 없다. 기업인이 신규 사업을 계획할 때 택소노미는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택소노미에 의해서 신규 사업이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매우 불리하다. 외국의 투자자들로부터 자금 투자를 유도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유럽연합(EU)에서는 그 사업에 투자를 못 하도록 다양한 제재를 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U 택소노미는 2020년 6월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6개의 환경목표를 설정하였다.

 

1. 온실가스 감축

2. 기후변화 적응

3. 수자원 및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과 보호

4. 순환경제로의 전환

5. 환경오염 방지 및 통제

6.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보호와 복원

 

어느 산업이 위의 여섯 가지 목표 중에서 1) 하나 이상의 목표 달성에 상당히 이바지하면서, 2) 다른 목표들에 중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3)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준수하는 동시에, 4) 기술선별기준에 들어맞을 때 그 산업은 친환경적인 경제활동으로 인정된다.

 

경제활동을 친환경 기준으로 나누는 택소노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원자력 발전이다.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탄소중립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국가의 장기 목표로 선언된 이후, 원자력 발전을 어느 쪽으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EU를 주도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전력의 7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올해 말까지 모든 원전을 폐기하는 독일은 원자력 발전이 사고 위험성, 방사능 오염, 그리고 급증하는 핵폐기물 처리 비용 때문에 친환경적인 산업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EU 집행위는 2022년 2월 초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조건부로 포함하는 최종안을 발표했다. 최종안에 따르면 2045년까지 건설 허가가 난 원자력 발전을 ‘녹색 투자’로 분류하되,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 처리를 조건을 단 것이다. 최종안에 대해서 27개 회원국 가운데서 20개 나라 이상이 반대하거나, EU 의회의 과반수가 거부하지 않는 한 최종안은 확정되고 2023년부터 시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독일, 오스트리아, 유럽 의회 녹색당 그룹 등이 유럽사법재판소에 EU 집행위를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므로 최종안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 발전을 어떻게 분류하고 있는가? 환경부에서는 어떤 경제활동이 환경 보호와 탄소중립에 이바지하는지를 규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일명 K-택소노미)를 2021년 12월 30일에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은 녹색산업에서 제외되었다. 환경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볼 때 신규 원전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라는 설명이다.

 

야당과 원자력 산업계에서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을 뺀 것을 비판하며 ‘원전 복귀’가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주요 EU 국가들의 원전 정책을 살펴보자. 이탈리아는 35년 전인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한 탈원전 1호 국가다. 오스트리아 역시 1978년 국민투표로 새로 건설한 원전의 가동을 무산시킨 이후, 1997년에 핵 없는 나라로 남는다고 결정했다. 독일은 마지막 남은 원전 6곳 중 3곳을 지난해 말 가동 중단했고, 올해 말까지 나머지 3곳도 폐기할 계획이다. 벨기에는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기로 발표했다.

 

프랑스의 원전 정책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에 70%를 차지했던 원전 비중을 50%로 줄이겠다고 공약하였다. 프랑스가 가진 원전 56기 가운데 낡은 원전 10여 기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2022년 2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2050년까지 많게는 14기의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여 기존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었다. 중국은 현재 16기의 원전을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중소형 원전 12기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는 세계 원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친원전 국가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원전 공약은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말을 바꾸어 ‘감원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운영 중인 원전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 사용하고 신규 건설은 하지 않는다는 정책이다. 계획 단계에서 중단된 경북 울진의 신한울 3,4호기가 말썽이 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경제성과 국민 여론을 반영해 신한울 3,4호기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약간은 모호하게 발언했다.

 

 

윤석열 후보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집권하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중을 최대 35%까지 늘리고 계획 단계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원자력 발전소의 추가 건설이 분명해 보인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에 원자력발전소가 추가로 건설될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다. 필자와 독자를 포함하는 유권자들의 선택 결과는 우리의 자녀 세대와 손자 세대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